Focus

지구적 위기와 지성인의 역할

2018-10-19 교류/실천

세르주 알리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발행인이 한국을 방문해 조인원 총장과 대담을 가졌다. 대담의 주제는 ‘문명사적 전환과 지성인의 역할’로 국제사회가 당면한 위기의 본질과 국제정치 언론인의 사명에 대해 이야기했다.

조인원 총장, 세르주 알리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발행인 대담
‘문명사적 전환과 지성인의 역할’ 주제로 국제사회 위기 본질 다뤄

남과 북의 대화로 한반도에 평화의 분위기가 고조되는 이때, 인류는 4차 산업혁명의 파고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평화에 대한 염원과 발전에 대한 욕망이라는 전환 국면의 안팎으로 기후변화로 대변되는 지구적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기로에 선 인류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후변화, 인류의 근본적 위기
지난 10월 11일(목) 서울캠퍼스 본관 대회의실에서 조인원 경희대학교 총장과 세르주 알리미(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Le Monde Diplomatique)> 발행인과의 대담이 진행됐다. ‘문명사적 전환과 지성인의 역할’을 주제로 국제사회가 당면한 위기의 본질과 국제 정치 그리고 언론인의 사명에 관해 심도있는 대화가 오갔다.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는 알리미 발행인은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언론인이다. 국제 관계에 대한 탁월한 분석으로 자본의 지구적 지배와 그 물신성을 비판하는 지식인이기도 하다.

그가 발행하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비판적 지성을 표방하는 세계적 권위지로 30개 언어로 51개 국가에서 발행되는 월간지이다. 알리미 발행인은 “냉전의 최후의 보루인 한반도가 냉전을 넘어 새로운 분위기를 맞이하는 시점에 한국에 방문해 뜻깊다”고 소감을 밝혔다.

대담은 현재 우리가 마주한 위기 상황에 대한 진단으로 시작됐다. 조인원 총장은 근본적 위기로 ‘기후변화’를 꼽았다. 기후변화가 생태계를 위협하며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근본부터 위협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삶의 양식과 가치는 이런 위협을 가속하고 있다. 성장과 개발을 추구하는 산업화 시대 삶의 가치들이 모든 인류가 개발과 소비라는 한 방향을 향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알리미 발행인은 기후변화 문제를 인구의 증가와 삶의 질 측면에서 접근했다.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가운데 지금까지 문명 발전의 혜택을 못 받던 제3세계가 선진국 수준의 삶을 원하면 지구의 자원이 고갈된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탈성장과 소비 축소가 필요하다. 아울러 화석 에너지의 사용도 줄여야 한다.

한국 방문이 처음이라는 알리미 발행인은 “한반도가 냉전을 넘어 새로운 분위기를 맞이하는 시점에 한국에 방문해 뜻깊다”는 소감을 밝혔다.

지구적 난제 해결을 위해 정치의 중요성 커져
화석 에너지 감축을 위한 국제적 협의를 위해서는 정치가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국제사회를 보면 포퓰리즘과 자국우선주의가 대두되고 있다. 당장의 이해관계에 함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알리미 발행인은 2008년 국제 금융 위기 이후 조치들이 현 국제 정치에 악영향을 줬다고 말한다. 그는 “2008년 위기의 책임자들은 거대 자본들인데 이들은 이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 국가 자본이 투입됐고 지금까지도 승승장구하고 있다”며 “이 상황에서 일반 국민들은 불만이 쌓였다”라고 말했다.

정치에 대한 불신도 한 가지 이유다. 알리미 발행인은 “어떤 투표를 하더라도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친다는 결과가 반복돼 정치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교육에서도 문제점이 나타났다. 조인원 총장은 “많은 학자가 ‘교육의 종언, 대학의 종언’과 ‘영혼 없는 수월성’을 이야기한다”며 대학이 자신의 본령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이 본령에서 벗어나 시장이 원하는 지식 전달에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 총장은 “우리가 어떤 삶의 가치를 추구해야 할지, 무엇을 도모하고 무엇을 자제해야 할지에 대한 담론을 제기하는 것이 이 시대 대학의 또 다른 책무다”라고 강조했다.

‘지구적 지도력’은 무엇이고, 이것은 존재하는가?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지구적 문제 해결을 위해 ‘지구적 지도력’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지구적 지도력에 대해서도 두 대담자는 흥미로운 의견들을 밝혔다.

