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식량 위기 극복 위한 연구 기틀 마련

2020-01-20 연구/산학

정기홍 생명공학원 교수와 김유진 생명과학대학 학술연구교수가 벼 화분의 부착, 화분관 발아 및 신장에서 작용하는 유전자를 확인하고, 향후 연구 방향을 제시한 논문을 발표했다. 사진 왼쪽부터 정기홍 교수와 김유진 학술연구교수.

정기홍 교수·김유진 학술연구교수, 벼 수정에 관여하는 유전자 발견
지속적인 연구 통해 유전자 기능, 역할 밝힐 것
“세계 최초로 진행 중인 연구 다수···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작물 종자 생산이 목표”

지난해 8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기후위기 탓으로 가뭄과 홍수, 폭염 등이 더욱 빈번하고 극심하게 발생할 것이며, 생태계를 파괴해 식량부족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채택했다. 11월에는 파리 과학인문대학교(PSL) 연구진이 기후위기를 막지 못하면 2100년, 전 세계 인구의 90%가 식량난을 겪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기후위기에 따른 식량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만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도 전 세계적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기홍 생명공학원 교수와 김유진 생명과학대학 학술연구교수가 벼 화분의 부착과 화분관 발아, 신장에서 작용하는 다수의 유전자를 확인하고, 향후 연구 방향을 제시한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식물과학 분야의 저명한 학술지 <식물 과학 트렌드(Trends in Plant Science)>(논문명: Molecular Basis of Pollen Germination in Cereals)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국제캠퍼스 작물바이오텍센터에서 두 교수를 만나 자세한 연구내용을 들었다.

유전자편집기술로 순종 돌연변이 만들어 화분에서 특이적으로 발현하는 유전자 찾아
Q. 어떤 연구인가?
정기홍 교수(이하 정): 먼저 기본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아마 초·중학교 때 배웠을 것이다. 속씨식물의 꽃에는 식물 번식에 중요한 수술과 암술이 있다. 수술은 화분(꽃가루)을 만들고, 암술 안에는 밑씨(배젖)가 있다. 꽃가루가 정자, 밑씨가 난자라고 생각하면 된다. 화분이 암술머리에 붙으면 화분관이 자라나 암술대를 거쳐 씨방에 도달하는데, 이때 화분에 있는 2개의 정핵이 각각 밑씨의 난핵, 극핵과 결합한다. 이를 ‘중복수정’이라고 한다.

벼, 보리, 밀, 옥수수 등 우리가 먹는 식량 작물도 속씨식물로 이러한 중복수정과정을 거친다. 이번 연구는 식량 작물 중 벼의 화분 발아에 기여할 것으로 추측되는 유전자를 탐색하고, 이에 대한 분자적 작용 모델과 앞으로의 과제, 연구 방향 등을 제시한 것이다. 우수한 종자 생산과 생산량 증대를 위해서는 이런 연구가 필수이기에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Q.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김유진 학술연구교수(이하 김): 화분이 암술머리에 안착하면 단계별로 여러 유전자가 작용해 화분관이 발아하고, 신장하게 된다. 식물연구에서 많이 쓰는 모델 식물인 ‘애기장대’에서는 화분 발아를 조절하는 유전자 연구가 상대적으로 활발히 진행됐지만, 벼에서는 기능 보고가 된 논문이 적다. 벼와 옥수수에서 총 15편의 유전자만 보고돼 있다.

그동안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는 비교 연구에 필요한 순종 돌연변이의 유무(有無)이다. 화분은 반수체이기 때문에 유전적 이상이 있으면 종자를 맺지 못한다. 즉, 순종 돌연변이를 생성할 수 없었고 연구를 진행할 수 없었다. 하지만, 최근 유전자편집이라는 첨단기술을 통해 화분에서 특이적으로 발현하는 유전자를 찾을 수 있었고, 이를 활용해 쌍떡잎식물과 외떡잎식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생리학적, 유전학적으로 비교 분석했다.

