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기고] ‘초월적 위험사회’가 도래하다
2020-04-22 교육
코로나19 기고(4) 사회
재택근무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나’를 고민한 시간 늘어
나와 공동체 모두에 충실해야 이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어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지구촌을 지배해온 획일적 관행과 틀이 깨졌다. 새로운 일상의 기준 즉 ‘뉴 노멀(New Normal)’ 시대가 열린 셈이다. 코로나19가 일으킨 공포감 속에서도 미래에 펼쳐질 혁신적 삶에 대한 기대도 나타나고 있다. 불안을 넘어 미래를 전망해보아야 할 이유다. 이에 코로나19 이후의 삶을 예측하는 전문가 견해를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교육, 의학,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측면의 전망 소개한다. 네 번째 주제는 ‘사회’로 김중백 정경대학 교수가 코로나19 사태로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에 어떤 변화가 몰아닥칠지를 주제로 한 의견을 전해왔다. <편집자 주>
코로나19 이후의 개인과 사회의 변화
수업 시간에 강의 대신 점심 메뉴 선정에 집중하던 학생의 모습이 그립다. 일과 후 절친과 함께 하는 삼겹살 한 점의 ‘소확행’이 언제였던지 기억이 희미하다. 택배 배달하시는 분이 또 하나의 가족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2020년 4월을 살아가는 나의 일상, 아니 한국인의 삶이다.
2019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후 ‘코로나19’)는 우리의 삶을 왜 바꿔 놓았는가? 코로나19는 2019년 12월에 최초로 확인된 호흡기 바이러스이다. 메르스나 신종 플루보다 코로나19는 감염범위가 워낙 넓어 낮은 치사율에도 사망자 수가 훨씬 많다. 2020년 4월 16일 기준 대한민국의 코로나19 관련 사망자 수는 229명에 이른다. 이 숫자는 국민의 사회적 거리두기와 의료진의 헌신으로 이룬 결과이다. 우리와 비교해 서구의 상황을 보면 코로나19의 치명성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심지어 시간의 기원을 B.C(Before Christ)와 A.D(Anno Domini) 대신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올 정도이다. 교류의 범위가 확대되고 도시화에 따른 밀집도가 높아진 초연결시대에서 코로나19로 대표되는 ‘미지(未知)의 위험’이 성별, 연령, 계층은 물론 국가를 넘어 확산하며 사람의 사회적 행위와 사회적 사고방식을 변화시키는 현상은 어쩌면 현대사회의 필연적 운명일지도 모른다.
코로나 사태와 초월적 위험
코로나19는 울리히 벡이 <위험사회>에서 제시한 ‘초국가적이며 비계급적 위험’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믿어왔던 유럽과 북미에서 사망자가 비현실적 속도로 증가하는 상황을 보면 선진사회라고 해서 새로운 형태의 위험에서 안전하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정보로 판단할 때 코로나19를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같이 근대화 과정에서 양산된 새로운 위험이라 말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해결책도 보이지 않고 원인도 분명하지 않다는 점에서 울리히 벡이 제시한 근대화 과정에서 발현된 위험을 넘어선 일종의 ‘초월적(超越的) 위험’의 성격을 갖는다. 그렇기에 앞으로 우리 삶에 미칠 영향도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더구나 코로나19 같은 초월적 위험은 일회성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지 모른다. 빌 게이츠가 ‘글로벌 전염병으로 10억 명도 죽을 수 있다’라고 경고했듯 코로나19가 아닌 또 다른 전염병이 우리를 덮칠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런데 전염병만이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초월적 위험일까? 누군가 의도를 갖고 잘못을 범하지 않아도 현대사회의 부산물로 발생하는 기후위기와 같은 환경문제, 인공지능 발달에 따른 실업 문제, 저출산에 따른 고령화 문제 등 우리 삶을 위협하는 상황은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우리는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인간을 위협한 스카이넷이 우리 옆에 스텔스기와 같이 흔적 없이 다가올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이런 불확실성의 시대에 이미 진입했는지 모른다.
