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전자피부’ 개발, ‘생활 혁신’ 시작된다
2018-07-09 연구/산학
오진영 화학공학과 교수, 세계적 과학저널 <Science>에 논문 게재
늘어나고 스스로 상처 치유 가능한 ‘전자피부’ 개발
“전자재료 개발 넘어 시스템 개발, 실용화 앞당긴다”
최근까지 전자소자 발전의 핵심은 ‘크기’였다. 포터블 디바이스(portable device)에서 웨어러블 디바이스(wearable device)까지, 성능은 높이고 크기는 줄여왔지만 현재는 한계에 도달한 상태다. 오진영 화학공학과 교수는 ‘크기’를 대체할 새로운 키워드를 고민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거리’다.
전자소자와 사람 간의 거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람과 포터블 디바이스 간의 거리는 센티미터(cm), 웨어러블 디바이스와의 거리가 밀리미터(mm)였다면, 차세대 전자소자는 ‘제로(Zero)’가 될 것이라고 오진영 교수는 말한다. ‘전자피부(Electronic Skin, e-skin)’나 다름없다.
옷처럼 입고, 늘어나기도 하고… 전자기기와도 결합
오진영 교수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을 때부터 전자피부에 적합한 전자재료를 연구해왔다. 그 결과 피부처럼 늘어나기도 하고, 스스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전자재료를 개발했다. 일상생활을 바꾸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문을 연 것이다.
이와 관련해 오진영 교수가 공저자와 주저자로 참여한 연구팀의 논문 ‘A bioinspired flexible organic artificial afferent nerve’와 ‘Skin-inspired electronics: An emerging paradigm’이 지난 6월 세계적인 과학저널 <Science>(IF: 41.058)와 <Accounts of Chemical Research>(IF: 20.955)에 각각 게재됐다.
오 교수는 2016년부터 <Nature>(IF: 41.577), <Science>(IF: 41.058), <Energy & Environmental Science>(IF: 30.067), <Advanced Materials>(IF: 21.950)와 같은 권위 있는 저널에 차세대 전자재료 관련 논문을 꾸준히 게재해 왔다.
오진영 교수팀이 개발한 전자재료는 사람 피부와 같다는 데 포인트가 있다. 신체의 움직임을 견딜 수 있도록 늘어나고,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여러 상처를 스스로 치유한다. 옷처럼 입거나, 피부 위에 붙이면 되기에 더 이상 전자기기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고,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기에 기기가 고장 나도 버릴 필요가 없다. 전자기기의 수명도 늘어난다.
이는 우리 삶의 전반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을 것으로 보인다. 핸드폰의 기능을 흡수하는 것은 물론 여기에 두 가지 역할이 추가될 것으로 오 교수는 예측한다. 그 중 하나가 ‘바이오 헬스케어’인데, 피부 위의 전자소자가 건강 상태를 측정해 그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 병원과 연계해 보다 건강한 삶을 추구할 수 있게 돕는다.
“점탄성 활용해 우리 손으로 디스플레이도 만들 수 있어”
팔, 다리를 대체할 수 있는 보철에도 활용될 전망이다. 불의의 사고나 선천적으로 팔, 다리가 없는 이들에게 심미적인 측면뿐 아니라 감각을 느끼고 움직임을 수월하게 하는 ‘스마트 보철’에 차세대 전자재료가 사용된다.
오진영 교수팀이 개발한 전자재료는 점탄성(粘彈性)을 갖고 있다. 기존 플렉시블(flexible) 소자도 구부릴 수는 있었지만 늘리긴 어려웠는데, 오 교수팀은 첨가제를 넣어 점탄성을 추가했다. 오 교수는 “이번에 개발한 재료는 전도체인데 밀가루 반죽이나 꿀처럼 칼로 잘라도 순식간에 붙는다”며 “전기도 통하고 패턴도 만들 수 있어 고무찰흙 놀이하듯 우리 손으로 디스플레이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트랜지스터에 대한 연구도 진행했다. 트랜지스터에 대한 연구는 많지만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반도체에 관한 연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 교수는 고분자 반도체에 ‘똑딱단추’와 같은 결합 가능한 유닛을 인위적으로 합성했다. 그 결과 늘어나면서도 스스로 치유가 가능한 반도체가 탄생했다. 기존보다 약 1,000배 정도 성능이 좋아졌다.
