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당연한 것이 ‘점점더’ 당연해지는 세상
2021-01-19 교육
캠퍼스타운 조성 사업단 창업 사례(1) ‘점점더’, 박민희·송유빈 학생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를 위한 휴대용 점자 라벨기 기획
생활발명코리아에서 대통령상, 캠퍼스타운 창업경진대회 우수상 등 수상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1일 확진자 약 1천 명. 지금 우리 사회가 받은 코로나19 성적표다. 코로나19가 퍼지며 사회적 긴장감이 상승했던 2월, 대학생들의 모금이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18학번 동기인 문수현(경영학과), 박민희(국어국문학과), 송유빈(언론정보학과) 학생의 활동이 선례가 됐다. 활동의 시작은 박민희 학생이 대학 커뮤니티에 올린 모금 글이었다. 50만 원이 목표였던 기부는 4천 6백만 원이 넘었고, 다른 대학에서도 유사한 모금이 줄을 이었다. (관련 기사: 학생 마음을 모아 기적을 만들다)
이중 박민희·송유빈 학생이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위한 점자 라벨기 ‘점점더’를 만들었다. 점점더로 경희대 캠퍼스타운 조성사업단의 ‘2020 KHU 캠퍼스타운 창업경진대회’ 우수상을 수상하고, 특허청과 한국여성발명협회가 주최한 ‘생활발명코리아’에서 대통령상, 사단복지법인 따뜻한 동행의 ‘프렌즈 공모전’ 우수상을 받은 두 학생을 만났다.
점자 라벨기 ‘점점더’로 ‘생활발명코리아’에서 대통령상 수상
송유빈·박민희 학생은 대학에서 처음 만났다. 지금은 송유빈 학생이 언론정보학과로 전과했지만, 국어국문학과 동기였다. 아동,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두 학생은 쉽게 친해졌고, 일상에서 서로의 관심사를 공유했다. 점점더도 일상적 대화에서 시작됐다. 유튜브에서 음료나 약품에 점자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 시각장애인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봤고 시각장애인의 어려움에 깊이 공감해 도움을 줄 실천적 방안을 고민했다.
박민희 학생은 “2019년 통계에 따르면 의약품의 점자 표시 비율은 0.2%이다. 약사법에서도 의약품의 용기나 포장지에 제품 명칭과 유효기간을 점자로 표기하게 규정돼 있지만, 권고사항이라 일부 의약품에만 표기됐다”라며 시각장애인이 겪는 불편을 설명했다. 송유빈 학생은 “시각장애인을 도울 수 있는 점자 라벨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제품이 없었다. ‘왜 이런 제품이 아직 없지?’라는 궁금증에서 자연스럽게 기획을 이어갔다”라고 점점더 개발의 초기를 회상했다.
3학년은 대부분 학생이 취업을 준비하는 시점이다. 두 학생은 그런 시류에 올라타기보다 ‘대학생만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는 생각에 점점더를 기획하며 생활발명코리아에 참가했다. 지난 3월 아이디어를 등록하고 5월과 6월에 온라인 심사와 면접 심사를 받았다. 송유빈 학생은 “생활발명코리아는 우리가 가진 아이디어를 실현할 기회였다. 이 대회는 시제품 제작을 지원하는데 그 부분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라고 말했다. 생활발명코리아는 최종 결과까지 거의 1년간 진행됐고, 두 학생은 대통령상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크기와 무게, 가격 줄여 휴대 가능한 점자 라벨기 ‘점점더’
점점더는 휴대가 가능한 점자 라벨기다. 시중에 있는 점자 라벨기는 크기가 크고 무겁다. 비싼 가격은 덤이다. 이런 이유로 활용성이 떨어지고, 필요하지만 구매는 부담스러운 물품이다. 시각장애인을 돕고 싶은 일반 업주도 구입을 꺼린다. 점점더는 ‘개인이 점자를 출력할 수 있고, 무선으로 휴대가 편하게’ 기획했다. 크기와 무게, 가격을 줄이는 데 집중했다. 스마트폰 정도의 크기로 크기와 무게를 줄이고, 앱의 자동점역기능을 활용해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생활발명코리아에서는 ‘시각장애인의 불편을 줄이는 탁월한 기획’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문제는 기술에 있었다. 평가 중에도 ‘문과생으로 제작에 따르는 기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해결책을 고민하던 와중에 활로를 뚫어준 것은 캠퍼스타운 조성사업단의 ‘2020 KHU 캠퍼스타운 창업경진대회’였다. 이 대회는 창업 아이디어에 대해 상금과 창업 입주 공간, 멘토링, 사업화 지원 연계, 창업정책자금, 경희대의 산학 인프라 활용 등의 기회를 주는 대회다.