나 자신에 충실한 삶
그렇다면 예측 불가의 초월적 위험과 공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람의 삶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발현되는 모습으로 우리가 앞으로 가져야 할 자세와 행위규범에 대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먼저 ‘나’라는 존재를 더욱 깊이 생각하고 다른 사람과 차별되는 ‘나 자신의 삶’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최근 베스트 셀러 목록 가운데 <각자도생(各自圖生) 사회>라는 책이 있다. 저자는 “어설픈 책임 대신 내 행복을 채우는 게 공동체를 지키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재택근무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본의 아니게 우리 삶에서 각자도생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처음에는 불안하고 불편했다. 지금도 사람이 그립고 모임을 갈망한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찾아온 재택근무와 재택학습은 더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며 나를 더 많이 고민하고 나 자신의 삶의 의미를 반추하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사회학자 리스먼은 <고독한 군중>에서 현대인은 ‘타인지향형’ 삶에 지배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소셜미디어가 발전하고 사회적 밀집도가 어느 때보다 높은 이 시점에서 코로나19에 따른 거리두기는 역설적으로 타인지향적 삶의 굴레는 극복하고 성찰적 자율성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이다. 더구나 가부장적 전통에 기반한 집단주의적 성격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그 함의가 더욱 크다. 코로나19에 따른 거리두기가 자아와 본질에 대한 거리줄이기로 승화되기를 기대한다.
공동체에 충실한 삶
동시에 우리는 타인과 맺은 관계를 더욱더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왜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가? 이는 다른 사람이 뿜어낸 비말에 따른 코로나19 전염을 막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비롯한 행동이다. 왜 우리는 신천지에 그토록 분노했는가? ‘초월적 위험’은 개인의 의도와 관계없이 누구나 위험의 진원일 수 있는데, 대중은 신천지 종교집회가 공동체의 안녕을 위협하는 직접적 예이기 때문에 분노했다. 나의 위험이 남의 위험인 동시에 남의 위험이 곧 나의 위험이기도 하다.
각자도생을 통한 자신의 발견이 가지는 의미가 중요하지만, 내면적 본질의 추구만으로 우리 사회의 위험을 극복할 수 없다. 타인과 공동체에 관한 관심만이 더 큰 위험에서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남을 배려하고 위하는 마음이 없으면 나도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몸소 깨달았다. 공공선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그저 내가 존중받고 싶고 보호받고 싶은 만큼 남을 존중하고 보호할 때 구현될 수 있다. 코로나19는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나를 지켜주는 그물망이 동시에 나를 위협하는 시한폭탄임을 경험하게 해줬다. 공동체의 의미에 대한 실천적 관심이 우리 삶의 행위규범으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위기(危機)는 위험(危險)인가, 기회(機會)인가?
코로나19 사태처럼 짧은 시간에 광범위한 사회적 변화를 가져온 사건은 흔치 않다. 우리 기억에 남아있는 전대미문의 사회적 위험이 그 예이다. 1997년 IMF 경제 위기나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는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꾸준히 축적된 사회적 모순과 정부의 무능이 어느 순간 터진 결과이다. 그런데 지금 코로나19는 앞의 상황과는 다르다. 원인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방향과 속도로 발생했고, 짧은 기간에 사회 구성원 전반의 행위규범과 사고방식에 영향을 줬다. 앞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위험은 이렇게 갑작스럽고 전방위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대응은 신속하고 범사회적으로 진행됐다. 마스크 대란의 혼란이 수습되는 데도 불과 몇 주밖에 걸리지 않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고통스럽지만, 국민 대다수는 기꺼이 실천하고 있다. 앞으로 일상이 될 초월적 위기는 어쩌면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순기능을 할 수도 있다. 단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과정은 제도와 리더십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가 스스로 성찰하고 공동체의 중요성을 인식해 자발적으로 실천할 때 위험에 대처할 수 있다는 교훈을 새길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문명사적 전환기의 한 기점이 될지 섣불리 예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개인과 공동체는 지금 이 과정에서 다양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위기는 우리가 어떻게 인지하고, 대응하며, 변화하느냐에 따라 위험일 수 있고 기회일 수도 있다. 변화를 받아들이되 나를 위한 변화, 공동체를 위한 변화가 무엇인지 성찰하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코로나19가 문명사적 몰락이 아닌 재탄생이 될 수 있게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 텍사스 주립대(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테네시 주립대(University of Tennessee at Knoxville)에서 조교수를 거쳐 2010년부터 경희대에 재직하고 있다. 사회통계학, 도시사회학, 사회적 기업가정신 등의 강의를 담당하고 연구는 보건사회학, 가족사회학에 집중하고 있다. 경희대 미래정책원 부원장과 총장실 정책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경희대 교육혁신사업단장 및 고등교육연구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다.
글 정경대학 김중백 교수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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