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국민의 멘토로 우뚝 서다

2020-01-29 연구/산학

박은정 동서의학대학원 교수가 ‘2019 사회혁신유공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행정안전부가 ‘경력단절 여성과 대학생의 사회진출을 돕는 멘토 역할’과 ‘국민이 희망을 품고 미래를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갈 수 있는 멘토 활동’을 인정한 결과이다.

박은정 동서의학대학원 교수, ‘2019 사회혁신유공 대통령 표창’ 수상
경력단절 여성과 이공계 학생의 사회진출 돕는 멘토 활동 인정받아

2017년 동서의학대학원 박은정 교수는 2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Highly Cited Researcher, HCR)’에 선정됐다. HCR 선정과 함께 ‘경단녀(경력단절 여성)’이자 ‘비정규직 교수’라는 배경에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이후 경희대학교 동서의학대학원에 임용되며 다시 사회의 관심을 받았던 박 교수가 행정안전부가 선정하는 ‘2019 사회혁신유공 정부포상’에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선정 이유는 ‘경력단절 여성(과학자) 및 (이공계) 대학생들의 사회진출을 돕기 위해 멘토로서 적극 활동’, ‘저출산, 고령사회에 필요한 보건, 의료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국민의 공감대 형성 및 동참을 유도할 수 있도록 과학자의 사회적 역할 수행’, ‘국민들이 희망을 품고 미래를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멘토로서 활동’이다.

경희대 임용 후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에 나섰던 박은정 교수에게 이번 수상은 뜻깊은 일이었다. 대중 강연은 박은정 교수가 생각하는 ‘천직’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가 박 교수에 거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사회공헌 활동을 멈출 수 없었다. 다양한 활동을 펼치면서도 연구에 몰두하기 위해 스스로 응원하고 있는 박은정 교수를 만나, 정부포상과 현재의 연구, 앞으로의 목표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대외활동은 연구를 이어가게 하는 디딤돌
Q. ‘2019 사회혁신 유공 정부포상’을 받았다. ‘연구자’에게 사회혁신 포상은 이색적인 성과 같다. 이번 정부포상은 어떻게 이뤄졌는지 궁금하다.
경희대 임용 후 많은 일이 있었다. 2018년과 2019년에는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한 ‘실패박람회’의 홍보대사를 했다. 과학 분야에서 가장 실패를 많이 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선정됐다고 들었다. 영상물도 찍고, 대학, 정부 기관 등 다양한 곳에서 강연도 했다. 이런 활동을 인정받아 ‘2019 사회혁신 유공 정부포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경력단절을 너무 무겁게 볼 필요가 없다. 일부 학생은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고 휴학을 하고 배낭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졸업 시기를 늦추려고 일부러 휴학하는 학생도 있다. 이 모든 것이 경력단절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연히도 나는 경력단절 기간에 여성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했고, 그 속에서 여성이 아닌 한 가정의 주부이자 한 자녀의 ‘엄마’로서 잘 살아내기 위해 공부가 필요함을 알게 됐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일이든 동기부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결혼 전에 대학원에 진학했다면 이와 같은 성과를 올리지 못했을 것 같다.

