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지구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글쓰기 축제”
2023-11-29 교육
제9회 후마니타스 글쓰기의 날 개최
‘우리의 가능한 현재와 미래’ 주제로 서평·에세이 쓰기, 나희덕 시인 초청 특강
한의학과 권인정 학생 대상 수상, “백일장 준비하며 발전할 수 있었다”
후마니타스는 자기 자신을 발명하면서 타자와 더불어 문명 전환을 이끌어가는 지구적 실천인이다. 글쓰기는 후마니타스가 갖춰야 할 기본 역량이다. 글 쓰는 사람이 곧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유하는 인간’만이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고, 그 미래를 구현하기 위해 실천에 나선다. 글쓰기는 사유와 실천을 매개하는 창조적 행위이다. 후마니타스칼리지가 글쓰기를 강조하는 이유 중 하나다.
지난 11월 8일(수) 서울캠퍼스 오비스홀 공연장에서 ‘제9회 후마니타스 글쓰기의 날 백일장’이 열렸다. 사전 접수 인원만 2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백일장 시작 전부터 오비스홀 공연장은 참가자들로 북적였다. 글쓰기센터에서 준비한 귤과 과자 등 주전부리를 받아 든 참가자들의 표정엔 미소가 떠올랐다.
서평 작품 <가능주의자>, <예술의 주름들>
에세이 글감 ‘지구인인 ‘나’의 현재와 미래’
글쓰기의 날은 ‘우리의 가능한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1부 서평 및 백일장 에세이, 2부 나희덕 시인의 특강, 시상식 순으로 진행됐다. 사회는 황금하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맡았다. 참가자들은 열린 공간에서 글쓰기 축제에 참여하며, 지구인으로서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시간을 가졌다.
백일장은 서평과 에세이 부문으로 나뉘어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서평 부문 글감은 나희덕 시인이 직접 출제했다. 나희덕 시인의 시집 <가능주의자>를 읽고 ‘가능주의자’에 대한 ‘나’의 해석과 의견을 제시하는 글감, 나희덕 시인의 산문집 <예술의 주름들>을 읽고 책에서 다룬 예술가 중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와 그 이유를 밝히는 글감, 대상 도서 두 권을 통합해 기후 위기 시대에 시와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는 글감 등 총 3개가 제시됐다. 참가자들은 이 중 하나를 택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냈다.
에세이 부문은 ‘지구인인 ‘나’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우리가 잃어버린 것과 지키고 회복해야 할 것을 고민해 보는 글감이 제시됐다. 동식물의 멸종, 생태계 오염, 기후 위기, 전쟁, 난민, 식량 부족, 양극화, 탈세계화, 혐오, 세대 갈등, 인공지능의 발전과 부작용, 가짜 뉴스 등 전 지구적 문제에 관해 지구 생명공동체의 일원인 ‘나’의 생각을 자유롭게 서술하는 것이었다. 서평은 띄어쓰기 포함 2,000자 내외, 에세이는 띄어쓰기 포함 1,500자 내외 분량으로 진행됐다.
후마니타스칼리지 글쓰기센터장 겸 글쓰기 교과 디렉터인 김수이 교수는 “글쓰기는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양교육의 단단한 뿌리이자 빛나는 열매”라며 “제9회 후마니타스 글쓰기의 날은 학생들이 과목과 전공의 경계를 넘어 지구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열린 장이다. 학생들이 글쓰기를 통해 우리가 각자-함께 생각하고 행동하는 공동체임을 확인하고, 더 넓고 깊게 성장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라고 행사의 취지를 밝혔다.
“참가자 글 고루 뛰어나, 외국인 학생의 역량 돋보였다”
대상은 권인정(한의학과 20학번) 학생이 수상했다. 백일장에 처음 도전해 봤다는 권인정 학생은 “나희덕 시인을 좋아해 책이 탐나 백일장을 신청했다”라며 “백일장을 준비하면서 책을 여러 번 읽었다. 시인이 어떻게 이런 시를 쓸 수 있었을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기 발전을 이루어 낸 것 같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글쓰기 교수님들께 감사하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전체 수상 학생은 총 12명으로 대상 1명(상금 50만 원), 금상 2명(상금 30만 원), 우수상 4명(상금 20만 원), 장려상 5명(상금 10만 원)이다.
