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피할 수 없는 기후변화, 적응 방식 살펴야”
2020-01-21 교류/실천
제2차 기후위기에 대한 경희 정책 세미나 본관 대회의실에서 개최
‘도시의 위기: 기후변화와 적응’ 주제로 유가영 교수 특강
지난 12월 19일 제2차 기후위기에 대한 경희 정책 세미나가 본관 대회의실에서 개최됐다. 지난 11월에 개최된 제1차 세미나에서는 조천호 경희사이버대학교 기후변화 특임교수가 ‘기후위기로부터의 대변혁’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는 기후위기를 진단하고 이에 걸맞은 대응 전략을 논의했다. 향후 발표될 ‘기후재앙에 대한 경희 정책 보고서(가칭)’의 기반이 될 내용이었다.
이번 2차 세미나는 유가영 공과대학 교수가 ‘도시의 위기: 기후변화와 적응’을 주제로 도시에서의 기후변화 적응에 관련한 최신 연구 동향을 소개했다. 지난 2018년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의 ‘기후변화특성화대학원’ 선정 이후, 공과대학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전문 인력 양성 및 확보, 관련 기초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 정의, 오적응으로 갈 가능성 대비해야
세미나는 적응의 정의와 실체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됐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는 기후변화의 적응을 ‘실제 또는 예상되는 기후에 대한 조정 과정 및 영향’이라고 정의했다. 적응 행동의 종류는 ‘감수’, ‘회피 또는 분담’, ‘이용’이다. 감수는 기후변화를 참을 수 있는 한 버티는 행동이고, 회피는 가뭄이 생긴 지역을 피하거나 폭염에 에어컨을 틀고 그늘막을 설치하는 행동이다. 이용은 기온이 올라간 지역에서 열대작물을 재배하는 적응법이다.
적응의 형태는 ‘자생적 적응(Autonomous & Reactive)’과 ‘계획된 적응(Anticipatory & Planned)’으로 나뉜다. 자생적 적응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경험한 후 행동을 취하는 형태인데, ‘감수’나 ‘회피 또는 분담’, ‘이용’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계획된 적응은 기후변화를 예측하고 향후의 변화에 대응하는 행동을 취하는 형태로 기후변화 경고 시스템을 만들거나 정부가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유가영 교수는 “자생적 적응이 일반적 적응 방법이지만, 오적응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라며 오적응의 위험성을 제시했다. 오적응은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한 행동이 결국 피해를 증가시키는 것으로, 적응 정책에서 가장 경계하는 대상이다. 유가영 교수는 “계획된 적응은 불확실한 미래의 시점에 발생할 사건의 가능성을 보고 현재 자원을 투자하기 때문에 정책의 딜레마가 발생한다”라고 설명했다. 대표적 오적응 사례에는 에어컨을 틀면 온실가스가 발생하는 현상과 브라질이 기후 적응 품종을 도입해 이모작을 시도했지만, 강수 패턴이 변해 실패한 사례가 있다.
경제학 분야에서도 기후변화 대책의 시급성 강조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경제학 이론을 적용한 연구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냈던 니콜라스 스턴(Nicholas Stern) 영국 정보 경제고문은 2006년 <스턴 보고서(The Stern review)>를 발표해 “인류가 온난화를 막지 않으면 1930년대와 비견할만한 경제 파탄을 맞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턴은 당시 온난화를 예방하는 데 드는 비용이 세계 GDP의 1% 정도에 불과하지만, 대응하지 않으면 그 피해가 세계 GDP의 30%에 이른다고 경고했다. 기후변화 대응의 시급성을 강조한 보고서로 평가된다.
