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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다시 보는 해방후사

2013-03-04조회수 3890
작성자
이정식 지음 | 허동현 엮음

21세기에 다시 보는 해방후사



이정식 지음 | 허동현 엮음 | 2013년 3월 4일 개정판 출간 |
152mmX225mm | 270쪽 | 14,000원







“만주에서 일어난 중국 내전이 한반도 분단의 원인이었다.” 경희대 특별강연에서 원로 정치학자 이정식 교수(경희대학교 석좌교수 겸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명예교수)가 제시한 주장이다. 민족 내부의 분열이나 미소 관계의 악화가 아니라 만주의 중국 내전이 남북을 갈라놓은 주된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남북분단의 원인을 새롭게 파헤친 이정식 교수의 이론은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만주에서의 중국 내전은 한반도 분단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스탈린의 지시로 만주에서 국민당군과 전투를 벌인 공산군은 쓰핑과 창춘 전투에서 승리하지만, 국민당의 정예부대인 신1군과 신6군에 밀려 후퇴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그때 남쪽에 있던 공산군이 후퇴한 곳이 북한이었다. 1946년 5~6월경부터 북한은 중국 공산군의 후방기지가 된다. 당시 북한의 실질적인 통치자는 스탈린이었기 때문에 중국 공산군은 스탈린의 허락하에 북한을 후방기지로 삼았다. 국민당군이 내전에서 승리할 경우, 국민당의 후원세력인 미국이 중국 전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래서 스탈린은 공산군의 승리를 위해 북한의 후방기지화를 허락했던 것이다. 이렇듯 북한이 중국 공산군의 후방기지로 사용되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재통일은 불가능했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미국의 동의 없이 소련 마음대로 북한을 후방기지로 활용할 수 없는데, 스탈린이 이런 상황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중공군 후방기지화는 남북분단을 고착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정식 교수는 자신이 셜록 홈스의 팬이라고 말한다. 범인을 찾는 과정이 역사의 탐색과정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역사적 사실을 조각조각 이어나가면 ‘Joy of History’를 느낀다고도 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역사 공부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운 경험을 대리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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