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세계가 주목한 조각가, 박은선 동문

2018-11-27 교류/실천

이탈리아 피렌체에 설치된 박은선 동문의 작품. 박은선 동문은 “대중이 지나다니는 광장, 공원, 거리에 설치되는 공공미술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며 “안전하면서 100년이 지나도 건재할 수 있는 대형 작품을 만들기 위해 물리적인 계산법을 공부하고, 실험하고, 엔지니어를 찾아다니면서 물었다”고 설명했다. 그러한 노력으로 높이 13m의 ‘무한기둥’, 10t 무게의 정육면체가 한 점에서 지탱하는 ‘제너레이션(Generazione)’ 등의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사진 <박은선 동문 개인 홈페이지>

이탈리아에서 세계 조각상 ‘제28회 프라텔리 로셀리상’ 수상
올해 20년 만에 모교 찾아 “예술가로서의 걸음마를 시작한 곳”
아내 이경희 동문, 삼베에 그린 목련 그림 경희대에 기증

박은선 동문(사범대학 미술교육과(현 미술대학) 83학번)이 지난 10월 28일 ‘조각의 성지’로 불리는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시가 매년 최고 조각가를 선정해 수여하는 제28회 프라텔리 로셀리상을 받았다. 한국인 첫 수상자다. 동양인으로는 야스다 칸 등 일본인 조각가 2명에 이어 세 번째다.

프라텔리 로셀리상 제1회 수상자는 거장 페르난도 보테로였으며, 이고르 미토라이, 지오 포모도로, 노벨로 피노티 등 세계적 조각가가 이 상을 거쳐 가면서 권위를 인정받았다. 박 동문은 “25년 전 이탈리아에 갔을 때 프라텔리 로셀리상이 있는 것을 알았다. 그때는 거장들이 그것도 60대가 돼서 수상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언제쯤 저 상을 받아보나’라고 생각했는데, 50대에 비교적 일찍 상을 받게 돼 영광이다”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콜롬비아 등에서 전시 성공
박은선 동문은 경희대를 졸업한 후 1993년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카라라 국립아카데미 조소과에서 학업을 이어갔고, 피에트라산타에 정착했다. 지금은 세계 거장 조각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치에 올랐지만, 25년 전 피에트라산타에 도착했을 때만 하더라도 대리석 산지이자 세계적 조각가가 몰려드는 그곳에서 치열한 경쟁과 생활고, 인종차별을 겪으며 작품 활동을 해야 했다.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묵묵히 돌을 깎고 깨고 이어 붙여 스스로를 다듬어갔다. 끝없는 외로움을 견뎌내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10년이 훌쩍 넘어 기회가 찾아왔다. 2007년 피에트라산타시 초청으로 베르실리아나 축제 야외 조각전을 열게 된 것.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때부터 ‘조각가 박은선’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콜롬비아 등 유럽과 미국에서 굵직한 전시를 성공시키며 세계적 입지를 다졌다.

2016년에는 피렌체시 초청으로 공항과 미켈란젤로광장 등에서 14점의 작품을 선보였고, 지난해에는 피에트라산타시 산타고스티노교회와 두오모광장에서 전시를 열었다. 피에트라산타시 전시에는 3만여 명의 관람객이 찾아 역대 최다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사진 왼쪽부터 박은선 동문(사범대학 미술교육과(현 미술대학) 83학번)과 이경희 동문(사범대학 미술교육과 87학번). 세계적인 조각가로 인정받고 있는 박은선 동문은 건축물 등 다른 작품과 책을 보면서 끊임없이 연구한다. 그리고 새로운 작품을 만들면 아내 이경희 동문에게 가장 먼저 보여준다. 화가로 활동 중인 이경희 동문이 인생 동반자이자 스승 역할을 해주고 있다.

“예술에 대한 열정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의 작품 활동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자연석으로 대형 작품을 만들면 재료비만 억대가 들어간다. 하지만 박은선 동문은 ‘내 작품을 대형으로 만들었을 때 굉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넉넉지 못한 형편에도 대형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 작품들을 인정한 피에트라산타시가 2007년 전시에 박은선 동문을 초청했다.

