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철학과 함께 살겠습니다”
2018-03-07 교류/실천
철학과 김희림 학생, <여하튼, 철학을 팝니다> 출간
철학은 ‘문송’하지 않아, 사상을 ‘전복’시키고 ‘성장’시키는 매개
“인문학은 답이 없는 학문이 아니고 오히려 답이 많은 학문”
“‘문송’합니다”(‘문과여서 죄송합니다’의 줄임말). 인문계열 전공자의 취업난을 표현하는 신조어로, 인문학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압축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철학은 ‘문송’한 분야의 대표 격이다. 하지만 “평생 지금과 같이 철학을 공부하며 살고 싶다”고 주장하는 학생이 있다.
2만여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페이스북 페이지 ‘철학개그’의 운영자이자, 이를 바탕으로 최근 <여하튼, 철학을 팝니다>(자음과 모음)를 출간한 김희림 문과대학 학생(철학과 14학번)이 주인공이다.
자아와 사회에 대한 답을 찾다가 철학에 빠져들어
김희림 학생은 고등학교 시절 생물학을 전공하고 싶었다. 유전자와 진화 원칙을 공부하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가졌다. 생물학이 자아와 사회에 대한 질문에도 답을 주길 바라는 소망도 있었다. 이 소망으로 사회학에도 관심을 가졌다.
사회학을 공부하며 혼란도 함께 느꼈다. 김희림 학생은 “생물학에서 기존의 상식을 파괴하는 매력을 느꼈는데, 사회학은 그 상식을 다시 파괴하고 있었다”며 “생물학이 말하지 못하는 부분을 사회학이, 사회학이 말하지 못하는 부분을 생물학이 말하고 있어서 큰 혼란을 느꼈다”고 말했다.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찾던 그는 철학과 만났다. 철학은 가장 기본적인 것, 가장 근원적인 것, 가장 처음의 것을 다룰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렇게 철학의 세계로 한 걸음 한 걸음 빠져들었다.
김희림 학생은 “철학은 모든 답을 내리려는 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접근한다”며 “지금은 답을 찾는다는 욕구보다 조금 더 좋고 날카로운 질문을 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고 말한다.
인문학에 대한 생각도 남다르다. 그는 “인문학에 답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인문학은 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답이 많다. 많은 답 중 좋은 답을 찾기 위해서 좋은 질문이 필요한 것”이라며 “좋은 질문을 던지기 위해 철학을 한다”고 밝혔다.
공부에 대한 마음가짐을 다잡게 돕는 존재는 가족이다. 공부에 대한 지지는 물론 고등학생 때는 아버지와 종교와 학문에 대해 논했던 내용을 엮어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SFC출판부)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어떤 상황에도 철학을 ‘파고, 팔고’ 싶다는 결의”
김희림 학생은 철학을 공부하며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을 만났다. 철학에 관한 농담도 주고받는 관계다. ‘우리만 웃으면 의미가 없다’는 공감이 페이스북 페이지 ‘철학개그’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소소한 농담부터 철학에 관한 고민을 담은 A4 2장에 이르는 글까지 다양한 글을 올리는 ‘철학개그’는 개설 하루 만에 구독자가 1,500명을 넘어섰고 현재 2만 여 명에 이른다.
페이지 구독자가 1만 여 명이 넘어갈 즈음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철학개그’의 내용을 다듬어 책으로 출간하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반가웠다. 원고를 넘기고 나서 제목을 어떻게 지을까 고심했다. 최종적으로 정해진 제목은 <여하튼, 철학을 팝니다>.
책 제목에는 김희림 학생이 철학을 대하는 자세가 담겨있다. ‘여하튼’은 ‘의견이나 일의 성질, 형편, 상태 따위가 어떻게 되어 있든’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사회나 주변이 어떤 식으로 철학을 바라보더라도 철학을 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또한 ‘팝니다’는 중의적 의미를 지닌다. 철학을 제값을 받고 팔고 싶었고, 더욱 깊이 파고 들고 싶었다.
김희림 학생은 “치열하게 고민한 내용이 담겨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읽으셨으면 좋겠다”라면서도 “아직 완성되지 못한 생각이 담겨 있고, 앞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부끄러움과 함께 더욱 열심히 고민해야 한다는 다짐이 생긴다”고 말한다.
김희림 학생은 책을 통해 독자들이 철학을 일상적으로 느낄 수 있게 돕는다. 우리의 삶의 모습을 진지하고 때로는 유쾌하게 표현하기도 하고, 농담과 정치 풍자, 개인적인 경험들을 철학과 연계시킨다.
<여하튼, 철학을 팝니다>에는 ‘무민이 보내는 편지’라는 글이 있다. 이 글에서 김희림 학생은 인기 캐릭터인 무민의 기원에 대해서 설명한다. 무민을 만들어낸 핀란드의 작가 토베 얀손이 형제들과 칸트에 대한 논쟁을 벌이다 기분이 상해 화장실 벽에 북유럽의 도깨비인 트롤과 닮은 칸트를 그린 것이다.
“철학과 함께 성장하는 삶 살고파”
대부분 귀여운 하마로 오해하는 무민을 통해 얀슨은 부조리로 가득한 어두운 현실을 드러내고자 했다. 또한 당시 핀란드에서 불법이었던 동성애를 투영해 인권과 자유를 갈망하는 비판적 메시지도 담았다. 인간 사회에 대한 해학과 풍자가 녹아있는 무민을 통해 김희림 학생은 독자들에게 지금까지 보았던 것과 조금 다르게 ‘나’와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시선 갖기를 요청한다.
김희림 학생에게 철학은 새로움을 발견하는 재미를 준다. 그는 “이론과 사상을 접하면서 대상이 새롭게 보이는 경험을 한다. 혼란과 동시에 재미를 느낀다”고 말한다.
이른바 ‘대중인문학’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대중들의 아픈 마음을 치유해준다는 자기 계발서가 붐을 이루고, 대중들의 고민에 대해 즉답을 내려주는 토크 콘서트도 유행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대중 개개인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김희림 학생은 근본적 접근법이 철학이라고 말한다. 그는 “철학은 ‘나’와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유”라며 “개인 감정의 차원에서 사회적 모순에 이르기까지 문제의 본질을 발견하고 그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이 곧 철학”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목표는 ‘지금처럼 살아가기’이다. 철학 공부를 위해서 독일어 공부를 계속해왔다는 그는 “계속해서 공부하고 인간 본연의 문제와 사회 문제를 고민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며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조금 느리더라도 공부하며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정민재(커뮤니케이션센터, ddubi17@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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