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지구 생명의 원천 ‘물, 유기분자’의 기원을 찾다
2019-02-07 연구/산학
이정은 우주과학과 연구팀, 세계 최초로 ‘폭발하는 태아별’ 관측해 검출
세계 최대 전파간섭계 망원경 알마 활용, 연구 성과 <네이처 아스트로노미> 게재
지구는 유기체로 뒤덮인 행성이다. 생성기 지구는 뜨거운 마그마 덩어리 같아 표면에 물과 유기물이 존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지구 생명의 근간인 물과 유기분자는 어디로부터 공급된 것일까? 이 질문은 우주에서 생명의 기원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에게 가장 흥미로운 주제 중 하나이다.
탄생 중인 별 관측, 학계 가설 최초로 증명
천문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해왔다. 생성기 지구는 매우 뜨거워 물과 유기분자들이 기체로 날아가거나 파괴됐다. 하지만 태양에서 멀리 떨어진 혜성에서 물과 유기물질이 얼음상태로 보존됐다가 지구가 식은 후 지구 표면으로 물과 유기물질이 전달됐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혜성에 다량의 유기물질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혜성 ‘67P 추류모프-게라시멘코(러시아어: 67P/Churyumov-Gerasimenko)’를 탐사한 ‘로제타 미션(Rosetta)’을 통해 확인됐다.
이 가설에 의하면 새롭게 탄생하는 별 주위에 존재하는 원시행성계원반에는 유기분자가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관측 장비가 부족해 이에 대한 연구가 진척되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이정은 경희대학교 우주과학과 교수 연구팀이 세계 최대 전파간섭계 망원경 ‘알마(ALMA: Atacama Large Millimeter/submillimeter Array)’를 활용해 세계 최초로 행성 형성에 직접 관여하는 유기물질을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 교수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폭발하고 있는 태아별 V883 Ori 주위를 돌고 있는 원시행성계 원반에서 얼음 분자 조성 (The Ice Composition in the Disk around V883 Ori Revealed by Its Stellar Outburst)>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정리돼 <네이처(Nature)> 자매지 <네이처 아스트로노미(Nature Astronomy)> 최신호에 게재됐다.
태아별 관측, 행성계 형성 연구의 새로운 대상이 될 수도
방출하는 빛은 주황색으로 유기분자인 메탄올이 방출
하는 빛은 파란색으로 표현됐다. 메탄올이 방출하는 빛은 링의 형태로 분포하며, 원반의 중심에는 보이지 않는다. (출처: ALMA (ESO/NAOJ/NRAO), Lee et al.)
보통의 원시행성계원반은 태아별 중심에서 방출하는 빛에너지에 의해 데워진다. 이 경우 원반에 있는 얼음상태의 물을 기체로 승화시킬 정도로 데워질 수 있는 영역은 중심으로부터 수 AU(1AU: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 정도 떨어진 거리까지이다. 이렇게 얼음이 승화되는 바깥쪽 경계를 ‘스노우 라인(Snow Line)’이라 부른다.
물이 얼음에서 기체로 승화될 때, 얼음에 같이 섞여 있던 유기분자들도 함께 승화되기 때문에 스노우 라인 안쪽에는 전파망원경으로 관측 가능한 기체상태의 유기분자들이 존재하게 된다. 하지만 지구에 가깝게 위치한 태아별도 거리가 100pc(1pc = 206,265AU) 정도 떨어져있어 관측이 어렵다.
100pc 떨어진 원반에서 1AU 정도의 크기를 분해하기 위해서는 1/100 각초 정도의 분해능(分解能, 서로 떨어진 두 물체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 광학기기의 성능을 나타낼 때 사용함)이 필요하다. 알마는 이 정도의 분해능이 가능하지만, 전파간섭계에서 높은 분해능은 감도를 낮추게 돼, 매우 미약한 유기분자의 스펙트럼은 관측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까지 원시행성계원반에서 유기분자를 검출하지 못했다.