점점더는 이 대회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으며 우수상을 받아 회기동에 위치한 창업 센터에 입주했다. 송유빈 학생은 “캠퍼스타운 조성사업단에서 받은 가장 큰 도움은 사무실이다. 코로나19로 카페도 갈 수 없고, 팀원끼리 만나기도 어려운데 사무실이 생기니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라며 “지원금도 받았고, 전담 매니저도 있다. 제품 제작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아이디어로만 시작해 어려웠는데, 캠퍼스타운 조성사업단에서 연결해준 전문가 덕분에 시제품 생산에 한 발짝 다가섰다”라며 캠퍼스타운 조성사업단의 지원을 설명했다.
기술 전문가의 유무는 기획과 더불어 창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 요소이다. 박민희 학생은 “시제품 제작 단계가 큰 벽이다. 둘 다 문과생이다 보니 ‘우리가 생각하는 기술이 구현 가능한지’에 대한 판단이 어렵기도 했다”라며 어려움을 밝혔다. 문제는 CTO(Chief Technical Officer)를 영입해 해결하고 있다. 전기전자공학부 전공자를 팀원으로 영입해 점자 라벨기의 무게와 크기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함께 고심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 관한 관심, 사회적 문제에 ‘내가 할 수 있는 일’ 고민
점점더와 기부금 모금이라는 활동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사회적 약자에 관한 관심이 중심이었다.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퍼뜨렸다. 활동의 이유는 오히려 사소하다. 두 학생은 “사회적 문제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 무력감이 든다”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하지만 무력감에 굴복하진 않았다. 코로나19 기부금 모금으로 두 학생은 개인의 마음을 사회로 확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활동이 다른 대학으로 퍼지며 큰일에 대한 두려움이 적어졌다. 송유빈 학생은 “두 일을 겪으면서 우리가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했다”라고 말했다.
송유빈 학생은 점점더를 기획하며 시민교육 수업을 떠올렸다. 첫 과제가 장애 학생이 대학 공간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한 실태 조사였는데, 시각장애인처럼 눈을 가리고 건물을 돌아다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큰 두려움을 느꼈다. 도로의 점자 블록이 중간에 끊겨 있기도 해서 더 무서웠다. 시각장애인이 일상으로 느끼는 두려움이라는 생각에 더 깊이 고민했다. 점자에 관한 관심은 당연했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도 하고 관련 논문에 천착해 자료를 모았다.
장애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와 시각 장애인용 스마트워치를 개발한 닷(Dot)의 대표를 찾아가기도 했다. 시각장애인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싶기도 했지만, 코로나19로 여의치 않아 설문 조사로 대신했다. 가족이 시각장애인인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도 들었다. 현장의 목소리를 점점더에 담았다. 송유빈 학생은 “장애인을 위한 제품은 내구성이 약하거나 보여주기식으로 만드는 제품이 많다며, 내구성을 좋게 만들어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라며 “내구성을 위해 앞으로는 점점더를 금속 소재로 바꾸는 것도 고려 중이고, 크기와 무게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들의 현재 목표는 시제품 출시다. 크기와 무게를 최대한 줄이고 있지만, 시제품 출시까지는 아직도 많은 단계가 남았다. 박민희 학생은 “우리의 프로젝트가 실패할 수도 있다. 시제품을 만들지 못하면 실패이다. 우리가 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 우리가 생각하는 형태의 제품을 만들어 시각장애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창업의 이유가 수익이 아니라 사회적 기여라는 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회에 좋은 영향 끼치는 사람 되고 싶어”
박민희 학생은 강의를 들으며 창업 활동을 병행하느라 피로도 쌓였다. 인터뷰 중에는 “교수님들께 창업했다고 사정을 봐달라고 할 수도 없고, 시험 기간이라고 해도 일을 미룰 수 없었다. 두 역할을 다 해내는 것이 온전히 나 자신의 몫이라 힘들었다”라며 “창업을 하며 다양한 도움을 받았지만, 학교에 창업과 관련된 학점 제도나 휴학 제도가 더 생겼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두 학생은 점점더를 만들며 고마운 사람들이 늘었다. 송유빈 학생은 “캠퍼스타운 조성사업단은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함께 논의할 수 있어 좋다”라고 말했다. 이어 “단과대학 교수님들에게도 도움을 받았다. 생활발명코리아에는 온라인 투표 점수도 있었는데, 교수님들이 우리를 응원해 주시며 투표에도 참여해 주셨다”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생각이 닮은 두 학생은 “창업도 그렇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목표를 말한다. 창업과 학업 병행이 힘들고, 인문학도로 상품 제작과 창업이라는 새로운 분야로 뛰어들었지만 두 학생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제품 출시란 결과에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점점더는 ‘당연한 것이 점점더 당연해지는 세상’이란 그들의 목표를 향한 첫 프로젝트이다.
글 정민재 ddubi17@khu.ac.kr
사진 이춘한 choons@khu.ac.kr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
-
많이 본 기사
-
멀티미디어
-
-
신간
-
아픈 마음과 이별하고 나와 소중한 이를 살리는 법 처음 만나는 정신과 의...
-
2024 K-콘텐츠 한류를 읽는 안과 밖의 시선 “지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