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기고]‘코로나19’라는 저주 혹은 기회
2020-04-29 교류/실천
코로나19 기고(5) 문화
초유의 사태, 문화예술 활동 중지로 업계 종사자의 삶의 기반 무너져
문화계 강자 독식의 구조 코로나19 사태 계기로 변해야
‘코로나19’ 팬데믹은 전세계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지구촌을 지배해온 획일적 관행과 틀이 깨졌다. 새로운 일상의 기준 즉 ‘뉴 노멀(New Normal)’ 시대가 열린 셈이다. 코로나19가 일으킨 공포감 속에서도 미래에 펼쳐질 혁신적 삶에 대한 기대가 나타나고 있다. 불안을 넘어 미래를 전망해보아야 할 이유다. 이에 코로나19 이후의 삶을 예측하는 전문가 견해를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다섯 번째는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문화’계에 관한 예측이다. 이효인 예술·디자인대학 교수가 우리를 위로하는 문화적 요소와 이후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편집자 주>
고교 시절 기술 교과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20년 후에는 화장실에서 손수건 같은 모니터를 못에 걸어두고 텔레비전을 보며 용변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말을 기억하는 동시에 덕분에 과학 기술에 대한 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던 나를 보면, 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된다. 스마트폰이 나온 시기를 생각하면 그 선생님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은 비록 15년 정도 지체되긴 했지만 정확했다.
이미 전문가들이 몇 년 전부터 바이러스 전염병 사태를 예고했다고는 하나, 그들이나 일반인이나 모두 ‘초유의 사태’를 겪고 있다. 그 누구도 지금의 사태를 선생님처럼 구체적으로 말해 주지 않았다. 여기에는 지성(智性), 덕성(德性), 체력이 모두 소용없었다. 오직 의료 시스템과 의료진의 헌신적 노력, 정부와 시민의 실천적 협력만이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생존을 앞둔 절실함과 비장함을 조금 넘어서자 이제 공황에 가까운 경제 상황이 예고됐다. 이 역시 생존이 달린 급박한 문제이다.
인류 생존이 걸린 급박한 문제 앞, 한 장의 사진이 우리를 위로해
이러한 상황을 그나마 위로한 것은 ‘순순한 상처’였다. 갓 스물 중반을 지났음직한 여군 장교의 맑은 눈 아래 콧잔등에 앉은 마스크 상처. 그 이미지는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는 사랑, 보시, 헌신 그 자체였다. 우리는 그 이미지를 통해 한국의 의료진이 우리를 지켜준다는 점을 믿게 됐고, 국가와 정부를 신뢰하게 됐으며, 이웃 시민을 향한 새삼스런 애정과 연대감을 느끼게 됐다. 그렇지만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다. 경제는 어떻게 할지, 각 영역에서 무너져가는 시스템의 기반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해마다 혹은 일 년에 두 번 이상 이런 전염병이 돈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가장 중요한 문제(산업 기반과 경제 구조)와 그다음으로 중요한 문제(건강관리 체제와 교육 등의 일상생활)에 대해 서로 목소리를 내고 경청하며 최대한의 정책적 합의와 실천을 끌어내야 한다. 이는 논리적 행동과 감성적 행동 모두를 동반한다. 감성적 행동의 예로는 전 세계 의료진을 위로하기 위한 콘서트 ‘One World: Together at Home’을 들 수 있다. 이는 세계 시민의 연대와 극복 의지를 보여준 사례이다.
이른바 ‘랜선 콘서트’의 형식으로 전개된 이 행사에는 폴 매카트니, 롤링 스톤즈 등의 ‘전설’과 빌리 아일리시, 테일러 스위프트 등 현재의 팝스타, 한국 SM의 프로젝트 그룹 ‘슈퍼엠’, 홍콩과 인도 등 다양한 국가의 뮤지션이 참가했다. 이외에도 고가의 뮤지컬, 오페라, 연구회 등이 무료로 온라인에 배포되고 있고, 한국 가수들도 ‘사노라면’을 힘차게 불러 퍼뜨렸다. 정말 위로가 됐다.
예술노동자 생태계 붕괴 우려돼
하지만 여군 장교의 ‘순순한 상처’를 담은 이미지를 계속 소구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찬란한 공연이나 뛰어난 가수의 무료 위로 공연의 효과도 한계는 있다. 오프라인의 실제 접촉과 이를 통한 경제적 수익 창출이 이뤄지지 않으면 예술 산업은 기반부터 무너져 내릴 것이다. 비록 온라인에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오프라인의 만남에 의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행동을 촉발하는 문화적 행위가 거의 고사 직전에 놓인 셈이다. 전시회, 공연, 영화제, 축제, 시민 행동 등 모든 활동이 바이러스가 야기한 시공간의 제약에 갇혔다.
