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자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땅을 보라”
미래를 먼저 살았던 세계인, 美源 조영식
경희학원 설립자 미원 조영식 박사는 ‘학문과 평화’의 실천을 통해 ‘문화세계 창조’의 길을 모색한 교육자이자 사상가이고 평화 운동가였다. 이념 전쟁의 와중에서 진리와 양심, 문화·복리의 길을 찾아 나섰고, 현대사회의 제약 속에서 인간 복권을 역설했던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길이 없어 스스로 길이 된, 미래를 먼저 살았던 세계인이었다.
미원은 일제 강점기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되자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도모하다 고초를 겪었다. 옥중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세계 내 생성과 변화의 원리를 탐구한 전승화(全乘和) 철학을 기초했다. 인간과 세계, 문명과 우주를 잇는 사유체계의 밑그림을 그렸다. 광복 후 서울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새 나라 건설에 이바지할 마음으로 정치에 나섰으나, 혼탁한 정치 현실을 겪으면서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이 더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5월 18일, 미원은 1949년 설립돼 피란지 부산에서 어려움을 겪던 성재학원을 인수하면서 미래를 향한 학술과 평화의 장정에 올랐다.
전쟁의 포화와 총성 속에 집필한 『문화세계의 창조』. 미원이 꿈꾼 문화세계는 기성정치의 이념과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의 세계,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무엇보다 우선하고, 생존과 번영을 위한 ‘만인과 대·소국 동권’이 존중되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인간의 세계였다.
미원은 경희학원을 그런 세계를 추구하는 창조의 요람으로 만들고자 했다. 국가적 제약과 시대의 한계를 넘어 세계로, 미래로 뻗어가는 학술, 교육, 실천의 장을 일궈내고자 했다.
경희는 ‘학원(學園)의 민주화, 사상(思想)의 민주화, 생활(生活)의 민주화’를 교훈으로 설정해 진리 탐구와 함께 농촌운동, 잘살기운동, 밝은사회운동, 인류사회재건운동, 네오르네상스운동을 펼쳤다. 인간과 세계를 위한 학술과 공적 실천의 길을 모색했다.
미원은 교육과 학습이 결국 평화로 귀결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제창해 1965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첫발을 내디딘 세계대학총장회는 학술·교육기관의 지구적 존엄을 모색했다. 경희의 평화운동은 선언에 그치지 않았다. 세계 내 인간의 권리와 책임을 추구하는 혁신으로 이어졌다. 1970년대 실시한 ‘민주시민교육 특강’, 1986년 ‘세계시민 교과서 편찬’, 1990년대 전개한 ‘네오르네상스운동’은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경희는 1960년 남녀공학으로 설립한 경희중·고등학교를 62년 분립했다. 1961년 경희유치원과 경희초등학교를 설립해 일관 종합학원을 구축했다. 1971년에는 경희의료원을 설립했다. ‘질병 없는 인류사회’를 설립 취지로 한 경희의료원은 준공식에서 ‘국민의 것, 국가의 것’이라고 천명하며, 의료·보건의 공공성을 강조했다. 의학·치의학·한의학·약학·간호학을 아우르는 종합의학 체계의 초석을 마련한 데 이어 2006년엔 강동경희대병원을 개원했다. 2001년 새천년을 맞아 시민사회의 문명사적 책임과 사회교육, 디지털 문명의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경희사이버대학교를 설립했다.
1948년 발간한 『민주주의 자유론』에서 시작된 미원 사상은 1951년 『문화세계의 창조』를 거쳐 1975년 『인류사회의 재건』, 1979년 『오토피아』로 이어졌다.
미원 사상의 요체는 세계 내 시간, 공간, 환류, 실체가 ‘상관상제(相關相制)’하면서 생성과 변화, 부침과 명멸을 거듭한다는 전일적 세계관이다. 이를 기초로 인간과 세계, 역사·문명을 성찰했다. 세계의 존재와 함께하는 삶. 현상과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삶. 그 ‘인간적 숙명’과 함께 사유하고 뜻을 세워 인간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평화로운 세상을 함께 열어가야 할 책무를 지닌 존재가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미원 사상은 두 축으로 전개됐다. 하나는 교육을 통해 세계를 배우고 인간을 성찰해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공적 실천을 통해 평화의 여정을 열어가는 일이다. ‘주의생성(主意生成)’의 원리, 미원 사상에 면면히 흐르는 인식의 기초는 현대의 제약과 한계, 편견 너머 존재하는 인간의 보편가치, 더 나은 세상의 미래를 향했다.
경희의 평화운동은 1965년 세계대학총장회 창립 이후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됐다.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적극 모색했다. 그 결실 중 하나는 유엔 세계평화의 날과 해 제정이다. 1981년 7월, 경희는 제6차 세계대학총장회를 통해 세계평화의 날과 해 제정을 유엔에 제안했다. 그해 11월 제36차 유엔총회는 이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1984년 훗날 ‘유네스코 평화교육상’을 수상한 평화복지대학원을 설립했고, 1986년 『세계평화대백과사전』을 출간했다. 1999년 NGO세계대회를 개최해 인류평화와 번영을 위한 지구적 실천의 장을 열었다.
미원에겐 학술과 창작, 공적 실천은 서로 다르지 않았다. 세 범주의 활동 모두 한곳을 가리킨다. 인간과 세상의 더 나은 미래다. 미원은 경희학원가, 경희대학교를 비롯한 각급 학교 교가, 가곡 <목련화>를 작사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땅을 보라’를 비롯해 수십 편의 시를 남겼다. 20대 후반 『민주주의 자유론』을 펴낸 후 50여 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미원은 세계대학총장회 회장을 비롯해 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위원장, 밝은사회국제클럽(GCS) 국제본부 총재, 통일고문회의 의장 등을 역임했다. 제1회 세계후마니타스회의가 수여한 ‘인류 최고 영예의 장’ ‘함마슐트상’ ‘유엔평화훈장’ ‘아인슈타인평화상’ ‘마하트마 간디상’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 69개의 상훈을 받았다. 세계 32개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미원이 평생 추구하고 호소해온 조화롭고 평화로운 ‘지구공동사회(Global Common Society)’는 아직 먼 길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평화는 개선(凱旋)보다 귀하다.” “의지는 역경을 뚫고 협동은 기적을 낳는다.” “인간에겐 사랑을 인류에겐 평화를.”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생각은 무엇일까. 이례적인 문명사적 위기와 새로운 문명의 가능성이 혼란스럽게 교차하는 전환의 시대. 미원이 남긴 마지막 시어(詩語)는 전환의 화두를 던진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땅을 보라.”
이제 우리 스스로 길을 찾고 창조해야 할 시간이다. 큰 전환의 시대를 맞아 인간과 사회, 문명과 자연을 관류하는 초연결성의 의미를 헤아려 우리 삶과 미래가 평화롭고 지속 가능한 여정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전기를 마련해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