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빵으로 전하는 한국의 맛과 멋
2019-09-26 교육
문화관광산업학과 최진미 학생, 한복 모양 마들렌 ‘한복빵’ 개발
지역 특산물 활용한 메뉴 개발 등 한국 고유의 맛(味), 멋(美) 알리고자 노력
“도움 주신 대학과 모든 분께 감사··· 우리나라 문화 제대로 알리고 싶다”
지난 8월 6일(화), 국제캠퍼스 피스홀에서 열린 KHU Valley Program(이하 KVP) 데모 데이에서는 학생들의 획기적인 창업아이디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기발하고, 우열을 가리기 힘든 창업 아이템들이 쏟아져나온 가운데 한 아이디어가 눈길을 끌었다. 최진미(문화관광산업학과 17학번) 학생의 한복 모양의 마들렌, ‘한복빵’이 그 주인공.
당시 최진미 학생의 아이디어는 심사위원으로부터 독창성과 구체성, 실현 가능성 등을 인정받아 실전 창업트랙(Start-up Fund-raising Track)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한복빵을 개발하기까지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 8월 말, 서울 성북구에 있는 작업장을 찾았다. 최진미 학생은 가장 먼저 책 한 권을 내밀었다. 한복의 세계화, 현대화를 꿈꿨던 故 이영희 패션디자이너가 쓴 <파리로 간 한복쟁이>(디자인하우스)였다. <편집자 주>
어릴 적부터 남다른 한복 사랑, 관광 분야 제대로 배우고자 경희대 진학
Q. 이 책이 무엇인가?
내게 한복빵의 영감을 준 책이다. ‘기모노 코레’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한국의 기모노’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책의 저자인 이영희 디자이너가 1993년, 프랑스 파리에서 한복 패션쇼를 열었는데 현지 기자들이 한복을 ‘기모노 코레’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이후 이영희 디자이너를 비롯한 많은 분의 노력으로 ‘한복’이란 이름이 고유명사로 널리 알려지게 됐지만, 아직도 갈 길이 먼 상황이다. 최근 이탈리아에서 열린 불가리 전시회에서도 한복을 기모노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불가리라면 누구나 다 아는 명품 브랜드이지 않나. 씁쓸한 소식이다.
의류 업계에 종사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한복을 많이 접했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한복을 유달리 좋아했다고 한다. 지금에서야 한복을 많이 빌려 입지만, 과거에는 회갑연이나 돌잔치 같은 행사 때나 한복을 입었다. 나는 그 당시에도 한복을 입고 여기저기 돌아다닐 정도였다. 직접 한복 만드는 법을 배워 3년 넘게 생활한복매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과 한복에 대한 깊은 애정이 한복빵 탄생의 밑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Q. 조금 늦은 나이에 경희대에 입학했다고 들었다.
관광고등학교를 나와 원래는 승무원이 꿈이었다. 아쉽게 그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한국수력원자력에 사무직으로 입사해 근무할 수 있었다. 한국수력원자력이라면 공기업에 안정된 직장이 아닌가. 한편으로는 만족스러웠지만,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 성격과 맞지 않았다. 답답했다. 3년 만에 사표를 던지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고 관심 있었던 한복 만드는 법을 배웠다.
사실 처음부터 생활한복사업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일상생활에서 한복을 종종 만들어 입는 수준이었다. 어느 날, 직접 만든 생활한복을 입고 제주도 여행을 갔는데 SNS에 올린 사진의 반응이 좋았다. 블로그를 통해 제작 주문을 받아보니 100건을 훌쩍 넘더라. ‘이거다!’ 싶어서 ‘라온미나’라는 생활한복매장을 창업했다. ‘라온’은 순수 우리말로 ‘즐거운’이란 뜻이고, ‘미나’는 함께 창업했던 분과 이름을 한 글자씩 딴 것이다. 사업을 시작할 당시만 하더라도 생활한복에 대한 관심이 막 일어나던 때라 제법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경희대는 생활한복매장을 운영하는 중에 입학했다. 대학은 배움에 목마른 사람이 가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한복과 문화는 떼려야 뗄 수 없고, 관광 분야를 전문적으로 배워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우리 문화를 제대로 소개해주고 싶어 입학을 결심했다. 25살에 입학해 현재 3학년인데 대학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도움을 받아서 보람과 감사함을 느낀다.
한복 모양의 마들렌··· 대학 창업프로그램, 교수님, 친구 도움으로 어려움 극복
Q. 한복빵을 어떻게 개발하게 됐나? 한복빵에 대해서도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파리로 간 한복쟁이>라는 책에서 영감을 얻었고, 라온미나를 운영하면서 시장조사를 하다가 ‘한복 모양의 빵을 팔면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게 출발점이 됐다. 당시에는 스쳐 지나가는 아이디어일 뿐이었는데, 한복매장을 정리하고 새로운 도전을 고민하며 찾아보니 3년이 지난 그때까지도 한복 모양의 음식을 만들어 파는 곳이 없더라. 내가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미미상점’을 창업해 한복빵 사업을 시작했다.
