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재직자 학생들을 위한 ‘특별한 강의’
2018-10-12 교류/실천
산업체 재직 중인 학생으로 구성된 국제통상·금융투자학과
주말 강의 시간에 특별강연 개최, 조인원 총장 강연자로 초청
‘기후변화와 미래세대: 이 시대의 과업과 권리’ 주제…기후변화 심각성 공유
“평소 관심 갖지 않은 분야, ‘내 문제’라는 깨달음 얻어”
‘나는 직장인이다. 평일 저녁과 주말이면 학생으로 돌아간다. 수업이 퇴근 후와 주말에 이어져 체력적으로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그동안 관심을 갖지 않았던 다양한 분야로 지식과 의식을 확장하는 즐거움을 얻고 있다. 대학에서 배운 전공 지식을 직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어 업무 효율도 높아졌다.’
경희대학교 정경대학 국제통상·금융투자학과 학생들의 이야기다. 이 학과 신입생은 특성화(전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산업체 재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특성화고졸재직자’ 전형으로 선발된다. 수업은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는 학생들의 특성에 맞춰 평일 야간과 주말에 진행된다.
지난 10월 6일(토) 오후 4시, 국제통상·금융투자학과 학생들을 위한 특별한 강의가 진행됐다. 특강 주제는 ‘기후변화와 미래세대: 이 시대의 과업과 권리’. 강연자로 초청된 조인원 총장과 학생, 교수 200여 명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공유한 뒤, 함께 대안을 고민했다.
“지구적 난제 해결하지 않으면 ‘재난’이 승리할지도 모른다”
지난 세기 초, 영국의 문명비평가 H. G. 웰스(Herbert George Wells)는 “미래는 교육과 재난 중 누가 승리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전망했다. 조인원 총장은 이 말을 인용하면서 강연을 시작했다.
조 총장은 “과학기술혁명이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갈 것이라는 희망과 기후변화로 대표되는 지구적 난제가 미래를 가로막을 것이라는 절망이 교차하는 지금, 인류가 지구적 난제 해결에 나서지 않는다면 웰스가 지적한 대로 재난이 승리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조 총장은 기아, 빈곤, 테러, 폭력, 핵, 인권, 양성평등, 환경, 기후변화, 질병 등 여러 재난 중 기후변화에 주목했다. 기후변화를 향한 과학자들의 경고가 잇따르고 있고,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전망도 있다. 기후변화 징후는 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북반구 전역에 걸쳐 전례 없는 폭염이 이어졌고, 가뭄, 태풍, 허리케인 등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조 총장은 “기후변화는 현대사회가 마주한 현실이자, 우리 삶과 직결된 분야로,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학생들이 기후변화 문제에 관심을 갖고 깊게 고민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간이 살 수 없게 되는 ‘열실지구’로 향하는 연쇄 장치 이미 작동
조인원 총장은 강연에서 두 가지 영상을 보여줬다. 하나는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로봇 소피아, 다른 하나는 열실지구(Hothouse Earth)에 대한 영상이었다.
지난해 10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정기 회의에 등장한 소피아는 탄생한 지 1년 반 만에 사람과 눈을 맞추며 대화하는 등 빠른 속도로 진화한 모습을 보여줬다. 소피아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민권을 받기도 했다.
열실지구 영상은 독일 포츠담 기후 영향 연구소, 스웨덴 스톡홀름대, 덴마크 코펜하겐대 등 국제 공동연구진이 지난 8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은 지구의 평균 온도가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섭씨 1.5~2도 이상 상승하면 ‘열실지구’ 궤적에 진입한다고 전망했다.