그리고 실패는 누구나 한다. 따라서 실패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자신이 왜 실패했는지 그 원인을 분석하고 극복할 방법을 찾는다면, 실패의 경험은 ‘자신의 미래를 여는 키, 다시 말해 자신이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나 개인적으로는 성취에 장애가 되는 모든 상황이 실패라고 생각된다. 건강관리를 잘못한 것도 실패로 느껴졌다. 실패한 상태로 끝낼지, 성공의 발판으로 만들지는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실패를 통해 나는 또 다른 나로 태어나기 때문에 실패는 ‘부모’ 같은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Q. 2017년 임용 이후 대외활동이 많다. 이런 활동이 연구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외활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이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은 무엇인가?
지난 학기에는 주말도 없이 연구와 대외활동, 강의를 병행했다. 정말 체력의 한계를 느낀 적도 있었고, 가끔은 ‘연구만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일정이 너무 빡빡할 때는 그 부담감으로 잠을 자다 여러 번 깨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원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더욱이 난 대중한테 엄청난 선물을 받았다. 그것은 내게 주어진 또 다른 숙제를 의미한다. 그리고 내 경험이 누군가의 삶에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가? 어쩌면 데이터 하나 만드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방송을 통해 대중에게 건강수명 연장의 중요성을 알리고, 환경성 질환 예방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독성학자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회적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일부는 활발한 대외활동을 좋지 않게 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구비가 없어서, 사회활동이 바빠서 연구할 짬이 없다는 핑계를 대지 않으려 더 많은 시간을 실험실에서 보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경희대에 와서 1년은 도시락을 싸서 다녔는데, 작년에는 도시락을 쌀 시간도 없었다. 운동이나 집안일도 거의 못 하고 있다. 남편과 아들의 전폭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지난 1년을 버티기 힘들었을 테다. 그리고 방송이나 강연 등의 수익 대부분을 연구에 투입하면서 ‘나의 연구를 독려하는 기부금’이라고 생각했다. 덕분에 추가 연구비가 없는 현재도 연구를 이어갈 수 있다. 지난주에 나의 100, 101번째 논문이 연달아 통과됐다. 그리고 미세먼지, 미세플라스틱, 가습기 살균제 성분 등을 주제로 실험한 논문도 현재 집필 중이다.

‘경단녀’라는 단어는 박은정 교수에게 꼬리표처럼 붙어있다. 하지만 박은정 교수는 개의치 않는다. 본인의 사연으로 하고 싶었던 연구를 계속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경단녀’ 단어 꼬리표지만 신경 쓰지 않아, 하고 싶은 연구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
Q. ‘경단녀’라는 단어는 교수님을 표현하는 대표적 수식어다. 경단녀라는 단어는 어떻게 생각하나?
사회혁신 포상도 경단녀라는 단어로 받았다. 과학 쪽에서 상을 먼저 받아야 하는데, 지난봄에 받은 ‘홍진기 창조인상’이나 포상도 그 밑바탕에는 경단녀라는 단어가 있었다. (웃음)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 단어로 주목받았고 덕분에 2009년부터 하고 싶은데 머릿속에 담고만 있다가 끝내 못 할 뻔했던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여러 강연 자리에서 여학생을 만난다. 다들 결혼을 안 하고 싶다거나, 늦추고 싶다고 말한다. 결혼의 필요성이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많이 떨어진 것 같았다. 왜 그런지 고민했는데 경력단절로 장래가 어두워지는 상황이 문제다. 때로는 극복할 용기가 없어서 주저하는 학생도 있었다. 이런 학생에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희망을 줄 수 있다면, 그 역할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Q. 오히려 연구에 대한 집념이 느껴진다. 최근에는 어떤 연구를 해왔는가?
가습기 살균제 연구를 해왔다. 가습기 살균제 성분과 만성 폐질환의 연관성을 살펴본 연구다. 거의 2년 정도 가습기 살균제에 함유된 성분의 독성 연구를 진행해 총 5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임계 미셸 농도(Critical Micelle Concentration)’와 독성의 상관성을 규명했다. 독성 기전이 제품에 함유된 성분의 특성에 따라 변하고 그 때문에 환자에게 생기는 증상도 달라지는 것을 확인했다.

임계 미셀 농도는 계면활성제의 수용액에서 ‘미셸(Micell)’이 생성되는 계면활성제의 임계 농도를 말한다. ‘미셀’은 분자 내에 친수성 부분과 친유성 부분을 갖는 ‘양친매성물질’의 집합체인데, 이런 물질을 물에 녹이면 특정 농도 이상에서 친수성 부분은 바깥쪽으로, 친유성 부분은 안쪽으로 향한다. 이러한 원리로 세정 또는 세탁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가습기 살균제 중 PHMG-P, MIT, Kathon CG 등을 세포와 동물에 처리하고 그 독성 기전을 비교, 평가했다. 이 성분은 모두 임계 미셀 농도에서 독성이 거의 최대에 이르지만, 독성이 나타나는 양상은 모두 달랐다. 또 이러한 물질에 만성적으로 노출되면 체내의 면역세포인 ‘호중구(Neutrophils)’와 ‘호염기구(Eosinophils)’가 활성화해 염증을 일으키고 폐섬유증과 폐암으로 이어질 것으로 추정됐다. 그래서 가습기 살균제의 발암성 관련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논문을 발표하기까지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살정제로 분류되는 물질을 이용한 연구논문을 다루지 않는 규정이 있는 저널도 있었고, 또 해외 연구자들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다룬 뉴스를 접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논문 심사위원 세 명의 공통적 의견이 ‘그래서 사람이 죽었냐?’였다. 관련 영문 기사를 첨부해 보냈고, 그 기사를 읽은 후에야 내 데이터의 중요성을 인정해주었다.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는 대외활동으로 바쁜 와중에도 박은정 교수는 연구를 놓지 않았다. 지난 2년간은 가습기 살균제와 발암성 관련 후속 연구의 필요성을 밝혀내는 연구도 했다. 이제 101번째 논문을 게재한 그에게 연구에 대한 집념이 느껴졌다.