오 교수팀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 반도체가 반복적으로 잘 늘어나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붙였다 뗐다를 반복하거나, 많이 늘어났을 경우 갈라짐이 생겼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열을 가하면 팽창하는 성질과, 용매를 적용했다. 오 교수는 “구부리고 당기는 동작에서도 전기적인 특성이 유지가 되고, 치유가 가능한 트랜지스터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늘어나고 숨을 쉬는 메시 타입 반도체 개발, 심장병 환자에게 도움될 것
오진영 교수는 사람의 피부도 고려했다.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인한 피부발진은 학계에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부분이다. 오 교수는 “경쟁그룹에서 그물망 구조를 가진 메시 타입 전도체를 만들었는데,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메시 타입 반도체를 만들었다”고 언급했다. 메시 타입은 피부와 닿는 면적이 적어, 피부가 숨을 쉴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심장병 환자에게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오 교수는 “심장박동을 일정하게 유지시켜주는 페이서(pacer)를 심장에 이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페이서가 딱딱하면 장기에 염증을 유발하기 쉽다”며 “부작용을 줄이려면 부드럽고, 닿는 면적이 최소화돼야 한다. 나노 크기 매쉬타입은 이런 효과를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고무를 활용해 늘어나는 센서도 개발했다. 이를 통해 닿을 때뿐 아니라 누를 때 발생하는 힘의 분포까지 계산 가능한 소자를 만들 수 있다. 이 같은 차세대 전자재료를 사용한 전자소자들이 앞으로 우리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 것이라는 게 오 교수의 생각이다.
‘우연한 발견’, ‘실패한 실험’이 연구 원동력
오진영 교수의 연구에 대한 열정은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오 교수는 “전자재료를 연구하겠다고 결심하고 새로운 것을 탐색하던 중 스탠포드대학 제난 바오(Zhenan Bao) 교수님의 논문을 읽게 됐다”며 “박사 후 과정을 제난 바오 교수님과 함께 하게 됐고, 공동연구를 통해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박사 후 과정에서부터 함께한 연구팀은 재료, 물리, 화학, 기계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고, 다른 분야 친구들의 조언이 더해지며 아이디어나 실험방법이 완성돼 갔다”며 “경희대에서도 다른 학과 교수님들과 협업해서 의미 있는 연구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오 교수가 꾸준히 연구를 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은 ‘우연한 발견’이다. 오 교수는 “실패한 실험, 혹은 귀찮아서 치우지 않았던 샘플을 다시 들여다볼 때 좋은 결과를 거뒀다.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기 때문에 항상 관심을 갖고 관찰을 해야 한다. 그것이 학자의 순수한 마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단위소자를 넘어 시스템 내 소자를 만들고 싶다”는 오 교수는 “지금까지 재료개발에 집중했다면, 이제 시스템 개발해 집중해 실용화가 될 수 있는 수준까지 연구하고 싶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오진영 교수 프로필>
공과대학 화학공학과 교수. 현재 늘어나고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전자재료에 대해 연구 중이다. 연세대학교에서 학사, 석·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스탠포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에서 화학공학을 전공으로 박사 후 과정을 밟았다.
주요 논문으로 “Intrinsically stretchable and healable semiconducting polymer for organic transistors”(Nature, 539, 411-415, 2016), “Highly stretchable polymer semiconductor films through nanoconfinement effect”(Science, 355, 59-64, 2017), “Deformable organic nanowire field-effect transistors’(Advanced Materials, 30, 1704401, 2018) 등이 있다. 그의 홈페이지(https://scholar.google.com/citations?hl=ko&user=r9wAffwAAAAJ&view_op=list_works)에 가면 더 많은 연구를 볼 수 있다.
박은지(커뮤니케이션센터, sloweunz@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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