시간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시기에 각종 문화행사가 몰릴 수도 있다. 그것이 지속되면 ‘문화 향유 집중 휴가 시즌’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그 시즌이면 일주일 내내 사람들이 혼자 혹은 친지, 친구와 함께 각종 문화예술 공간을 찾게 될 것이다. 또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2미터 간격을 두고 관람할 수 있는 축구장, 야외 공연장 등이 주요 문화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고, 드라이브인 극장 및 공연장도 활성화할 수 있다. 물론 3D 영상을 통한 공연 및 전시를 감상하는 행위도 더욱더 활성화할 것이다.
하지만 시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이러한 시도조차 예술노동자 생태계를 더욱더 강자 독식의 구조로 강화하게 한다. 그 결과 예술 후속세대의 성장과 진입은 더 어려워지고, 프리랜서 문화예술 종사자의 생계는 치명적으로 위험해진다. 정부로 대표되는 사회는 사지로 내몰리고 있는 프리랜서 노동자에게 화급한 시선을 보내야 한다. 그들이 자신과 지역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을 하루빨리 세워야 한다. 예컨대 적어도 동, 면 수준 단위의 예술생산 및 소비 시스템을 구축하고 최저생계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
문화적 ‘다성성’ 실현의 계기로 삼아야
코로나 사태 전부터 한국영화계는 “봉준호 빼고는 다 힘들다”라는 우스갯말이 나돌았다. 급기야 저주에 가까운 코로나19 사태가 닥친 지금 우리는, 그간 회피해왔던 우리 문화예술 및 교육에 던지는 질문과 마주해야 한다. 한 사회는 정치·경제 체제라는 가시적 부분과 눈에 보이지 않는 ‘분위기’ 즉 문화로 구성된다. 문화란, 소리가 있는 공연이나 침묵이 존재하는 전시와 독서 공간은 물론 무심한 일상 공간에도 스며들어 있다. 이는 과학계에서 아직 해명하지 못한 ‘암흑물질(Dark Matter)’과 유사한 형태이다.
문화, 즉 사회 ‘분위기’는 ‘말’이라고 다르게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말’은 언어적 요소만이 아니라 표정과 몸짓 등 비언어적 요소까지 담고 있어 복합적이다. 공연예술과 같은 동적 결과물뿐 아니라 정적 결과물인 의상, 자동차, 건축 디자인의 구상-작업-실용의 과정에서도 ‘말’은 필수이다. 모든 문화예술은 그것이 동적이든 정적이든 기획과 소비의 과정에 삶의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말’과 ‘분위기’ 속에서 인간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느끼며, 자각하고 결심한다. 미하일 바흐친(Michael Bakhtin)은 문화적 소통의 최고 수준을 다성성(Polyphony)에서 찾았다. 즉 여러 개의 목소리가 허용돼야 하고 그것은 또 대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말이다.
과연 그간 우리 문화예술은 다성적이었는가? 이에 대해 흔쾌히 답하기 쉽지 않다. 지나친 서바이벌 게임 방식의 문화 유행, 열광적 팬덤, 홑목소리(Monopony) 위주의 소비문화가 대세가 아니었던가? 코로나19는 우주 속의 먼지에 불과한 인간의 생태파괴, 소비찬양, 강자 독식 현상에 대해 준엄하게 묻고 있다. 큰 문화와 균형을 이루는 작은 공동체 문화, 마을 공연, 성찰적 학습 등을 요구한다. 그것은 익숙한 자극과 쾌락을 불편하게 여기며, 바로 발 앞의 깨진 유리 조각부터 치우는 일이기도 하다. 각자가 내면으로 들어서길 권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사태는 정말 비싼 값을 치른 소중한 기회인지도 모른다.
경희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 연극영화학과 교수. 경희대학교 법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한국영상자료원 원장을 지냈다. 2007년부터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에서 근무하고 있다. 영화이론, 영화사, 시나리오 등의 강의를 담당하고 있으며, 영화역사와 역사적 미적개념 연구를 하고 있다. 저서 <한국근대영화의 기원>(2018) 등의 저서와 논문 <관습과 뉴웨이브의 공진화, 1970~80년대 한국 영화: Coevolution of Conventions anf Korean New Wave: Korean Cinema in the 1970s and 80s>(2019) 등을 저술했다.
글 이효인 교수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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