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문명의 미래, ‘인간 이해’에 달려 있다”

2018-10-29 교육

지난 10월 23일(화) 열린 석학초청포럼에서 더못 모란 보스턴대학 교수는 “문명의 미래는 인간을 이해하는 것에 달려 있다. 철학 이론을 통해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상학 분야 권위자 더못 모란 미 보스턴대 교수, 석학초청포럼 특강
후설·하이데거 등 철학자들의 통찰에서 과학기술 문제 해결 실마리 제시

“과학기술의 발전은 전 세계를 빠르게 변화시켰다. 인간 정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상학의 창시자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은 과학만능주의에 빠진 인간이 스스로 인간성을 짓밟았다고 진단하고, 인간을 이해하는 통찰력으로 과학의 비인간성을 극복하고자 했다. 한계가 드러나지 않는 기술의 진보가 문화전통과 관습, 언어까지 위협하고 있는 오늘날, 후설과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와 같은 철학자들의 통찰이 필요하다.”

지난 10월 23일(화) 서울캠퍼스 본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석학초청포럼에서 현상학 분야의 권위자 더못 모란(Dermot Moran) 미국 보스턴대학 철학과 교수는 이같이 밝혔다. 포럼 주제는 ‘마음의 철학과 문명의 미래’. 포럼은 모란 교수의 강연, 이한구 미래문명원장과의 심층대담, 청중 질의응답으로 이어졌다.

“현상 그 이상의 의미를 볼 수 있는 열린 마음 가져야”
모란 교수는 “문명의 미래는 인간을 이해하는 것에 달려 있다. 철학 이론을 통해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선 후설의 이론을 소개했다. 후설은 근대 유럽이 정신적 위기를 겪게 된 원인을 과학만능주의에서 찾았다. 과학적 객관성에 함몰돼 인간의 마음을 경시하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

과학만능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생활세계’(후설이 객관적 세계와 대립되는 의미로 사용한 용어로 현실적인 삶의 세계, 주관적인 세계를 말한다)보다는 실험과 통계에 기반한 검증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과학의 잣대로 검증할 수 없는 것은 가치가 없다는 인식이 만연해졌다. 그러나 검증 자료는 ‘생활세계’를 수치화한 것이며, 검증 역시 타인의 주관성을 통해 평가하는 것이다. 과학에서 말하는 객관성의 토대가 ‘생활세계’인 셈이다.

심층대담을 나누고 있는 더못 모란 교수와 이한구 미래문명원장.

모란 교수는 미국의 재판 과정에서의 배심원 판결을 예로 들면서 “배심원은 증거와 진술에 의존해 판단한다. 인간의 주관적인 마음이 개입되는데도 이를 객관적이라고 한다. 이 사례에서 보듯이 객관성과 주관성은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이상의 의미를 볼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간의 마음에 따라 의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후설은 인간의 의식은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가능하다고 했다. 따라서 의식은 상호의존적이면서 주관적이고 역동적이다. 모란 교수는 “그러나 인지과학과 같은 과학의 영역에서는 주관적인 마음을 탐구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 뒤 “기술 진보에만 맞춰진 편협한 시각을 바꿔야 직면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술 진보에만 맞춰진 편협한 시각 바꿔야 위기 돌파할 수 있다”
하이데거는 존재의 의미에 물음을 제기하며 그 의미를 탐구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역으로 보면 우리가 위기에 처하는 이유는 물음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란 교수는 기후변화를 언급하면서 “기후변화는 기술 개발에 따른 문제다. 그동안 기술 개발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반추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라고 말했다.

모란 교수는 “무엇이 문제인지 모를 때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가 아는 것이 중요하다”며 “끊임없는 물음이 과학에 의해 식민지화돼 가고 있는 생활세계의 위기를 깨닫게 해주고, 치유에 나설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문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모란 교수는 과학의 비인간성을 경계하면서 “인간의 유한성, 초월성, 상호의존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Jaspers)는 인간이 한계상황을 통해 스스로를 넘어 초월에 이를 수 있다고 봤다. 이러한 본성에 따라 과학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트랜스 휴먼, 포스트 휴먼과 같은 개념이 생겨났다.

모란 교수는 “우리는 인간이 유한한 생명체라는 것을 명심하고, 과학기술을 활용할 때 인간성 상실, 환경파괴 등과 같은 문제를 고려하면서 한계를 세워야 한다. 그 의지는 발전보다 미래의 지속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는 마음에서 나온다. 인류는 지구의 일원이며, 세상에 체화된 존재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질의응답에서 김진의 물리학과 에미넌트 스칼라는 “문명의 미래를 연구할 때 철학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학문이 참여해야 한다. 서로 다른 학문이 함께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했다. 이 질문에 모란 교수는 “학문의 서로 다른 관점을 이해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학문의 서로 다른 관점 이해해 미래 전망 함께 해야”
이어진 대담에서 이한구 원장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기술이 진보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의식까지 갖게 될 것인가”라고 질문했다.

모란 교수는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의식’을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의식을 갖기 위해선 체화될 수 있는 유기적인 몸이 있어야 하는데, 인공지능에는 이것이 없고 프로그램으로 작동하는 인공지능이 여러 상황을 인지해 종합적으로 나타나는 의식을 갖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모란 교수는 최근 호주에서 자율주행차를 시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들려주면서 “인공지능이 캥거루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사고위험이 커졌다. 캥거루의 움직임을 프로그램화하지 않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모든 변수를 입력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청중 질의응답에서 김진의 물리학과 에미넌트 스칼라(Eminent Scholar)는 “문명의 미래를 연구할 때 철학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학문이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같은 과학 내에서도 응용과학과 자연과학은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고, 사용하는 용어도 다르다. 서로 다른 학문이 함께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모란 교수는 “후설은 수학자였다. 그는 자연과학이 인간의 의식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수학적 법칙이나 논리적 진리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의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학문은 모두 연결돼있다. 단 관점의 차이가 존재한다. 모든 현상학자의 출발은 경험이다.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것이 과학이다. 서로 다른 관점을 이해해 미래에 대한 전망을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석학초청포럼은 학계와 지성사를 선도하는 세계적인 석학을 초청해 인류 사회의 더 큰 미래,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하는 ‘성찰과 창조’의 장이다.

글 오은경 oek8524@khu.ac.kr
사진 이춘한 choons@khu.ac.kr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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