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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캠퍼스 본관, 문화재로 등록된다

2018-12-12 교류/실천

순수 국내 기술로 지어진 서울캠퍼스 본관 석조전. 중앙부는 1956년 7월 30일 완공됐고, 1975년 양쪽 날개부가 증축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사진: 커뮤니케이션센터 DB

본관 중앙부 1956년 7월 30일 완공, 순수 국내 기술로 지어진 석조 건물
문화재청 “상징성·기념성 등 표현, 독특한 건축물로서 의미 있다”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본관이 문화재로 등록된다. 문화재청은 지난 11월 6일부터 한 달간 서울캠퍼스 본관의 문화재 등록을 예고했다. 이 기간에 이의제기가 없으면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공식적인 문화재로 등록된다. 등록 예고된 문화재는 1975년 증축된 양쪽 날개부를 제외한 중앙부만 해당된다.

서울캠퍼스 본관 중앙부는 1956년 7월 30일 완공됐다. 경희학원 설립자 고 미원(美源) 조영식 박사(1921~2012)의 설계에 따라 순수 국내 기술로 지어진 석조 건물이다. 건물 소유자는 학교법인 경희학원이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등록 예고에서 “경희대학교 본관은 학교 내 중심이 되는 건축물로서 상징성, 기념성 등을 표현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식 기둥 및 삼각형의 박공벽 등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디자인했고, 태극 및 무궁화 문양 등 한국적 디자인 요소를 부분적으로 반영한 독특한 건축물로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본관 석조전, 100년 후 경희를 위한 마스터플랜의 핵심
서울캠퍼스 본관 석조전은 1954년 국내 대학 최초로 수립된 캠퍼스 마스터플랜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 마스터플랜은 설립자가 고황산을 오르내리며 구상한 것이다.

1951년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내려간 경희(당시는 신흥초급대)는 1953년 7월 휴전협정이 체결되자 서울 이전을 준비했다. 설립자는 홍익대 인근 와우산, 삼청공원, 우이동, 자하문 밖, 하월곡동 등을 답사하며 학교 부지를 물색한 끝에 현 회기동 일대를 ‘문화세계의 창조’를 위한 터전으로 삼았다.

1953년 10월 12일 고황산 기슭에 25만 평의 교지를 확보한 설립자는 한 달 동안 서울에 머물며 날마다 산 중턱에 올라 지세를 살피고 구상을 다듬었다. 설립자는 전쟁의 폐허 위에서도 ‘문화세계의 창조’, ‘학문과 평화의 진작을 통한 더 나은 인류사회 건설’을 위한 포부와 함께 ‘세계적인 대학’ 건설을 꿈꿨다.

한반도를 넘어 100년 앞을 내다보며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 마스터플랜에는 본관 석조전을 비롯해 12m 높이의 아치형 정문(등용문), 교시탑, 중앙도서관, 노천극장, 크라운관, 평화의 전당 등 현재 서울캠퍼스를 구성하는 주요 건물과 조경, 조림 계획이 포함돼 있다. 설립자는 각종 건축 관련 서적을 독파하며 혼자 힘으로 설계도를 그렸다.

본관 박공벽 부조상에는 경희의 교시 ‘문화세계의 창조’가 상징적으로 표현돼 있다. 우측은 물질문명의 발달을, 좌측은 정신문화의 발달을 표현하는데,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룬 것이 바로 경희가 지향하는 문화세계다. 사진: 커뮤니케이션센터 DB

당시 우리나라는 전쟁직후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다. 경희의 재정 역시 넉넉하지 않았다. 설립자가 사재를 털어 부산 동광동 교사를 신축한 지 2년이 되지 않은 1953년 1월 화재로 교사가 전소됐고, 그해 봄 부산 동대신동에 대지를 구입해 교사를 다시 건립했지만, 바로 휴전협정이 체결된 것이다.

전쟁이 멈춘 것은 천만다행이었으나 새 캠퍼스로 옮긴 지 채 반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으로 경제적 여력이 없었다. ‘세계적인 대학’을 향한 비전을 천명한 설립자는 그 대학의 상징은 대학 본관이라는 생각으로 재정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본관을 착공했다.

본관 중앙부는 4개층, 높이 18.2m, 연면적 3,800평 규모로 당시에는 이 같은 대규모 석조 건물을 우리나라 사람의 힘만으로 지은 적이 없었다. 설계는 물론, 고황산 중턱에서 채취한 화강암을 다듬어 운반해 석조전을 세우는 과정은 큰 도전이었다. 공사 기간만 2년 8개월이 소요됐다. 설립자는 자택을 팔고, 사채를 빌리고, 은행 융자를 얻는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본관 석조전 신축에 공을 들였다.

1956년 7월 30일 완공된 본관 석조전 중앙부. 당시 경희대 본관과 같은 대규모 석조 건물을 우리나라 사람의 힘만으로 지은 적이 없었다. 설계는 물론, 고황산 중턱에서 채취한 화강암을 다듬어 운반해 석조전을 세우는 과정은 큰 도전이었다. 공사 기간만 2년 8개월이 소요됐다. 사진: 경희기록관

부조상에 경희의 교시 ‘문화세계의 창조’ 상징적으로 표현
본관 석조전은 마스터플랜의 핵심이다. 중앙부는 원형 돌기둥 14개가 떠받치고 있는 형태로 고대 그리스 신전을 연상케 한다. 14개의 기둥은 우리나라의 행정구역을 뜻한다. 14개 도에서 우리나라를 이끌어 가는 인재를 육성한다는 교육입국(敎育立國)의 의지를 담은 것이다.

기둥은 높이가 16.3m, 지름이 1.36m이며, 중앙부의 지름은 1.45m로 돼 있다. 위아래보다 가운데를 굵게 만들어 미묘한 곡선을 이루는 그리스 건축의 엔타시스(Entacis)를 본뜬 것이다. 기둥머리에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태극기와 무궁화를 조각했다. 이것은 아칸서스 나뭇잎을 부조 조각한 화려한 장식의 코린트 양식을 한국적으로 살린 것이다.

건물 상단의 박공벽 부조상에는 경희의 교시 ‘문화세계의 창조’가 상징적으로 표현돼 있다. 우측은 물질문명의 발달을, 좌측은 정신문화의 발달을 표현하는데,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룬 것이 바로 경희가 지향하는 문화세계다.

국내 대학 최초로 수립된 캠퍼스 마스터플랜에는 본관 석조전을 비롯해 12m 높이의 아치형 정문(등용문), 교시탑, 중앙도서관, 노천극장, 크라운관, 평화의 전당 등 현재 서울캠퍼스를 구성하는 주요 건물과 조경, 조림 계획이 포함돼 있다. 사진: 경희기록관

김희찬 경희기록관 관장은 “현재 본관은 캠퍼스 마스터플랜에 담긴 모습 그대로지만, 1956년에는 재정 등의 문제로 중앙부만 건축됐고, 1975년 양쪽 날개부가 증축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문화재로 등록되려면 건설·제작·형성된 후 50년 이상이 지나야 하기에 증축부를 제외한 중앙부만 문화재로 등록된다”고 설명했다.

등록문화재는 근대건축물 가운데 보존과 활용 가치가 높다고 인정되는 문화재를 말하며, 통상적으로 예고가 끝난 날부터 6개월 이내에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등록 여부가 결정된다. 등록문화재로 등록되면 정부로부터 보수·정비 비용지원과 세제 혜택을 받는다.

글 오은경 oek8524@khu.ac.kr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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