태아별이 밝아지는 현상에서 착안
이정은 교수 연구팀은 태아별 중 폭발적으로 밝아지는 ‘FU Orionis 형 천체’에 주목했다. 별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수소핵융합을 일으킬 수 있는 질량(태양 질량의 8%) 이상을 얻기 위해, 짧은 시간 안에 주변물질들을 폭발적으로 빨아들여 질량을 불려 나가는 시기가 있다. 현재 이러한 상태에 있는 태아별 20여 개가 알려져 있다.
태아별이 많은 양의 주변물질을 빨아들이는 현상은 자유낙하와 흡사하다. 물질이 높은 곳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면, 물질이 가지고 있던 중력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전환되고, 다시 운동에너지가 충격에너지로, 충격에너지가 다시 열과 빛 에너지로 전환된다. 결국 폭발적으로 질량을 불리는 태아별은 뜨거워져서 주위의 원반을 데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얼음 상태로 있던 물과 유기물질들이 증발하는 영역이 원반 바깥 쪽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이정은 교수 연구팀은 태아별이 밝아지는 현상에 착안해 태아별 V883 Ori를 관측했다. 하지만 예측과 달리 유기분자 스펙트럼은 가장 뜨거운 원반 안쪽에서는 검출되지 않았다. 이것은 얼음 덩어리와 함께 뭉쳐져 있던 먼지 입자들이 얼음이 승화되면서 떨어져 나와 스노우 라인 안쪽에 위치한 밀리미터 크기의 먼지 입자 양을 크게 증가시켰기 때문이다. 밀리미터 크기의 먼지 입자는 밀리미터 영역의 빛을 흡수하거나 산란시켜 검출되지 못하게 하는 성질이 있다.
“기다림의 연속이지만, 연구자 간 소통으로 성과 도출”
이 교수팀의 연구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폭발적으로 밝아지는 천체가 나타나야 관측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7년 후반 그동안 관측해오던 태아별 중 하나인 V883 Ori가 갑자기 뜨거워졌고 연구팀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이 교수는 그 순간을 “운명적인 순간”이라고 표현한다.
이정은 교수는 “알마를 통한 연구는 국가적 노력과 기술 발전이 있어 가능했다”라고 말한다. 건설비용이 10억 달러 이상 드는 알마는 미국과 캐나다, 유럽, 동아시아(일본, 타이완), 칠레 등 다양한 국가의 예산이 투입됐다. 한국은 2013년 일본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알마 컨소시엄에 참여하면서 알마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이정은 교수는 ‘협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무리 창의적인 아이디어라도 실험과 관측에 성공하려면 다각도의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천문학의 경우, 이론 연구자와 관측 연구자들이 토론을 통해 도출한 연구결과가 한 분야의 연구자가 단독으로 연구한 경우보다 월등히 견고하다”며 “다소 모호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으로 구체화시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번 연구는 2018년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과 한국천문연구원의 학연협력사업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졌다. 경희대학교에서는 이정은 교수를 비롯해 이석호 박사후 연구원, 백기선 (우주탐사학과 박사 5기) 학생, 윤성용 (우주탐사학과 석박사통합과정 8기) 학생이 참여했다.
이정은 교수는 경희대 응용과학대학 우주과학과 교수로 텍사스대학(University of Taxas at Austin)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2005). 주요 연구 분야는 별과 행성 탄생 과정(Star and planet formation), 천체화학(Astrochemistry), 적외선과 전파천문학(Infrared and radio astronomy), 원시행성계원반(Protoplanetary disks) 등이며, 연구의 탁월성을 인정받아 미항공우주국(NASA)의 허블펠로우십(2005~2007)에 선정된 바 있다.
주요 연구 논문으로는 <Evolution of Chemistry and Molecular Line Profiles during Protostellar Collapse>, <The Solar Nebula on Fire: A Solution to the Carbon Deficit in the Inner Solar System>, <Oxygen isotope anomalies of the Sun and the original environment of the solar system>, <Formation of wide binaries by turbulent fragmentation> 등이 있다.
글 정민재 ddubi17@khu.ac.kr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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