연구 유지할 힘은 가족과 주변의 응원에서 얻어
Q. 많은 사람이 하지 않는 연구를 꾸준히 하는 데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특별한 이유가 무엇인지? 연구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얻는지?
솔직히 사회적 파장이 큰 연구내용을 다루다 보니 심적 부담이 매우 크다. 그러나 나는 편찮으신 부모님의 병간호 생활을 하면서 한 개인의 행복을 위해, 또 한 가정의 행복을 위해 가족의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게 됐다. 국가 경제를 고려할 때도 환경성 질환 환자의 증가는 고령화 사회와 더불어 보건의료비 부담 가중으로 이어진다. 독성학자로서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이다. 그래서 난 이런 연구를 멈출 수 없다. 국민의 건강수명을 연장하고, 가정의 행복을 지킬 수 있다면 독성학을 공부한 연구자로서 더 큰 보람은 없을 것 같다.

다른 원동력은 가족이다. 작년엔 내가 너무 바쁘니까 남편과 아들이 주말에 내가 하던 집안일까지 거의 다 해주었다. 그 시간에 집 근처 맛집을 찾아 맛있는 것 먹고, 산책하며 쉬라고 했다. 가족과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충전이 된다고 느낀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응원도 받는다. 한 대학원생은 그동안 연구 진도가 나가지 않는 본인에게 실망하고 화만 내고 있었는데, 강연을 듣고 본인에게 미안했다고 말했다. 2008년 다른 대학에서 강의했는데, 이 강의를 들은 학생 한 명은 캐나다에서 메일을 보내왔다. 당시에 내가 무척 열정이 넘치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잘 돼서 고맙다고 하더라. 내가 더 감사했다.

Q. 경희대에 임용되면서 노벨상에 대한 의지도 보였었다. 그 꿈은 유효한 꿈인가?
(웃음) 우선, 아버님이 편찮으신 기간이 길었다. 그래서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가지도 못했고, 중고등학교 시절 아들 사진도 많이 못 찍어 줬고, 실험 일정을 핑계로 입학식, 졸업식에도 못 갔다. 그런 시간이 너무 미안해서 한풀이처럼 온 가족이 다 같이 노벨상을 타러 스웨덴으로 여행가는 상상을 했다.

사실 연구자로서 노벨상은 사회 공헌과 기여도를 평가하는 상이라 생각한다. 나도 사람이다 보니 피곤하면 쉬고 싶고, 주말엔 놀러도 가고 싶고, 가족과 저녁도 먹고 싶고, 열심히 뛰어서 번 돈도 나를 위해 쓰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순간적이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면 난 실험실에 앉아 있더라. 아직 덤으로 얻은 연구 인생에 감사하는 마음이 더 크다.

이 마음이 변치 않고 욕심을 버리고 사회에 필요한 데이터 만드는 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연구자로서 인정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환경성 질환 연구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올라가면 또 누가 아나? 내게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날지? 그래서 아직은 노벨상 받고 어머니 산소에 다시 찾겠다는 꿈도 버리지 않고 있다. 내 체력이 버틸 수 있는 때까지는 꿈꾸고 싶다.

글 정민재 ddubi17@khu.ac.kr
사진 이춘한 choons@khu.ac.kr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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