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총장과 학생들의 독서토론, “스무 살, 함께 상상하다”

2013-07-02 교육


후마니타스 스터디그룹 아레테 북토크에 조인원 총장 초청
취업 문제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조언하며 '성찰적 삶,' '자기창조적 삶' 강조

후마니타스칼리지 스터디그룹 '아레테(Arete)'가 지난 6월 5일 북토크 '스무 살, 함께 상상하다'를 개최했다. 학생들의 자생적 스터디그룹 아레테는 2011년 3월 후마니타스칼리지가 설립된 후 중핵교과 수강생들의 제안과 대학 지원 아래 지난해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학생 스스로 스터디에 참여하고 모임을 운영하며 스스로 공부하는 학술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번 북토크 역시 독서토론문화 확산을 위해 학생들이 기획했다.

지난 2월 열린 조인원 총장과 후마니타스칼리지 학생들의 오찬 간담회에서 학생들은 '총장님과의 토론'을 제안했다. 조인원 총장은 학생들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북토크는 사전에 텍스트를 공지해 참가자들이 관련 내용을 공유한 후,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번 북토크에 앞서 학생들은 조인원 총장이 선정한 로베르토 웅거의 저서 <주체의 각성>, 영화 <레미제라블>,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의 <필라델피아 자유메달 수상 연설문>을 읽고 행사에 참여했다.

조인원 총장, 학생 질문에 솔직한 답변 들려줘
6월 5일(수) 오후 6시, 서울캠퍼스 네오르네상스관 네오누리. 300여 명의 학생이 행사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조인원 총장이 연단에 올라 사회자인 김민웅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와 강태우(경영학과 08학번) 학생 사이에 앉았다.

시작과 함께 학생 사회자가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내일이 시험 날인데 여자 친구가 헤어지자고 한다면, 시험을 포기하고 여자 친구를 붙잡을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위해 시험공부를 할 것인가?" 평소 학생들 눈에 근엄한 학자의 모습으로 비치던 조인원 총장이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정말 사랑하면, 시험 기회는 또 있지 않겠습니까? 요즘도 재수강 되나요?" 이 말에 다소 긴장감이 감돌던 행사장 분위기는 폭소와 함께 일시에 부드러워졌다.



"소통과 공감, 사회적 연대로 현실을 극복하자"
'88만 원 세대'로 규정되는 20대 젊은이들은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취업난과 비정규직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이날 북토크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취업과 진로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김영빈(물리학과 12학번) 학생은 "취업 문제만으로도 고민이 많은 우리에게 사회는 자기혁명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현재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조인원 총장은 자기성찰의 화두를 던지는 것으로 학생들과의 대화를 시작했다. "인간은 무한한 미지의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나 너머 나,' '또 다른 나'의 여정을 확인해가는 존재"라면서 "일상의 무게와 '모름'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라는 번민과 성찰을 거듭하는 단계가 '젊음'의 시기"라고 말했다. "나와 타인,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결정하고, 성찰적 의식을 만들어가는 것은 고통스런 과정이지만, 결국 본인의 몫"이라고 강조한 뒤, "성찰 과정에 다양한 사상과 철학, 위대한 저서와 연설, 탁월한 시와 소설 등이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단,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경계하고, 자기만의 언어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창조적인 삶의 기획을 마련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취업이라는 높은 문턱을 눈앞에 둔 20대는 성찰적 의식을 고민할 여유가 없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유현기(사학과 13학번) 학생은 '현실적 조언'을 요청했다.

조인원 총장은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당장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 중요해지는 것은 그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서는 일"이라고 전한 뒤, "나와 우리가 공적 실천의 길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공감과 합의'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고, 바로 그것이 정치"라고 말했다. 또한 "그 정치는 결코 멀리 있지 않고, 내 안에,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가려는 의지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조 총장은 로베르토 웅거 교수의 저서 <주체의 각성(The Self Awakened)>을 소개하며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삶을 성찰해보자"고 조언했다. 웅거 교수는 책에서 당대의 구조는 좀처럼 변하지 않지만, 개개인이 각성을 통해 실현하고 공감하는 "초월과 연결"의 연쇄 고리를 만들어간다면 사회의 구조적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명 발달의 요인은 '이타적 유전자'
그러나 "사회적 공감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총장님의 생각에는 동의한다"면서도, 박진현(경영학과 13학번) 학생은 "사람이 가진 이기적 본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물론 인간은 이기적 존재지만, 이타성이 없다면 이기성도 갖기 어렵다"는 것이 조인원 총장의 답변이었다. "우리 사회는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이기적 존재를 결코 오랜 기간 방치하지 않는다"며, 그것이 '역사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 사회 1등의 특권적 위치'를 어떻게 보느냐는 학생의 물음엔, "1등을 한다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니지만, 1등한테만 특별한, 공감할 수 없는 대우가 주어진다면 그것이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개인적 경쟁 우선의 '불안 시대'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이제는 이를 넘어 수신(修身)과 심화(深化)의 '자기 강화 시대,' 개인적 성취의 공동체적 함의를 중시하는 '공감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진화생물학의 거장 에드워드 윌슨 하버드대 교수의 새로운 학설을 소개했다.



