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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재료에 생명을 불어넣다

2020-07-03 연구/산학

정보전자신소재공학과 최석원 교수 연구팀이 자연계 생체분자가 지니는 ‘카이랄성(Chirality·거울상 이성질성)’을 인공적으로 재료에 부여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카이랄한 재료 특유의 광학 현상은 디스플레이 소자, 바이오센서, 광 스위치, 광 저장매체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 사진 왼쪽부터 최석원 교수, 이재진(석사 3기) 학생.

정보전자신소재공학과 최석원 교수 연구팀, 재료에 카이랄성 부여하는 기술 개발
복잡한 화학적 설계·합성 없이 물리적 방법으로 카이랄 재료 특유의 광학 특성 발현
디스플레이 소자, 바이오센서, 광 스위치, 광 저장매체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 가능

정보전자신소재공학과 최석원 교수 연구팀이 자연계 생체분자가 지니는 ‘카이랄성(Chirality·거울상 이성질성)’을 인공적으로 재료에 부여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카이랄한 재료 특유의 광학 현상 등 새로운 기능을 부여할 수 있다.

카이랄성은 거울로 보면 대칭 구조를 이루지만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어 서로 겹쳐지지 않는 특성을 말한다. 우리 몸의 생명현상에 관여하는 DNA, 단백질 아미노산, 단당류 등 생체분자 대부분이 카이랄성을 띠고 있다. 카이랄성을 띠는 재료는 광회전, 원편광 이색성 등을 나타내는데, 이는 디스플레이 소자, 바이오센서, 광 스위치, 광 저장매체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카이랄성을 지니는 분자는 상당히 복잡한 화학구조를 갖고 있으며, 재료 합성도 매우 복잡하다. 최석원 교수 연구팀은 카이랄하지 않은 재료를 다공성 매질에 충전시키는 것만으로 카이랄한 특성을 발현시켰다.

이번 연구는 일본 이화학연구소 아라오카 후미토 박사 연구팀과 공동으로 진행했으며, 이재진(석사 3기) 학생이 제1저자로 참여했다. 연구 결과는 재료과학 분야 저명 국제학술지인 <ACS Nano>에 지난 5월 26일 게재됐다.

분자의 자발적인 자기 조립·액정 물질 간 상 분리 이용해 다공성 매질 제작

연구 성과 개념도

카이랄하지 않은 재료에 카이랄한 특성을 부여하기 위해선 복잡한 화학적 설계나 합성이 필요하다. 최석원 교수 연구팀은 화학적인 방법 대신 물리적으로 접근했다. 분자의 자발적인 자기 조립 현상으로 얻어지는 3차원의 나선형 섬유 가닥과 액정 물질 간의 상 분리를 이용해 다공성 매질을 제작했다. 다공성 매질의 나노 크기 빈 공간에 카이랄하지 않은 액정 물질을 충전해 카이랄한 재료에서 측정할 수 있는 원편광 이색성 현상을 관측했다. 연구팀은 이 다공성 매질을 활용해 원편광으로 발광하는 현상도 확인했다.

최석원 교수는 “자연계 생체분자에서 흔히 관찰되는 카이랄한 현상을 물리적인 방법으로 부여하는 데 성공했다. 생체분자 대부분이 카이랄성을 띠기 때문에 생체재료 기작의 근본이 카이랄성에서 기인한다고 보기도 한다. 이 때문에 특정 재료에 카이랄성을 부여하는 것은 생명을 불어 넣는 것과 같다. 이번 연구는 생명현상이 없는 물질을 생명현상이 있는 물질로 변환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연구 아이디어는 이재진 학생이 제안했다. 최석원 교수는 “이번 연구는 유기재료의 자기 정렬성, 집합성과 재료 간의 자발적인 상 분리를 잘 이용한 연구다. 이재진 학생이 좋은 아이디어를 내줬고, 연구도 성실하게 해줬기에 기대 이상의 성능을 가진 매질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재진 학생은 “교수님께서 학생들과 수평적으로 소통하시면서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신다”면서 그 덕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설명한 뒤, 우수한 연구 환경 역시 연구에 큰 힘이 된다고 밝혔다. 일례로 정보전자신소재공학과 공용 연구실을 들었다. 그는 “다공성 매질 필름을 제작할 때 사용하는 용매를 찾는 일이 난관이었는데, 학과 공용 연구실에 구비된 수백 개의 용매로 다양한 시도를 한 끝에 적절한 용매를 찾아냈다. 앞으로도 공용 연구실 관리가 잘돼서 학생들이 연구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정보전자신소재공학과 최석원 교수 연구팀은 일본 이화학연구소 아라오카 후미토 박사 연구팀과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해 재료과학 분야 저명 국제학술지인 <ACS Nano>에 논문을 게재했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최석원 교수 연구실은 분자의 자기조립 및 자기정렬성을 이용해 재료의 기능성을 높이는 연구를 한다. 최 교수는 “우리 연구는 공상과학적인 측면이 있다. 이번 연구 주제인 카이랄성 역시 자연계 생체분자는 물론 자전하면서 동시에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지구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우주에서 생명의 기원까지 연결된 공상과학 같은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라고 전했다.

이재진 학생은 “어릴 때 꿈이 마술사였다. 마술이 빛을 이용한 가시적인 눈속임이라서 빛을 컨트롤하는 것을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최석원 교수님 연구실에 들어갔다. 연구 분야가 독창적이고 희소해서 연구에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교수님께서 용기를 주셨다. 경희대에서 교수님과 함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자부심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이재진 학생은 연구와 함께 창업 활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학부 2학년 때 SK 청년 비상 창업동아리에 뽑혀 창업했는데, 실패를 경험하고 기술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그는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고, 창업의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도 하고 있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실험실창업지원사업, 중소벤처기업부 예비창업패키지, 서울시와 서울산업진흥원이 운영하는 메이커스페이스 지캠프(G·CAMP)의 티스타즈(T-Stars) 등 여러 창업공모전에 당선됐다. 이재진 학생은 “모두 기술 기반 창업을 지원하는 공모전이었다. 연구하면서 꿈에 한 발짝씩 다가가는 것이 즐겁다. 내가 개발한 기술로 사람들이 편리한 삶, 이로운 삶, 행복한 삶을 누리면 좋겠다”고 밝혔다.

최석원 교수는 “이재진 학생은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면서 연구에도 적극적이다. 창업계획서를 봐도 수준이 높았고,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드러났다. 도전적인 자세로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재진 학생은 “연구 분야가 독창적이고 희소해서 연구에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교수님께서 용기를 주신다. 경희대에서 교수님과 함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자부심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타 학문 분야와 협업, 카이랄 증폭 매질 개발 등 연구 확장
최석원 교수 연구팀은 앞으로 타 학문 분야와 협업, 카이랄 증폭 매질 개발 등을 통해 연구를 확장해나갈 계획이다. 최석원 교수는 “의약품에서는 카이랄성이 독성, 부작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중요하게 다룬다. 카이랄성을 선택적으로 흡착해 원하는 카이랄 물질을 얻는 등의 방법으로 확장해 연구할 수 있도록 약학 및 화학공학 분야 연구실과 협업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진 학생은 “최근에 의도적으로 한쪽 방향의 카이랄성을 부여하는 실험을 하던 중에 기존 카이랄성이 증폭되는 현상을 관찰했다. 새로운 카이랄 다공성 매질을 통해 원편광 강도와 성능을 높이는 방법을 꾸준히 연구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의 기초연구사업(기본연구) 등의 지원을 받았다.

글 오은경 oek8524@khu.ac.kr
사진 정병성 pr@khu.ac.kr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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