제9회 후마니타스 글쓰기의 날 백일장 수상자
대상 | 권인정(한의학과 20학번) |
금상 | 김성영(의상학과 21학번) |
나은이(국어국문학과 21학번) | |
우수상 | 김지은(일본어학과 19학번) |
OCAK GULSE(국교위 교환학생 23학번) | |
정인건(정보디스플레이학과 19학번) | |
조인우(국어국문학과 22학번) | |
장려상 | 김규한(자율전공학과 22학번) |
안지윤(의예과 23학번) | |
이서언(아동가족학과 22학번) | |
정민승(회계세무학과 23학번) | |
최서연(주거환경학과 23학번) |
시상에 앞서 정복철 후마니타스칼리지 학장은 나희덕 시인의 특강에 대한 소감을 밝히며 “글쓰기는 소통이다. 소통 능력과 안목, 각고의 과정이 더해져 참다운 창조의 글을 창출해 내는 것”이라며 “글쓰기의 날 백일장은 교수자와 학습자와의 만남, 전공이 다른 학생들 간의 만남이 이뤄지는 현장이다. 이런 축제의 장에 함께한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소통하며 글을 계속 써나가길 바란다”라고 격려했다.
이성천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참가자들의 글이 고루 뛰어났다. 심사 기준은 글쓰기의 기본인 주제를 몰아가는 힘과 글의 구성 능력, 문장 구사력이었다. 지난해에 비해 참여한 학생이 다양해졌고, 외국인 학생들도 우리말에 대한 이해력 및 활용 능력이 돋보였다”라며 “글쓰기의 날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자기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곧 사유고, 글은 인간 사유의 총체적 양식이다. 의식 있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였다”라고 심사평을 밝혔다.
“‘가능주의자’는 스스로 비판하며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사람”
백일장에 이어 명사 초청 특강으로 나희덕 시인의 강연이 이어졌다. 나희덕 시인은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뿌리에게>가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시집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사라진 손바닥>, <파일명 서정시> 등 총 9권과 산문집 <반통의 물>, <예술의 주름들> 등을 펴냈다. 김수영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2021년 출간한 아홉 번째 시집 <가능주의자>로 영랑시문학상과 대산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나희덕 시인은 ‘한 가능주의자의 삶과 예술’을 주제로 시집 <가능주의자>와 산문집 <예술의 주름들>을 두루 살피며 자신의 작품 세계와 예술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그는 <가능주의자>에 관해 “팬데믹 기간에 쓴 시를 모았다. 시가 결코 희망적일 수는 없었지만, 절망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라고 언급했다. 이어 “희망을 모색해 보기 위해 제목을 ‘가능주의자’라 붙였고, ‘이 자욱하고 흥건한 시대를 시는 어떻게 건널 수 있을까’ 하는 모색이 담겨 있다”라고 덧붙였다.
나 시인은 “재난 속에서 자기 몫의 기본권조차 찾지 못하고 생존의 고통을 겪고 희생되는 존재들, 우리 역사에서 아픈 통증을 간직하고 있는 존재들에 주목했다”라며 시인이 만든 말인 ‘가능주의자’에 대해 “낙관주의자와는 다르다”라며 “스스로 비판하면서 잘못된 시스템, 환경을 개선해 나가고,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이 가능주의자”라고 설명했다.
<예술의 주름들>에 관해서는 “비평적인 태도를 유지하되 시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이 만나는 지점을 이야기하려고 했다”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아녜스 바르다의 작품을 두고 예술에 대한 생각을 풀어냈다. 그는 “‘미적 체험’을 통해 예술에 대한 문해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을 언급하며 “예술이 삶의 중심부로 들어올 때까지 예술을 하면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글쓰기의 날 백일장에 참가한 정희원(경영학과 22학번) 학생은 “글쓰기의 날에 함께 하며 사회 이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라며 “단순히 문제만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고 어떻게 미래를 그려나갈지 한 번 더 고민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서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제9회 후마니타스 글쓰기의 날 대상 수상작
비틀린 주름을 이어 길을 만들기까지
권인정(한의학과 20학번)
시간여행을 다루는 문학, 예술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가설은 ‘시간의 주름’이다. 시공간의 3차원에서, 공간을 접고 접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주름을 꿰뚫는 길이 생겨 순간적인 이동을 가능케 한다는 이론인데, 어쩐지 ‘예술의 주름’과 결을 같이 한다고 느껴졌다. 주름과 주름, 상처와 상처가 파도처럼 만났다 이어지며 만났다 헤어지길 반복하다 ‘예술은 세계와 영혼의 주름을 거느린다.’ (<예술의 주름들> p.8 질 들뢰즈) 그리곤, 이 주름들을 해독하려 하다 ‘겹눈’이 생기는데, 예술을 사유하는 자에게 이 겹눈이 겹치다 보면, 예술을 꿰뚫는 길이 생겨나는 것이다.
