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대학이 바뀌어야 미래가 바뀐다
2023-11-22 교류/실천
『경희대학교 미래리포트 2023』 발행
설문조사, 포커스 그룹 인터뷰에 구성원 5,264명 참여
더 나은 미래 위한 지구적 차원의 집단지성 창출 계획
코로나19 팬데믹은 인류 문명을 급속도로 바꿔 놓았다. 우리 삶의 방식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공동체의 근원적 성찰을 통해 미래를 준비해야 할 때다. 지성 공동체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이에 경희는 구성원의 집단지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향점을 모색하기 위해 ‘경희대학교 미래리포트’를 추진했다. 그 결과물을 엮어 『경희대학교 미래리포트 2023』(이하 『미래리포트 2023』)을 발행했다.
1964년 ‘경희 100년 미래메시지’ 현재화·미래화
경희는 2014년, 개교 65주년과 경희 100년 미래메시지(이하 미래메시지) 50주년을 맞아 『경희대학교 미래대학리포트 2015』(이하 『미래리포트 2015』)를 발행한 바 있다. 미래메시지는 경희학원 설립자 故 미원(美源) 조영식 박사가 1964년 개교 15주년 기념 학원제에서 후학에게 남긴 것이다. 설립자는 당시 구성원 설문조사 결과도 함께 남겼다. 그 결과를 반영해 작성한 미래메시지의 골자는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세계적인 명문으로 성장하라’이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른 뒤, 창학 초창기 경희의 염원을 현재화·미래화해 『미래리포트 2015』를 발행했다.
경희는 포스트 팬데믹 시대를 맞아 다시 한번 『미래리포트』를 추진했다. 『미래리포트 2023』은 설문조사, 포커스 그룹 인터뷰(Focus Group Interview; FGI), 심층 인터뷰(In Depth Interview; IDI)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우리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보고, 국내외 대학 및 경희의 현주소와 지향점, 나아가 한국 사회와 인류 문명의 오늘과 내일에 대해 고민했다. 이를 통해 경희의 역사와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경희의 미래는 물론 고등교육과 인류 문명의 미래를 모색하고자 했다.
설문조사는 지난 5월 17일부터 30일까지 온라인으로 진행했으며, 학부생, 대학원생, 교수, 직원 등 구성원 5,264명이 조사에 응답했다. 이 중 부실한 응답을 제외한 5,222건이 분석에 활용됐다. 설문 문항은 2015년 조사의 연장선에서 구성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구성원의 인식 변화를 알아보고, 전환기 리더십을 전망하는 문항을 추가·보완했다. FGI, IDI는 6월 13일부터 21일까지 진행했다. 학부생과 대학원생 30명, 직원 10명은 FGI 방식으로 집단 심층 대화를 나눴고, 교수 10명은 대면/화상 개별 IDI 방식으로 의견을 피력했다.
현재 소중한 가치 1위 ‘행복’···‘자아실현’ 순위 하락·‘경제력’ 순위 상승
설문 문항은 나, 사회, 문명, 대학, 경희라는 다섯 개 화두를 중심으로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73개 문항으로 구성됐다. ‘나의 현재와 미래’는 지금, 여기의 ‘나’를 돌아보고, 이를 바탕으로 50년 후 삶을 상상하는 질문이 주를 이뤘다.
경희 구성원은 현재 나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로 ‘행복’을 선택했다. 이어 ‘건강’, ‘경제력’, ‘자아실현’ 순으로 나타났다. ‘인성’이나 ‘공동체’를 선택한 사람이 ‘경제력’ 같은 현실적인 가치를 선택한 사람에 비해 월등히 적었다. 2015년 조사와 1위는 같지만, 자아실현이 2위에서 4위로 순위가 하락했고, ‘건강’과 ‘경제력’ 순위가 크게 높아졌다.