2018년에는 윌리엄 노드하우스(William Dawbney Nordhaus)가 ‘동태 통합 기후-경제(Dynamic Integrated Climate-Economy, DICE)’ 모형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DICE 모형은 기후변화와 성장모형을 결합해 최적의 소비와 성장 경로를 제시했다. 기후변화가 미래에 미칠 경제적 악영향을 고려해 기후변화를 완화하기 위한 정책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유가영 교수는 “적응은 과학자가 데이터를 전달하면 정책 결정권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면 안된다”라며 “대중에게도 관련 정보가 자세하게 전달돼야 한다. 과학적 정보와 사회·경제적 거버넌스, 그리고 이와 관련된 기술이 한곳에 뭉쳐야 적절한 적응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규모가 커지고 변화의 폭도 큰 ‘도시’를 중심으로 적응 연구 진행
적응 관련 연구는 ‘도시’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도시 거주자가 계속 늘고, 도시의 기온 상승이 다른 지역보다 심각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도시의 기온 상승은 ‘열섬(Urban Heat Island, UHI)’ 효과라는 결과로 나타난다. 도시 중심부의 기온이 주변보다 3~4도 높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낮의 강한 태양 복사 에너지가 건물, 도로 등의 인공구조물에 흡수됐다가 밤에 방출돼 주변의 공기를 데우며 온도를 상승시킨다. 여름철의 열대야가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열대야 외에도 많은 영향이 있다. 폭염에 따른 해수면 상승, 가뭄, 홍수, 빈번한 폭우가 직접적 영향이라면, 식량 부족과 물 공급 제한, 질병 발생, 인구의 이동과 인프라 파괴 같은 피해는 간접적 영향이다. 이미 일어난 피해도 크다. 미국은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문에 약 117조 원의 손실이 생겼고, 마닐라와 방콕, 호치민 시티는 홍수로 국가별 GDP의 2~6%의 손해를 입었다. 열대 지역의 태풍에 따른 전 지구적 피해는 약 33~79조 원으로 예측된다.
예측되는 피해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그 위험 요소를 선별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기후변화 위험 평가 방식은 전문가 회의와 설문으로 구성된다. 우리나라는 ‘국가 기후변화 적응대책’을 수립하면서 100여 명의 전문가를 설문해 총 87개의 위험 요소를 추렸다. ‘해양/수산’, ‘산림/생태’, ‘산업/에너지’, ‘물’, ‘농축산’, ‘건강’, ‘국토/연안’ 등으로 나눠진 이 위험 요소 중 도시와 관련된 내용은 40개에 달한다.
폭염이나 한파 등에 대응하는 적응대책 실시 중, 수요 파악 필요
지난 2015년 발표된 ‘제2차 기후변화 적응대책’에는 ‘도시 고온 건강 지수’ 개발과 ‘기후변화로 인한 도시 침수 해소를 위한 하수도 시설 확충’, ‘도시 열섬 효과 완화를 위한 도시 숲 조성’ 등이 포함됐다. 대표적으로는 ‘무더위 쉼터’나 ‘그늘막’ 설치 등이 있다. 폭염과 함께 시민에게 가장 큰 불편을 주는 기후변화 형태는 한파이다. 한파를 대비한 적응대책도 나왔는데, 온기 텐트나 보도 열선이 대표적안 사례다.
하지만 이런 기후변화 적응대책에도 단점이 있다. 전문가 설문조사에 의존해 다양한 수요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또 정부 주도의 하향식 적응대책으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많은 정보가 온라인으로 공개되지만, 외국인 건설노동자나 SNS 사용이 적은 노령 인구는 관련 정보를 전달받기 어렵다. 사회적 약자의 수요가 반영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시민참여 연구 방식으로 실효성 있는 적응대책 평가
유가영 교수는 ‘시민참여 연구(Citizen Science)’를 대응 방법으로 제시했다. 상향식 연구로 적응 수요를 파악한다. 지난여름 시범 연구를 했는데, 연구자가 온도계와 심박 수를 측정하는 기기를 부착하고 매일 심박 수와 불쾌감을 조사했다. 몇몇 지역에서는 풍향과 습도를 측정하는 기구도 부착해 시민이 노출되는 환경을 조사했다. 도로포장 근로자 10명과 실내근로자 18명이 대상이었다.