한복빵은 말 그대로 한복 모양의 마들렌이다. 클래식·초콜릿·녹차·쑥 등 4가지 맛이 있다. 홍삼(전북 진안), 딸기(충남 논산) 맛이 포함된 지역 특산물패키지도 개발하고 있고, 백년초(경기 군포)와 단호박(전남 고흥) 등 농산물을 활용한 ‘대한민국패키지’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와디즈(Wadiz)에서 오픈을 앞두고 있다. 우리나라 고유의 맛을 더욱 살리기 위해 쌀가루를 이용한 제빵과 콩고물을 이용한 레시피도 연구 중이다.
빵 모양뿐만 아니라 포장 디자인도 한복의 멋을 가미했다. 전체적인 색은 곤룡포(袞龍袍)의 빨간색과 금색을 사용했다. 한복빵 로고는 활옷(조선왕조 때 공주·옹주의 대례복으로 입던 소매가 넓은 옷) 모양이다. 활옷에 일반적으로 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문양을 새겨넣는데 우리는 ‘한복빵’이란 이름을 새겼다. 한복빵을 먹는 이들에게 행복한 기운이 전해졌으면 하는 의미이다. 박스 안에는 한복설명서와 일러스트 엽서도 들어있다.
Q. 사업을 진행하며 어려움은 없었나?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솔직히 말해서 너무 힘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금전적인 부분이다. 생활한복과 달리 한복빵은 빵을 만들고, 제품을 포장할 작업장이 따로 필요했다. 필요한 장비의 가격도 훨씬 비쌌다. 대학생이 무슨 돈이 있겠나.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경희대의 창업지원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지난해 KVP 캠프에 참가해 한복빵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법을 배웠다. 사업계획서를 쓸 때 그 부분이 가장 중요한데 전문적인 교육과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서 유익했다. 사업계획서를 완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결국에는 정부지원사업까지 따냈다. 받은 지원자금은 작업실을 꾸리고, 장비를 구매하는 등 사업을 준비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했다. 2018학년도 2학기 꿈도전장학을 통해 받은 장학금도 큰 힘이 됐다.
또 하나는 맛과 디자인 부분이다. 정답도 없고, 기성품의 그것을 따르자니 참신함이 떨어졌다. 단과대학 교수님과 주변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특히, 정남호 학과장님과 이광석 명예교수님께서 많은 조언을 해주시고, 사업의 방향성도 제시해주셨다. 풀빵에서 마들렌으로 바꾼 것도, 우리나라 농산물을 활용한 것도 두 교수님의 조언 덕분이다. 친구들은 고객의 관점에서 시제품을 맛보고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줬다. 정말 감사하다.
“한복빵에 많은 관심, 한국문화 홍보하는 역할 하게 돼 기뻐”
Q. 고생이 많았을 것 같다. 그래도 한복빵 반응이 좋다.
지난 6월, 킨텍스에서 열린 2019 여성발명왕 엑스포에서 은상을 받았다. 제7회 서울상징관광기념품공모전에서는 아이디어상과 시민인기상을, 2018 용인시 대학연합 창업아이디어경진대회에서는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잊혀져 가는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 K-POP을 필두로 한 한국문화의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덩달아 주목을 받는 것 같다. 여기저기에서 납품 문의가 들어오는데 수제제작이다 보니 현재는 무리가 따르는 상황이다.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리는 ‘2019 한복상점’ 참가도 앞두고 있다. 한복상점은 전국의 한복 브랜드들이 참여해 다양한 한복 상품들을 전시·판매하고, 한복문화체험 기회를 마련해 한복의 멋과 아름다움을 알리고자 매년 개최되는 행사이다. 여기에 우리 한복빵이 당당히 참가하게 된 것이다. 한복빵이 한국문화를 홍보하는 매개체로 인증받은 것 같아 무엇보다 기쁘고 자랑스럽다.
Q. 앞으로의 계획은?현재 가장 시급한 과제인 유통기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수제제품이고 방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다 보니 유통과 납품 면에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까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내년부터는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 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을 통해 면세점, 오프라인 매장 납품 등 사업확장을 계획하고 있다.
관광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경희대에 입학해 한복빵을 만드는 지금까지 궁극적인 목표는 같다. 바로 외국인에게 우리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다. 획일화된 여행, 수박 겉핥기식의 여행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온몸으로 느끼고, 알게 하는 문화여행 같은 것 말이다. 그 하나의 방법으로 ‘한복빵’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도 우리 문화에 관심과 자부심을 갖고, 다양한 방법을 개발해 외국인에게 한국을 선물하고 싶다.
글 한승훈 aidenhan213@khu.ac.kr
사진 정병성 pr@khu.ac.kr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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