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인간중심적 가치관을 바꿔야 한다”

2018-04-20 교육

에미넌트 스칼라(ES)로 초빙된 장회익 교수. 장 교수는 자신이 10여 년 전에 발표한 불완전한 이론을 완성해 지난 3월 세계적 학술지에 게재, 융합학문에 관심을 쏟은 이후 더욱 깊어진 학문 세계를 제시했다.

장회익 교수 에미넌트 스칼라(ES) 초빙, 학내 융합학문 저변 확대
‘온생명론’ 창시, 80세에 세계 학술지 논문 게재 등
“내 전공과 먼 사람과의 소통, 전공에 대한 이해 더 깊어지게 해”

올해 80세인 노학자가 자신이 10여 년 전에 발표한 불완전한 이론을 완성해 지난 3월 세계적 학술지에 게재했다. 융합학문에 관심을 쏟은 이후 더욱 깊어진 학문 세계를 제시한 것이다. 더욱이 학자의 연구수명이 가장 짧다고 알려진 이론물리학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 성과를 발표, 학계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올해 에미넌트 스칼라(Eminent Scholar, ES)로 초빙된 장회익 교수다.

장회익 교수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아우르는 통섭적 통찰을 통해 생명과 자연의 본질을 깊이 성찰,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연결된 존재라는 ‘온생명(Global Life) 이론’을 발표했다. 장 교수는 교육과 연구 외에 온생명 이론을 토대로 환경운동, 저서 출판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경희대학교는 융합학문의 저변 확대를 위해 장회익 교수를 ES로 초빙했다. ES는 경희가 학술문화 진작을 위해 운영 중인 석학초빙제도다. 장회익 교수는 여러 학문 분야의 교수들과 함께 ‘양자역학과 사회과학의 연결’을 주제로 융합학문 세미나를 진행하고, 독립연구, 특강 등을 이어갈 예정이다.

장회익 교수를 만나 그의 학문세계, ‘융합’에 대한 생각, 최근 연구 활동, 향후 계획 등을 들었다.

핵심 개념에서 공통·통합적인 내용 찾아서 융합해야
Q) 융합학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모든 학문의 기초는 물리학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대학 때 물리학을 전공으로 선택했어요. 그런데 이해하기 쉽지 않더군요. 그래서 철학을 공부했어요. 학문의 뿌리를 이해하는 데 철학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 거죠.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같이 공부하면서 인문학을 이해하는 자연과학자라는 평가를 받게 됐어요. 이를 계기로 융합을 주제로 하는 자리에서 발표와 공동 연구 기회가 늘어났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융합학문을 공부하게 됐죠.

Q) 교수님께서 생각하는 ‘융합’이란 무엇입니까? 그리고 ‘융합’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학문 분야가 너무 전문화되면서 전체를 보는 눈을 잃어버렸어요. 이 때문에 ‘융합’이 필요해요. ‘융합’은 학문을 서로 연결해 전체를 보는 눈을 키워주기 때문이죠. 하지만 ‘융합’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학문의 뿌리, 즉 핵심 개념에서 공통된, 통합적인 내용을 찾아내서 연결해야 해요. 표피적인 것을 연결해서는 융합할 수 없습니다.

경희대에서 지난 3월부터 융합학문 세미나를 시작했어요. 양자역학에 대한 공부를 함께한 후 융합 분야를 모색하는 세미나인데, 물리학과 인연이 없는 교수님들도 참석해요. 지난 몇 달 동안 어떻게 하면 전공자에게도 난해한 양자역학을 비전공자들에게, 그것도 짧은 시간 내에 의미 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그러면서 양자역학에 대한 제 이해가 더 깊어지더군요. 자신의 전공과 먼 사람과 이야기하려고 시도하면 할수록 학문에 대해 이해가 깊어지는 것 같아요. 융합학문을 할 때 그런 자세로 하면 서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관심도 중요합니다. 학문은 논쟁을 통해서도 발전할 수 있어요. 하지만 자신의 학문 분야에서 새로운 이론이 발표돼도 생각이 다르거나 그동안의 사유체계와 다른 이야기면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아요. 새로운 이론에 관심을 두고 목소리를 내는 것도 융합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장회익 교수가 지난 4월 12일(목) 열린 융합학문 세미나에서 양자역학 관련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융합학문 세미나에는 다양한 전공 분야의 교수 20여 명이 참여, 양자역학을 공부한 후 융합 분야를 모색한다.