그 결과 야외근로자는 30도 이상의 온도에 노출될 때 25도 미만의 온도일 때 보다 36.7%의 심박 수가 증가했고, 실내근로자는 12.7%만큼 심박 수가 증가했다. 야외근로자와 실내근로자가 같은 환경에 노출되더라도 심박 수 상승이 다르게 나타난 원인은 야외근로자의 경우에는 체내 수분이, 실내근로자는 체질량지수(BMI)가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적 변화는 통화나 메시지를 통해 수집했는데, 야외근로자는 심박 수가 올라가도 불쾌감을 크게 느끼지 않았지만, 실내근로자의 심리적 불쾌감의 원인은 다양하게 나타났다. 야외근로자는 외부 환경에 적응해 큰 불쾌감을 느끼지 않았고, 실내근로자는 업무 중 스트레스로 불쾌감이 상승하기도 했다. 즉, 직군별로 다양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유가영 교수 연구팀은 ‘도시 가로수 시스템의 기후변화 영향 및 피해 저감효과’도 연구했다. 유가영 교수는 “그늘막만큼 중요한 대책이 도시 가로수이다”라며 도시 가로수의 피해저감효과가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로수는 햇빛을 차단하고 바람길을 만들어 냉난방 에너지 사용을 줄인다. 대기 오염 물질을 흡수하고, 잎이나 줄기, 뿌리에서 수분을 흡수하거나 저장해 우수 유출을 줄이기도 하며,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온실가스를 줄인다.
가로수 효과 우수하지만, 정량 데이터의 부족으로 정책 결정 어려워
이런 우수한 효과에도 가로수 설치가 어려운 점은 정책 결정자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책 결정을 위한 정량적 데이터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를 위해 유가영 교수는 미국 산림청이 만든 도시 수목의 정량적 가치 추정 프로그램인 ‘아이트리 스트리트(i-Tree Streets)’ 활용해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기후대와 수종, 생체량, 흉고직경, 일면적, 생육 생태를 적용해 인근 건물의 에너지 저감효과나 대기 질 영향을 데이터로 만든다.
유가영 교수는 서울시 중구 퇴계로와 수원시 영통구 덕영대로 두 곳에 가로수 시스템을 대상으로 분석했다. 가로수를 사용해 얻는 이익과 가로수 조성과 관리에 드는 비용을 분석해 수목당 이익을 산출했다. 퇴계로의 53그루를 분석한 결과 18만 원의 추정치가 나왔고, 덕영대로의 33그루는 평균 27만 원의 추정치가 나왔다. 대기 질 개선, 에너지 저감, 우수 유출 저감, 이산화탄소 흡수 순으로 효과가 나타났다.
이 연구에도 한계점은 있다. 아이트리 스트리트는 수목의 개체별 가치가 산정되기 때문에 가로수 시스템 전체의 추정치는 정확하지 않고, 가로수와 건물의 간격, 주변 환경의 특성은 반영되지 않았다. 유가영 교수는 “도시 경관 수준의 거대한 가로수 시스템과 주변 녹지 및 건물과의 상호작용을 고려한 가로수 시스템의 기후변화 적응 및 완화 효과에 대한 가치 추정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유가영 교수는 발표를 마무리하며 “도시 가로수 시스템의 이익이 중요하기보다 산정하는 여러 요인을 기후변화 적응의 측면에서 살피고 추정해야 한다”라며 “정책 결정자는 예산을 바로 투입해 미래를 대비하는 일이라 부담이 될 것인데, 이런 추정치가 정책 결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기후변화 적응과 감소 대책 위해 패러다임 전환 필수
발표 이후에는 참석자와의 질의응답이 진행됐다. 이한구 미래문명원 원장은 “지난 제1차 세미나가 기후위기의 실체와 지구 온도 상승을 막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었다면, 이번 세미나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를 논의였다”라며 “이 둘의 연결 고리가 필요하다”라고 이야기했다.
조천호 특임교수는 “많은 과학자가 지금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않으면 파국에 진입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상황에서 적응의 의미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의 정량화는 모두 객관적이다. 하지만 이것이 정의로운지 생각해봐야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뉴욕과 아마존이 모두 불타면 뉴욕의 피해 금액이 훨씬 크게 산정되겠지만,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은 아마존의 피해가 훨씬 크다. 하지만 아마존의 피해보다 뉴욕의 피해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이는 현상에 일침을 가한 셈이다.
유가영 교수는 “이번 세미나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은 적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큰 피해를 막기 위한 정책은 감축이 중요하다”라며 “감축을 위해서는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적응 분야에서도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데, 범위가 작은 정책보다 도시 계획과 같은 큰 범위의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설명했다.
글 정민재 ddubi17@khu.ac.kr
사진 이춘한 choons@khu.ac.kr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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