정: 최근에서야 유전자편집기술을 통해 벼, 옥수수 화분의 게놈 및 돌연변이 분석이 가능해졌다. 우리도 크리스퍼 유전자가위(CRISPR/Cas9) 기술을 적용해 자연 상태에서 만들어질 수 없는 순종 돌연변이를 만들어 연구했다. 이를 통해 암술머리에 붙은 화분의 성장단계에 따라 관여하는 유전자 중에서 화분의 수화에 관여하는 GTD5, 화분관의 발아에 관여하는 GTD2, 화분관 신장에 중요한 GTD4 등을 발견했다. 이에 표현형, 유전형 분석 및 유전자의 기능 분석을 수행 중이다.

개화기 때 벼는 고온이나 가뭄 등에 민감한 영향을 받는다. 환경 스트레스를 받을 때 벼의 화분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연구하면 고온, 가뭄, 이상기후에 잘 견디고, 높은 생산량의 벼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최근 기후위기가 벼 생산량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하는데 향후 연구를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벼와 애기장대의 암술에서 화분관이 발아·성장하는 모습을 그린 모식도(A, B)와 화분의 수분·발아 및 화분관 성장 경로를 나타낸 그림(C). 쌍떡잎식물과 외떡잎식물의 주요 차이점이 노란색으로 표시돼 있다. (D)는 화분관 발달의 각 단계에서 작용하는 유전자들로서 노란색 글씨는 곡물 작물인 벼, 옥수수에서 보고된 유전자이고, 검은색 글씨는 애기장대에서 보고된 유전자이다. 정기홍 교수와 김유진 학술연구교수는 화분에 특이적으로 발현하는 유전자(별표)에 초점을 맞춰 연구 중이다.

석학 초빙, 작물바이오텍연구센터가 연구에 큰 도움
Q. 어려움은 없었나?
정: 관련 분야의 연구가 최근에서야 시작되고 있기에 모든 과정이 쉽지 않았다. 해당 분야에서 저명한 상하이 교통대학교(Shanghai Jiao Tong University)의 다빙 장(Dabing Zhang) 교수를 생명공학원 교수로 초빙해 함께 연구했는데 그분한테 많은 도움을 받았다.

또 하나는 지난 2010년, 국제캠퍼스에 개설된 작물바이오텍연구센터이다. 이곳에는 10만여 종에 달하는 벼 돌연변이 종자가 있다. 보통 돌연변이 종자를 얻으려면 2~3년이 소요되는데, 이미 많은 종자를 보유하고 있기에 빠르고 원활하게 연구할 수 있었다. 참고로 해당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국내·외 벼 관련 생명공학연구에 크게 이바지하며 탄탄한 벼 연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김: 이번 리뷰 논문을 정리하면서 벼에서 새로 찾은 유전자가 많이 있다. 화분이라는 단일 세포가 화분관을 뻗어 암술까지 도달하는 과정은 기본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영역이다. 특히, 벼 화분관 발달에 관여하는 펩티드와 수용체를 찾았고, 이들의 분자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또한, 2019년 연구재단 신진연구 및 최초혁신실험실 과제에 선정돼 인공환경실 구축 및 연구과제 지원을 받았다. 아직 보고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인 만큼, 세계 최초로 진행 중인 내용이 많아 앞으로 더 의미 있는 성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최근에 문제 되는 기후위기에 따른 식량난을 대비해 작물이 안정적으로 생산될 수 있도록 관련 연구를 할 계획이다.

정: 마찬가지이다. 화분은 고온, 가뭄 등 환경변화에 민감하다.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이러한 원인을 밝히고, 개량된 종자를 만들어 기후위기에 대응하고자 한다. 올해부터 농촌진흥청에서 지원하는 차세대농작물 신육종기술개발사업을 시작한다. 벼의 유전자 교정 향상을 위한 생물정보학적 연구를 통해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웹툴을 개발하고 있고, 유전자교정 돌연변이 집단을 구축하여 작물생리학적인 연구를 수행 중이다.

작물을 이용해 의약품 등을 생산하는 ‘분자농업’에도 관심이 많다. 예를 들어 황금쌀이 있다. 황금쌀은 유전공학적 방법을 통해 비타민A 성분을 강화한 노란색의 쌀로서 야맹증, 영양소 결핍에 효과가 있다. 하지만, 유전자변형 농산물(GMO)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좋지 않아 많이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중의 인식을 개선하는 유전자변형 농산물을 만들어 공익에 기여하고 싶다.

글 한승훈 aidenhan213@khu.ac.kr
사진 정병성 pr@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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