알리미 발행인은 “지구적 리더십은 모든 문제에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기후변화와 같은 문제 해결에는 필요하지만 개별 국가의 문제들은 해당 국가 국민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알리미 발행인은 ‘서구적 가치’의 확산을 경계했다. 성장과 불평등의 주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인문주의에 기반해 비인간적 정치를 바꾸고 새로 결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대학의 역할도 재정립해야 한다고 본다. 인문주의의 확산을 대학의 사명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교육이 보건과 같이 보편적 공공재의 성격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조인원 총장은 “지금의 현실정치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밝혔다. 미래를 위한 상상과 공론의 장이 돼야 할 정치가 권력 투쟁의 장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조 총장은 “시민의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치를 변하게 하는 것은 변화된 시민들의 의식이기 때문이다.

알리미 발행인은 “전임자들이 하지 못했던 일을 하려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이 아이러니하지만 한반도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며 “지금의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지금이 큰 기회
대담은 동북아 정세에 관한 진단으로 이어졌다. 알리미 발행인은 “트럼프의 당선이 아이러니하게 한반도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자들이 하지 못한 일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은 미국이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 방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이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인원 총장은 “평화와 공존의 길을 성공적으로 걷는다면 현대 한국사에 큰 획을 그을 역사적 사건이 벌어질 수 있다”며 “서로 다른 체제와 이념, 문화를 가진 남과 북이 미래를 향해 공동의 목표를 찾아낸다면, 이는 정치적으로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남과 북의 향후 체제에 대한 논의도 오갔다. 조 총장은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대화를 이어갔다. 환경 위기와 불평등 문제를 야기한 자본주의 체제가 향후에도 이어진다면 문제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조 총장은 “남과 북이 전향적으로 지속가능한 체제에 대해 논의해야한다”고 말했다.

알리미 발행인은 사회주의를 자처한 미국의 샌더스 같은 정치인이 유력한 대선 후보로 등장했던 사실을 거론하며 “자본주의가 체제 경쟁에서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최근 온건적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에 비판적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대담자들은 언론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조인원 총장은 언론이 “사유의 중심에 사람을 놓아야 한다”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언론의 역할을 강조했다.

사유의 중심에 인간을 놓고, 지속가능한 미래 논의해야
이어 언론에 초점이 맞춰졌다. 알리미 발행인은 정보의 질이 떨어진 원인 중 하나가 언론이 상업주의에 굴복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는 “언론 그룹의 이익을 위해 언론이 활용되고 있을뿐만 아니라 언론이 세계의 갈등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갈등을 초래하거나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도가 하락하는 것”이라 진단했다.

부정적인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알리미 발행인은 “반대의 현상도 있다”며 “세상을 바꾸는 방법을 궁금해 하는 독자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언론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언론에 대응하는 세력도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총장은 언론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문제 의식을 밝혔다. 그는 “체제나 틀을 넘어 사유의 중심에 사람을 놓아야 한다”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환경이나 자연을 보도의 중심에 놓는 것이 시급하다”라고 밝혔다.

청중과의 질의응답에서 한 청중은 알리미 발행인에게 “제3세계 사람들이 서구, 유럽 등의 삶의 수준을 원하면 기후변화가 악화된다는 주장은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그들이 발전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들린다”고 지적했다.

자원고갈과 기후변화 속 희생은 선진국이 감내해야
대담 이후에는 청중과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한 청중은 알리미 발행인에게 “제3세계 사람들이 서구, 유럽 등의 삶의 수준을 원하면 기후변화가 악화된다는 주장은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그들이 발전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들린다”고 지적했다.

알리미 발행인은 기후변화와 자원 고갈은 엄연한 현실이라며 “수억 명 인구가 선진국 수준의 삶을 누리길 바라지만 자원이 고갈되면 그건 불가능하다”며 “탈성장이 유일한 해결책이며 우리 모두의 책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제3세계 사람들이 물질적 풍요를 누리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안타깝다고 말하면서 “기후를 변화시키고 자원을 고갈시키면서 많은 혜택을 받아온 선진국이 반성하고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글 정민재 ddubi17@khu.ac.kr
사진 이춘한
choons@khu.ac.kr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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