사고의 전환으로 10여 년 전에 발표한 불완전한 주장 완성
Q) 여든의 연세에도 활발한 학술 활동을 펼치고 계신데요,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나이가 학문적 사고와 공부에 지장을 준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기억을 저장하는 것이 예전보다 어려워요. 하지만 학문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해요. 나뭇잎이 떨어지면서 줄기가 선명하게 드러나듯이 나이가 들수록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잔가지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중요한 줄기들이 더 잘 보이게 되는 것 같거든요.

Q) 1988년에 유기체적인 생명인 ‘낱생명’은 ‘온생명’ 안에서 연결돼야 생존할 수 있다는 온생명 이론을 발표하셨습니다. 이 이론을 발표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온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제가 생명의 본질에 관심을 두게 된 배경부터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1953년에 영국의 물리학자 프랜시스 크릭과 미국의 생물학자 제임스 왓슨이 DNA 분자구조를 발견했죠. 이후, 학계에서는 생명의 분자생물학적인 연구가 활발히 이뤄졌어요. 제가 박사 학위를 마친 1960년대 말에도 그랬죠. 놀라운 발견이기도 하고, 물리학자가 생명을 이해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이 흥미로워서 생명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보다 근원적인 질문이 생겼어요.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구조는 밝혀지고 있었지만, 그 어디에서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어요. DNA 분자구조를 밝혀내는 데 영감을 준 책으로 알려진 이론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도 원하는 답을 찾지 못했어요.

‘생명체 속의 무엇이 생명을 생명이게 하는가’를 고민했더니 답이 나오지 않았던 거죠. 10여 년이 지난 후, 태양과 지구 사이에서 형성되는 지속적인 자유에너지의 흐름을 바탕으로 대략 35억 년 전에 생명이 탄생했듯이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가 있어야 생명을 얻고 생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명을 독자적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 접근한 거죠. 사고의 전환을 통해 오랫동안 고민해온 문제를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Q) 지난 3월 SCI 저널 <Physica A>에 논문을 발표하셨습니다. 논문 소개 부탁드립니다.
온생명과도 관련이 있어요. 온생명을 물리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개념이 자유에너지입니다. 살아서 움직인다는 것은 여분의 자유에너지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죠. 10여 년 전에 그 자유에너지가 태양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내용을 발표했는데요, 그런 의문이 들었어요. ‘태양에서 오는 것이 자유에너지가 맞을까?’

그래서 다른 연구들을 살펴봤는데, 그 이론이 아직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더군요. 문제에 부딪히니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시 물리학의 일선에 빨려 들어가 이 문제를 풀어내는 데 1년여의 시간이 걸렸네요. 자유에너지가 태양에서 온다는 가설을 증명하고,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받는 자유에너지의 양을 계산하는 공식을 만들었어요.

장회익 교수는 유기체적인 생명인 ‘낱생명’은 ‘온생명’ 안에서 연결돼야 생존할 수 있다는 온생명 이론을 정립했다. 경희대가 지구적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이 온생명을 건강하게 살려내는 활동이라고 평가한 그는 이 부분에 뜻을 함께 하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전체를 통해 뿌리와 큰 줄기를 볼 줄 알아야 한다
Q) 평소에 학생들에게 자주 해주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학생들에게 공부 체질을 만들라는 조언을 자주 해줍니다. 이상적인 것은 재미있어서 하는 공부가 돼야 하는데, 이것은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습관적으로 몸에 체질화되는 것이 필요하죠. 습관이 되면 따라가는 데 힘이 들지 않잖아요. 건강관리도 중요합니다. 건강한 상태에서 공부 체질이 되면 공부가 계속 이어질 수 있어요.

