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강형규 성악과 교수, 대한민국 오페라 대상 남자 주역상 수상
2020-01-14 연구/산학
오는 2/12(수) 수상자 음악회 개최, 올해 독창회와 오페라로 관객 만날 예정
성악과, 시대 흐름 발맞춘 교육 시스템 변화 가능해, 음대 리모델링으로 인프라도 확보
“인간 됨됨이는 기본, 대학에서는 무엇보다 기본기 익혀야”
강형규 성악과 교수가 제12회 대한민국 오페라대상 남자 주역상의 주인공이 됐다. 대한민국 오페라대상은 대한민국 오페라대상 조직위원회와 (사)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오페라계 최대 이벤트다.
이번 남자 주역상은 2018년 11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국내 오페라에 출연한 성악가 중 최고의 기량을 뽐낸 남자 개인에게 돌아갔다. 오는 2월 12일(수)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수상자 음악회가 개최된다. 음악대학은 제4회 여자 주역상을 받은 이아경 성악과 교수에 이어 강형규 교수가 남자 주역상을 받음으로써 남녀 주역상 모두를 배출한 영예를 얻었다.
음악대학 최초 중앙콩쿠르 입상, 본격적으로 성악가 꿈꿔
Q. 대한민국 오페라 대상 수상을 축하한다.
매우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 학생을 지도하다 보니 오페라를 많이 한 편은 아니었는데, 앞으로 한국 오페라계 발전에 기여하라는 뜻으로 주신 상 같다.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성실하게 노력해야겠다. 오페라 가수로서 본이 되는 사람이 되라는 채찍질로 생각하고 감사히 받았다.
Q. 성악가의 길을 어떻게 걷게 되었는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시작했으니 남들보다 좀 늦었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좋아하고, 합창단 활동도 했지만, 당시에는 성악가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고, 무대에서 노래하겠다는 꿈도 꿔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의 권유가 있었고, 교회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셔서 시작했다. 우연히 성악가의 길로 들어선 셈이다.
경희대에 91학번으로 입학했는데, 1, 2학년 때는 대학 생활을 즐겼다. 즐기면서도 해야 할 일은 다 했다. 군 전역 후 대학 3학년 때, 콩쿠르가 어떤 건지도 잘 모른 채 처음으로 콩쿠르에 나갔다. 그랬는데 경희대 음악대학 최초로 중앙콩쿠르에서 입상했다. 이 길을 계속 가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여기까지 오게 됐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다면?
2004년 이탈리아 활동 당시 꼬모 극장에서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Andrea Chénier)>의 카를로 제라르 역을 맡았다. 프랑스 혁명기에 일어났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는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내가 맡은 제라르는 하인이었다가 혁명 이후 정부 요직으로 기용되는 인물인데, 바리톤으로서 가장 극적인 아리아 중 하나인 ‘Nemico della patria(조국의 적)’를 부른다. 매우 아름다운 아리아다.
보통 아리아를 끝내면 관객이 많은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그날따라 관객이 굉장히 많이 환호해주셔서 그 자리에서 앙코르를 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다. 오페라 무대에서 앙코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나 바리톤 레오 누치(Leo Nucci) 같은 대가가 하는 경우는 있었다. 아리아를 하고 나서 박수가 끊이지 않아 다시 한 번 더 불렀다. 그때 관객에게도 고마웠고,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됐다.
오페라는 역할에 빠져들어야, 소리 전달 및 발음도 중요
Q. 연주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오페라는 역할에 빠져들어야 한다. 살면서 한 번도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지만, 무대에서는 사람을 죽여야 하고, 배반해야 한다. 바리톤은 보통 악역을 맡는 경우가 많은데, 배역으로 변신하는 게 중요하다. 또 오케스트라를 뚫고 관객에게 전달하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나는 오페라 가수치고 체구도 작고, 목소리도 큰 편은 아니다. 목소리가 크고, 덩치가 있다고 소리가 멀리 나가는 게 아니기에 소리를 전달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발음을 어떻게 하는지도 매우 중요하다. 아나운서가 또박또박 발음하며 뉴스를 전달하는 것처럼 말이다.
반면 가곡은 시다. 시는 사람마다 해석하는 게 다르다. 시 한 편을 놓고 어떤 사람은 사랑을 느낄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슬픔을 느낄 수도 있다. 다양한 감정을 품은 단어를 어떻게 상징적으로 표현할 것인지 연구한다. 예를 들어 딸의 죽음을 ‘꽃이 시들어간다’고 표현할 때가 있다. 이 뉘앙스를 잘 살리는 게 가곡에서는 중요하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연구년을 보내며 다양한 미술 작품을 보고, 음악회를 가면서 영감을 얻고 있다.
Q. 연주 활동을 해오며 힘든 일은 없었나? 어떻게 극복했나?
성악가는 외로운 직업이다. 무대에 서니 화려한 삶을 살 것 같고, 사람도 많이 만날 것 같은데 그렇게 할 수 없다. 노래하려면 포기할 게 많다.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노래하는 데 방해되는 음식이라면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고, 몸이 악기이다 보니 남처럼 즐기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어떤 계약서를 보면 ‘겨울에는 스키 타지 말 것’이라고 써 있기도 하다.
또 외국에서 노래할 때 인종차별이 없진 않다. 1998년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라 2000년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는데, 그때 이탈리아 극장에서 노래하는 한국인은 몇 명 없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판소리를 너무 잘하는 외국인을 국내 무대에 세워도 될까?’ 고민하는 것처럼 그들도 그런 반응이었다. 처음에는 ‘너희 나라 가서 노래하라’는 얘기도 들었고, 동양인이기에 다른 무엇인가를 더 해야 한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이기지 못하면 해낼 수 없는 길이었기에 이겨내려고 노력했다.