이 단계에 이르면 북극 알래스카 동토와 만년설이 녹아내려 여기에 갇혀있던 다량의 메탄가스(이산화탄소보다 분자당 온실효과가 23배나 더 큰 온실가스)가 대기 중으로 방출돼 온난화가 가속되고,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북대서양 해류흐름(AMOC)이 붕괴되는 등 연쇄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연구진은 ‘열실지구’는 지구가 온도를 제어할 수 없는 상태로 온도가 지속적으로 상승, 결국 인간이 지구에서 살 수 없게 된다고 경고한다. 문제는 이미 지구 온도는 산업혁명 이전보다 1도 상승했으며, 북극 빙하가 빠르게 사라지고 AMOC가 느려지는 등 ‘열실지구’로 향하는 연쇄 장치들이 작동했다는 것.
이 때문에 환경과학계의 거목 레스터 브라운(Lester Brown)은 “‘전시와 같은 속도(War-time Speed)’의 대처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UN 사무총장도 “기후변화가 소닉붐(초음속 비행기가 내는 큰 소음) SOS를 보내고 있다”면서 “2년 이내에 경로를 바꾸지 않으면 기후 재앙을 맞게 된다”고 경고했다.
“현실정치의 셈법에 묻혀 자연현상을 정치적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
조인원 총장은 “소피아를 통해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를 가늠해볼 수 있다. 이것을 통해 생각해봐야 할 것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는 ‘특이점(Singularity)’ 현상이 곧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라며 이러한 현상과 함께 기후변화는 미래를 더욱 예측 불가능한 세계로 이끈다고 설명했다.
조 총장은 “이미 지난 세기 중반부터 문제제기가 있었다. 성장 중심의 가치관을 변화시켜야 한다, 대응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경고가 수차례 제기됐다”고 말했다.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연구하는 로마클럽(The Club of Rome)은 1972년 발행한 첫 번째 미래 예측 보고서 <성장의 한계(The Limit to Growth)>에서 성장의 속도가 현재와 같이 지속된다면 지구생태계가 붕괴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인류는 최근에서야 행동에 나섰다. 195개국 정상이 모여 2015년 ‘파리협약’을 체결했다. 파리협약은 전 세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협약으로 지구 평균온도의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섭씨 2도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협약은 2017년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탈퇴를 선언하면서 기로에 서 있다.
조 총장은 “모든 과학적 전망이 그렇듯 정확한 예측을 내놓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지금 방식으로 화석연료가 사용될 경우 인류는 큰 재앙에 봉착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며 “현실정치의 셈법에 묻혀 자연현상을 정치적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고 경계했다.
“관심 가져야 스스로 인식의 틀을 확장시켜 ‘진실’ 찾아낼 수 있다”
학생들은 조인원 총장이 제기한 기후변화 문제 해결의 시급성에 공감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파리협약 탈퇴에 우려를 제기했다.
전보민(국제통상·금융투자학과 18학번) 학생은 “후마니타스칼리지 ‘기후와 역사’ 수업을 들으면서 기후변화에 관심을 갖게 됐고, 파리협약에 대해 알게 됐다. 이산화탄소 배출국 2위인 미국이 파리협약에서 탈퇴하면 목표 달성이 불투명해질 것 같다”며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질문했다.
조인원 총장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스스로 인식의 틀을 확장시켜 진실을 찾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가 왜 일어나는가,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것인가를 이해할 때, 개인의 경제적 행복과 안위보다 인간과 지구의 지속가능한 미래 가치를 선택할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기후변화가 화석연료에 기인한 것이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는데, 일부 정치권에서 이를 ‘허구’ 또는 ‘거짓’이라고 치부하는 현상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선 우리 스스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언이다.