또 한 가지, 전체를 통해 뿌리와 큰 줄기를 볼 줄 알아야 해요. 공부를 하면서 지엽적인 것에 빠지기 쉽거든요. 의식적으로 새로 배운 것에서 뿌리와 줄기, 즉 본질과 가치를 찾고 자신의 큰 그림에서 연결해나가는 것이 중요해요. 아무 데나 쌓아두면 조금만 지나면 쉽게 흩어져 버리거든요.

Q) 요즘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온전한 앎’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앎을 연결해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이죠. 지구의에서 전 세계의 위치를 알 수 있듯이 앎의 자리를 나타내는 구조를 고민하고 있어요.

우주의 역사를 보면 물질만 있다가 인간이 만들어졌고, 인간은 내면을 통해 물질세계를 이해하게 됩니다. 우주에서부터 인간으로 이어지는 이러한 온전한 앎의 과정을 연결하고 표현하는 것이 최근의 관심사입니다.

지구적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 ‘온생명’을 건강하게 살려내는 활동
Q) 경희대는 기후변화, 도시문제 등 지구적·국가적 난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그 어떤 낱생명이라 하더라도 자유에너지의 원천인 태양-지구계를 벗어나 존재할 수 없어요. 온생명 안에서 연결돼 있어야 생존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 온생명 자체를 병들게 하죠.

환경문제가 그 예입니다. 인간은 온생명의 일부로서 온생명 안에서 생존할 수 있는 존재인데,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무분별한 개발에 나서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죠. 인간뿐 아니라 동식물, 공기, 물 등이 함께하는 온생명 자체의 생리를 충분히 이해해야 해요.

그동안 물리학과 철학을 결합해서 양자역학의 의미를 공부했고, 이것을 토대로 생명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결과가 온생명이에요.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중심적 가치관을 바꾸지 않는다면 인류는 미래를 기대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여러 학문을 결합해 생태계 보존 등을 고민해왔죠.

이러한 생각을 가져온 제 입장에서 보면 경희대가 지구적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은 온생명을 건강하게 살려내는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여기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서 경희대와 함께 하게 된 것입니다.

Q) 앞으로 융합학문 세미나, 독립연구, 특강 등을 진행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우선 융합학문 세미나를 시작했어요. 여러 전공 분야의 교수 20여 명이 모여 학문의 기초가 되는 물리학, 특히 양자역학을 함께 공부한 뒤, 융합 분야를 찾아 나가려고 해요. 세미나 결과를 교육으로도 발전시킬 계획이고요.

경희대는 인류가 직면한 문제는 여러 학문 분야가 융합할 때 해결할 수 있다는 기조에 따라 융합학문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더군요. 세미나를 통해 의미 있는 융합이 일어나 대학의 비전 실현에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그리고 온전한 앎을 비롯해 개인적으로 해오던 연구를 지속하고, 융합학문에 관심 있는 학생을 지도할 계획입니다. 우리 세대는 융합적인 공부에 대한 훈련을 받지 못했어요. 그래서 우회를 많이 한 것 같아요. 물론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 배운 것도 있지만, 이미 그 길을 걸어봤던 사람으로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장회익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융합학문 세미나에서 발표할 양자역학의 새로운 이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양자역학에 대한 여러 해석 중 대표적인 것이 코펜하겐 해석이다. 이 이론이 온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장 교수는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고 있다. 그는 세미나에서 새로운 이론을 발표했을 때 양자역학을 공부한 다른 교수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며 한껏 들뜬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학문 탐구에서 흥미와 의미를 찾고, 여러 학문 분야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자신과 다른 학문적 견해를 나누는 것이 즐겁다는 마음이 장회익 교수의 학문적 원동력이 아닐까. 학문을 향한 그의 열정이 경희 캠퍼스 내에도 확산되길 기대한다.

오은경(커뮤니케이션센터, oek8524@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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