여러 전시회를 다니곤 심미안을 기르고 있다며 스스로 뿌듯해하기도 했으나, 어느 순간 결국 난 아름다움만 포착하고 있을 뿐 그 본질을 꿰뚫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흘러 사라지는, 눈에 띄는 반짝거림만 따라흐르다, ‘흐르다,가 흘러내리다,의 동의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본질은 상위에 있는데, 난 의식도, 의지도 없이 낮은 방향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발돋움을 해야만 주름을 타고 본질로 다가갈 수 있음을 깨달았다. (시 <흐르다> 인용)
‘흘러내림’에 익숙해지는 것은 ‘벽’의 일부이고, 현실에 대한 직시이다. 시인은 영화 <아네스 바르다>의 해변으로 <벽의 반대말>이라는 시와 <벽의 반대말은 해변이에요>라는 산문을 전개한다. 해변은 무한히 열린 곳, 어디에나 있는 곳, 세계를 향한 확 트인 전망이며, 벽은 그 반대인 시야의 차단, 전망을 잃어버린 현실이다. 예쁜 것만을 가지려 하는 교심, 이익추구가 당당해진 현대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 ‘벽’이 되며, 이를 직시하고, 벽 너머의 다채로운 전망을 상상할 때에, 벽은 더 이상 나를 가두는 장애물이 아니라 즐거운 몽상의 통로가 된다. 그리고 이는, 예술적·문학적 사유로 세계의 주름과 상처를 접어가는 발돋움이다.
직시를 통해 벽을 넘었을 때, 비로소 작은 나를 넘어갈 수 있다. 시 <유령들처럼>에서 사람들은 ‘우리’를 보지 않고, 빗자루, 대걸레, 양동이만 보아 점점 투명해진다고 한다.
이것이 타자를 그저 나에 대한 쓸모, 이익으로만 봤을 때 나타나는 현상의 표현이다. 벽을 뚫고 나왔을 때, 비로소 타자를 한 영혼으로 ‘응시’하게 되고, 진정으로 감응할 때, 他는 俄의 범주에 들어간다. 내가 포용해야 하는, 지켜야 하는 영혼이 된다.
예술과 문학의 주름을 접어가며, 예술에 담긴 상처와, 그 본질을 진정으로 사유할 때, 우리는 침잠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계로 손을 뻗을 수 있다. 시와 예술은 결국 현재의 작은 나의 사유보다 더 먼 곳으로 향하고 있고, 감응하라 손짓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마스 사라세노의 <행성 그 사이의 우리>와 <아라크니아>가 이와 맞닿아 있다. 우리는 먼 행성을 찾아 떠나지 않아도 그가 만든 행성 사이를 부유하는 것만으로 우리의 사유와 감각은 좀 더 유연하고 자유로워질 것이며,(<예술의 주름들> p.31) 결국 우리가 부유하는 우주는 모든 개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그물‘망’이 된다. 우주의 직조 과정에서, 끈끈한 망에 연결되어 타인을 넘어 모든 개체와 감응할 때, 순전히 연민이 아닌, 내 것인 양의 상처와, 포개진 주름을 느끼고, 벽 너머로 단일한 개체가 되어 함께 넘어가고자 하게 된다.
한 인간은 유기체로 살아가며, 다른 모든 유기체와 유기적인 흐름 속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이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이 시와 예술적 사유의 힘이다. 나를 하류의 퇴적층에 고이게 했던 탐욕과 이기심이라는 벽을 꿰뚫고, 비로소 타자의 영혼과 조우할 수 있게 만들며, 모두가 결국 우주적인 망에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때, 함께 살아가는 이 공간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나희덕의 시는, 이 ‘불가능의 가능성’을 믿게 만들어 주며, 기후 위기에서 모두의 위기의식을 끌어내 주고, 통합된 아젠다를 이끌어내도록 유도한다. 결국, <가능주의자> 시집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문학과 예술의 힘이 바로 이것이며, 우리가 비틀린 주름을 이어 길을 만들 수 있도록 밀어 올린다.
글 박은지 sloweunz@khu.ac.kr
사진 이춘한 choons@khu.ac.kr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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