“시민들의 선택에 따라 정치적 선택을 달라지게 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 따라, 그렇게 보고 싶은 내 마음에 따라 진실은 달라진다’는 ‘탈 진실의 담론’. 조인원 총장은 이것이 가능해진 배경에 힘의 논리를 따르는 현실정치의 작동원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자본주의 성장경제의 외길을 달려오면서 경제가 전부가 된 현 상황에서 다수의 표심이 중요한 현실정치는 기후변화보다 경제를 우선 선택할 수밖에 없다. 조 총장은 “정치를 움직이기 위해선 어떤 공통의 시민의식이 만들어지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례로 미국의 캘리포니아, 텍사스를 비롯한 많은 주에서 화석연료를 빠른 속도로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을 들었다. 조 총장은 미국의 주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와 다른 선택을 하고 있는 배경엔 ‘깨어난 시민의식’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여름, 캘리포니아에서는 섭씨 48도에 이르는 폭염이 나타났고, 100여 곳에서 들불이 발생했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체감한 시민들이 화석연료 산업 퇴출을 요구했다. 조 총장은 “시민들의 선택에 따라 정치적 선택을 달라지게 할 수 있다. 정치와 국가는 시민들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며 시민의식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경제와 성장과 소비’ 넘어 ‘인간과 지구와 지속가능한 미래’ 가치 선택해야
조인원 총장은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깨어난 시민의식’을 거듭 강조했다. 하벨은 사회에 내재된 ‘힘없는 자의 힘’에 주목하며 억압체제에 맞서 싸웠다. 그는 전체주의 정권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일상에 묶여 문제의식을 제기하지 않는 ‘힘없는 자’들의 침묵이라고 생각했다. ‘무저항의 힘’이 역설적으로 억압체제 유지에 도움이 됐다는 것.
같은 맥락에서 조 총장은 정치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시민의식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오늘날 인류는 기후변화 문제 외에도 인권, 기아, 빈곤, 테러, 질병 등 해결해야 할 삶의 난제를 안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 해결에 나서는 정치적 변화가 있을 때 우리 삶의 터전을 지켜나갈 수 있다. 이를 가능케 하는 힘이 시민에게 있다는 것이 조 총장의 시각이다.
조 총장은 “그간 걸어온 산업문명의 폐해가 만들어낸 기후변화와 같은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경제와 성장과 소비’를 넘어 ‘인간과 지구와 지속가능한 미래’의 가치를 선택하는 한편,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창조적으로 도전하는 시민의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 시대의 과업이자 권리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경우 이익과 가치가 충돌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유보영(국제통상·금융투자학과 15학번) 학생은 “석탄을 수입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강연을 들으면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리적 딜레마에 빠진 것 같은데, 기후변화 역시 마찬가지다. ‘인류의 발전을 포기해야 하는가’라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이에 조인원 총장은 “화석연료 산업이 지구온난화를 유발했다고 해서 사회의 악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적정하게 관리할 수 있는 정도에서 소비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성장과 소비문화가 인류에게 편리함과 편익함을 가져다준 것은 사실이지만, 인류의 유일한 삶의 터전인 지구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는 현 단계에서는 ‘무한 성장’에서 ‘적정 성장’의 가능성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 전공에서 깊게 다루지 않은 주제, 학생들과 깊게 논의해보겠다”
강연을 들은 노준호(국제통상·금융투자학과 18학번) 학생은 “평소에 기후변화 문제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아서 잘 모르는 분야인데, 총장님께서 비전공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셔서 인상 깊었고, 기후변화가 나와 먼 이야기가 아니라 ‘내 문제’이기도 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장용준 국제통상·금융투자학과 교수는 “기후변화는 전공 수업시간에 깊게 다루지 않았던 주제였다”며 “앞으로 미래의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는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학생들과 더욱 깊게 논의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강연 후 학생들과 교수, 조인원 총장은 학교 앞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조 총장은 때론 인생 선배, 때론 정치학자, 때론 교육행정가로서의 견해를 들려주며 학생들에게 다양한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국제통상·금융투자학과는 세계 경제 환경 변화에 선도적으로 대응하고 국제통상 및 금융투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하는 글로벌 리더, 국제통상 및 금융투자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한다. 지난 2015년부터 4년 연속 교육부의 ‘대학 평생교육체제 지원사업’에 선정, 학령기 학생 중심의 고등교육 체제를 성인학습자 친화적 학사체제로 전환해 ‘선취업 후진학’을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글 오은경 oek8524@khu.ac.kr
사진
이춘한 choons@khu.ac.kr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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