박은선 동문은 “그때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전시공간이 너무 커서 그동안 만든 대형 작품만으로는 부족했다. 당장 다음 달부터 생활이 힘들어지지만, 생활비를 쏟아부어 대리석을 구입하고 작업에 몰두했다. 박 동문은 “당시에는 전시공간에 꼭 필요한 작품이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어려웠던 형편을 돌이켜보면 그때 실패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작품만 생각할 수 있게 한 원천은 ‘열정’이다. 그는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전업 작가였지만, 직장인처럼 작업실로 출퇴근했다. 아니, 더 부지런히 일했다. 새벽 6시 출근 저녁 8시 퇴근, 스스로 정한 근무시간이었다. 50대가 된 지금은 체력의 한계를 느껴 출퇴근 시간을 한 시간씩 줄였지만, 여전히 매일 10시간 이상 작업한다.

박은선 동문은 “나는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작업실에 가는 것만큼은 부지런했다. 예술에 대한 열정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잠에서 나를 깨우고 부지런하게 만들었다. 그 열정이 없었다면 오늘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은선 동문의 작품 및 전시 카탈로그 표지. 사진제공 <박은선 동문>

“모교 정문 들어서는데 울컥, 모교에 대한 미련과 애착이 생겼다”
박은선 동문은 지난 5월, 10년 만에 한국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을 찾은 박 동문은 경희대학교를 방문했다. 20년 만이었다.

그는 “정문을 들어서는데 울컥하더라. 대학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곳으로 나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한 시기를 보낸 곳이자 예술가로서의 걸음마를 시작한 곳인데, 그동안 앞만 보고 달리느라 모교를 잊고 살았다. 추억이 한순간 주마등처럼 지나가니 만감이 교차했다. 모교에 대한 미련과 애착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애정을 갖게 되니 자연스레 모교를 찾는 횟수가 늘었다. 지난 5월에는 후배들과의 만남을 갖고, 10월에는 미술대학 역사 아카이브전 ‘Memory53’에 참석했다. 11월에는 화가로 활동 중인 아내 이경희 동문(사범대학 미술교육과 87학번)의 작품 기증차 캠퍼스를 방문했다.

이경희 동문은 지난 9월 서울에서 국내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때 선보인 삼베에 그린 목련 작품 2점을 경희대에 기증했다. 이경희 동문은 “저희 부부가 작가라서 모교에 대한 최고의 보답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모교의 교화인 목련 작품이 있어서 기증했다”고 밝혔다. 박은선 동문은 “이탈리아에서 힘들 때마다 교수님들께서 해주셨던 말씀을 되새기며 버틸 힘을 얻었다. 저도 보답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은선 동문이 되새긴 말은 “예술가는 내일 당장 뭐가 되는 것이 아니다”였다.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면서 예술성이 쌓이는데, 그 기간은 오래 걸리니 끈기를 가져라’라는 가르침이었다. 그래서 박은선 동문은 ‘지금 힘들어도 10년 후에는 나아지겠지’라는 희망을 품었고, 1년이 아니라 10년 계획을 세웠다. 30대에는 40대, 40대에는 50대의 모습을 그렸다. 50대인 지금은 60대를 그리고 있다. 그는 “내가 상상한 10년 후의 모습에 접근하기 위해 ‘죽어라’ 작업했다. 그러다 보니 그렸던 모습이 돼 있었다”고 말했다.

박은선 동문은 후배들에게 자신과의 진실한 대화를 해보고 후회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스스로와 대화를 하는 행위가 매일 행해지면 자신도 모르게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해답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좋은 작품도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항상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노력으로 극복해나가야 한다”
박은선 동문은 작품을 만드는 시간은 온전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손으로는 돌을 깎고 있지만, 머리로는 자신과 대화하고 내면의 소리에 집중한다. 그는 “예술가는 무에서 유를 탄생시키는 사람이다. 특히 조각가는 사면을 만들어내야 한다. 스스로가 거짓을 담고 있으면 작품에도 거짓이 담긴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박은선 동문은 후배들에게도 자신과의 진실한 대화를 권유한다. 그는 “스스로와 대화를 하는 행위가 매일 행해지면 자신도 모르게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해답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좋은 작품도 만들어진다”고 조언했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는 것, 박은선 동문이 후배들에게 전하는 또 다른 조언이다. 박 동문은 “대학시절 내내 어려운 생활 형편으로 꿈보다 삶이 먼저였기에 아르바이트에 시선이 갔다. 그렇게 살면 평생 후회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품에 온 힘과 정성, 열정을 쏟아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유학을 떠났다”고 말했다.

박은선 동문은 긴 세월 열정을 갖고 성실하게 작품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노력이 천재성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동문은 “항상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이것을 노력으로 극복해나가야 한다. 부족함을 깨닫고 채워가려고 노력하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저의 부족함은 영원할 것 같다. 그래서 계속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글 오은경 oek8524@khu.ac.kr
사진 정병성 pr@khu.ac.kr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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