윌슨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저서 <지구의 정복자(The Social Conquest of Earth)>에서 진화의 흐름이 이기적 종족 선택(kin selection)보다는 공동체 보존에 도움이 되는 이타적 행동을 도모하는 집단을 선택한다(group selection)고 주장한다. 이 학설은 40년 전 자신이 발표하고 체계화해온 연구를 뒤엎는 것이었다. 당시 윌슨 교수는 진화론에 입각해 군락을 이루는 생명체(개미)의 사회행동을 분석한 후, 개미와 같은 곤충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동물의 사회적 행위는 동족(친족) 선택의 이기적 유전 요인에 기반한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조인원 총장은 "결국 소통과 공감이 진화 과정에서도 중요하다"고 말한 뒤, "더 나은 나, 더 나은 문명과 정치를 위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나와 타자, 개인과 공동체의 생존과 공동 번영이 담보되는 공감과 합의의 가치"라고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선택이 문명을 이루는 다양한 제도와 규범, 질서와 윤리를 형성해갈 것이라는 점이다. 더 나은 인간과 세계, 문명의 미래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덧붙였다.

영화 <레미제라블>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관한 대화를 나누면서 인간, 문명, 정치를 성찰하고, 책 읽는 방법에 대한 생각도 나눴다. 조 총장은 "책을 읽으면서 한편으론 나와 다른 저자의 지식세계를 접하고, 또 다른 편으론 내 자신을 책읽기에 투영해 나와 저자와의 소통을 상상해본다"면서 "<레미제라블>을 보면서 평생 제도와 구조에 사로잡힌 삶을 살아온 자베르 경감이 다리 위에서 뛰어내릴 때 어떤 생각을 했을지, 무엇을 두려워했을지, 또 자신의 신념과 성찰, 물리적 죽음을 동시에 초래한 제도와 구조의 모순, 그리고 또 다른 인간적, 사회적 미래의 가능성을 많이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학의 사명은 더 나은 나, 더 나은 세계 건설"
이날 북토크는 대학의 역할, 학문하는 자세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조인원 총장은 "인간 수명 100세 시대를 살고 있는 학생들에게 배움은 평생에 걸쳐 필요한 과정"이라며 "평생 학습, 자기 성찰, 자기 창조의 노력"을 강조했다. "영원히 부족한 존재인 개인이 자신의 학술 역량을 키우고, 더 큰 자아를 만드는 것은 더 원숙한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이라면서 "대학은 더 나은 자아와 세계를 성찰하고, 더 나은 인간과 문명을 위해 학술과 실천의 결합을 지향하는 문화를 형성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조 총장은 "자유로운 소통을 통해 교수와 학생이 서로 배우고 학습하는 대학문화가 형성되길 바란다"면서 "항상 '미흡한 나,'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며, '더 큰 배움의 길'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경희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가자"고 당부했다.

북토크에 참가한 김정현(컨벤션경영학과 09학번) 학생은 "개인의 일차원적인 영달보다 좀 더 큰 세계, 인류와 문명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는 총장님의 생각을 직접 들으면서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스스로 각성하길 바란다는 조언을 새기며 경희대학교 학생으로서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현실을 넘어 어떤 삶을 그려나가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됐다"고 밝혔다. 김솔휘(사학과 10학번) 학생은 "소통, 공감, 상생에 대한 의미를 숙고하고, 틀에서 벗어난 사고를 확장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면서 "앞으로도 이런 자리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시간 30분 동안 웃음과 열기가 있었던 토론회가 끝난 뒤, 극장식 무대와 객석으로 꾸며진 네오르네상스관 한 구석에서 참석자 모두는 간단한 다과와 생맥주가 마련된 또 다른 장소로 향했다. 조인원 총장과 학생들은 함께 호프잔을 기울이며 즐거운 담소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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