나는 관리하기도 하지만, 다행히 컨디션에 기복 있는 스타일은 아니다. 2011년 경희대 임용 후 학생 지도에 집중하기 위해 3월부터 11월까지 오페라 연주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페라 <리골레토(Rigoletto)>주역 섭외가 와 오랜만에 오페라 무대에 서게 됐는데, 컨디션 조절 실패와 정신적 스트레스로 기대보다 못했다. 물론 관객은 나의 상태를 잘 몰랐겠지만 스스로 창피했다. 이렇게까지 실패했다고 생각한 작품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교수 임용 후 처음 하게 된 오페라였는데… 교육자와 연주자를 병행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나온 결과였다. 그때부터 병행하는 길을 알게 됐다. 이를 극복하는 데 몇 달이 걸린 것 같다.
“인간의 행위는 성품에서 기인하고, 성품은 생각에서 기인한다”
Q. 그만큼 열정을 쏟은 결과, 성악과 학생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학생을 지도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인간 됨됨이가 기본이다. 성실해야 하고. 좋은 언어, 긍정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우리 클래스에는 방훈이 있다. “인간의 행위는 성품에서 기인하고, 성품은 생각에서 기인한다”이다. 이를 학생에게 외우게 한다. 생각에서 노래가 나오기에 생각의 포커스를 노래에 맞춰야 한다.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곧바로 노래에 영향을 미친다. 학생에게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거기서 인간 됨됨이가 나오니까. 늘 주장하고 있는데 잘 안 된다.(웃음) 어려운 일이다.
대학에서 준비해야 하는 것은 잔기술이 아니라 기본기이다. 잘하는 성악가를 분석해보면 기본기가 잘 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에이오우’가 잘 돼 있는 친구가 노래를 잘한다. 대학에서 화려하거나 어려운 기교를 발휘하는 것보다, 조금 힘들더라도 기본기를 다져야 한다.
노래는 저마다 표현도, 음악적 감성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교수의 음악적 감성을 학생에게 주입할 수는 없다. 학생의 타고난 음악 감성을 살리되, 기본기가 바탕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래는 시간 예술이다 보니 순간적으로 지나간다. 따라서 무대에서 그 순간의 감동을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노래는 정답이 없다. 요리할 때 재료도, 요리방법도 모르고 아무렇게나 만들어 내놓으면 메리트가 없듯이, 어떤 결과물을 서둘러서 내려하지 말고, 노래에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하나씩 알아가면서 좋은 노래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이런 취지로 학생을 지도한다.
Q. 경희대 음악대학의 강점이 있다면?
최고의 교수진이 포진해있다. 물론 교수가 잘한다고 학생이 모두 잘하는 것은 아니기에 어떤 교육 시스템을 갖추었느냐가 중요한데, 경희 음대는 시스템 변화가 가능하다. 그게 가장 큰 장점이다. 젊고 열정 있는 교수님들이 클래식 본 고장의 교육 시스템을 확인하고, 시대 변화에 발맞춰 커리큘럼을 바꿔 나가고 있다. 학생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게 교육한다.
그래서 인프라가 중요했는데 화장실부터 강의실, 리사이틀홀까지 리모델링하며 인프라가 구축됐다. 몇 년을 노력해 대학본부의 관심과 도움으로 리모델링에 성공했다. 국내 대학에 이 같은 음향시설과 인테리어를 갖춘 홀은 드물다. 그래서 모든 구성원이 관심을 두고 잘 유지해서 세계적인 음악가를 배출하는 홀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스스로 빛을 내는 사람이 돼라”
Q.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지금 비엔나 시립대학에서 초청 교수로 머물며 그곳의 교육 시스템을 배우고 음악 연구를 하고 있다. 6월까지 있을 예정이다. 모차르트, 슈베르트, 비발디 등 수많은 유명 작곡가가 곡을 쓰고, 생을 마감한 도시, 비엔나가 가진 예술적인 매력을 만끽하고 있다. 올해는 독창회도 있고, 처음으로 연주해보는 벤자민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과 라흐마니노프의 <종>을 공연한다. 한국에서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다른 꿈이 있다. 현재 거의 불가능한 일이고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지금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그 후배들이 유학을 가지 않아도 한국에서, 음악 안에서 자기 기량을 발휘하고, 그렇게 직업을 얻고, 평생 음악을 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꿈꾸고 있고, 노력하고 있다.
Q.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음악은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는다. 멀리 봐야 한다’라고 얘기해주고 싶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빨리 성과를 내고 싶었다. 그렇다면 그만큼 집중해야 한다. 음악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면서 할 수는 없다. 버려야 될 것을 버리고 음악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면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 물론 돈도 벌어야 하지만, 학생들이 대학에서 배운 것을 조금 힘들더라도 집중해서 하면 되는데, 빨리 성공하기 위해 기본기가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변형시켜서 하는 경우가 있어 우려할 때도 있다.
클래식, 고전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전공자는 그 어려운 것을 익혀야 한다. 노래를 무턱대고 하는 게 아니라, 반복적으로 수학 공식같이, 논리적으로 하다 보면 언젠가는 자기 것이 된다. 성악은 하루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학생들은 하루에 30분만 투자해도 실력이 확 는다. 내 목소리가 살아있나 확인하면서 매일 시간을 투자하다 보면 언젠가는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화려한 모습만 보지 말고 성실하게 꾸준히 해야 한다. ‘스타’가 되고 싶다면 먼저 스스로 빛을 내는 사람이 되라고 하고 싶다.
글 박은지 sloweunz@khu.ac.kr
사진 정병성 pr@khu.ac.kr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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