현재 나의 가치관 형성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치는 요인에 관한 질문에는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주변 사람’(55.3%)을 꼽았다. ‘미디어’(13.4%), ‘학교 교육’(8.3%), ‘여가생활’(8.2%), ‘책’(6.4%)이 그 뒤를 이었다. 2015년과 비교하면 ‘미디어’의 응답률 상승(9.6%→13.4%)이 눈에 띈다. ‘학교 교육’ 순위는 6위에서 3위로 높아졌지만, 응답률은 3.1% 포인트 상승하는 데 그쳤다. 현재 대학 교육을 받는 이유에 관한 질문에 9.8%만이 ‘가치관 형성’이라 답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가치관 형성’ 응답률은 2015년에 비해 5.6% 포인트 줄었다. 교육이 가치관 형성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50년 후 존경받을 인간형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도전하는 사람’
‘인류의 현재와 미래’는 문명과 인류가 맞닥뜨린 난제, 지속 가능한 인류사회를 위한 핵심 가치, 미래 문명의 양상에 대해 상상하는 질문으로 구성됐다. 절반에 가까운 응답자가 ‘기후 위기’(49%)를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로 꼽았다. 2015년 16.9%에서 응답률이 크게 늘었다.
50년 후 가장 존경받을 인간형에 대해서는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도전하는 사람’(24%),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16.5%), ‘전문지식을 추구하는 사람’(15.4%) 순으로 응답률이 높았다. 2015년 조사와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당시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도전하는 사람’의 응답률은 5.7%에 불과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을 벗어나 나오기 어려운 결과로 보인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계의 한계를 느낀 구성원들이 ‘다른 세상’의 도래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경희 구성원은 더 나은 ‘다른 세상’을 위해 타인을 위해 헌신하고,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이 필요하다는 소망도 나타냈다.
대학 교육 받는 이유 ‘취업’, 미래 대학이 추구해야 할 가치 ‘사고력 확장’
‘대학과 고등교육’에서는 대학 교육을 받는 이유, 국내외 대학이 추구해야 할 가치 등 문항을 통해 전환의 시대, 미래 사회가 요청하는 대학다운 대학의 요건을 살폈다. 대학 교육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취업 대비’(33.4%)로 나타났다. 현재 국내외 대학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또한 ‘취업역량 제고’로 조사됐다.
더 나은 삶과 세계를 이룩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 미래 대학이 가장 우선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에 관한 질문에는 ‘사고력 확장’이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그 뒤를 이어 ‘인간다움 추구’, ‘다양성 추구’, ‘진리 탐구’, ‘자아 성찰 강조’, ‘주체성 함양’, ‘사회공헌’이 선택됐다. 2015년과 비교하면 ‘사고력 확장’은 5위에서 1위로, ‘인간다움 추구’는 6위에서 2위로 상승했고, ‘자아 성찰 강조’는 1위에서 5위로, ‘전공지식 전수’는 3위에서 8위로 하락했다.
미래 대학에서 존경받는 교수의 모습은 ‘학생의 사고력을 높여주는 뛰어난 질문자’로 그려졌다. 이 같은 결과는 미래 대학이 추구해야 할 가치로 꼽힌 ‘사고력 확장’과 맥을 같이 한다. 학생들은 교수자의 ‘뛰어난 질문’으로 더 ‘창의적인 질문’을 만들고 자신만의 답을 찾아나가길 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경희의 현재와 미래’에서는 구성원 만족도와 경희대의 강점 및 약점, 미래 경쟁력 분야와 경희 리더 그룹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확인하고, 미래 경희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질문으로 구성됐다. 구성원의 만족도(61.3%)와 자부심(63.5%)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에 이어 ‘교양교육’이 경희의 강점으로, ‘동문의 사회진출’이 경희의 약점으로 꼽혔다.
『미래리포트 2023』 설문조사 결과에서 보듯이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중적 시각, 양가감정이 공존한다. 취업, 경제력에 대한 관심이 한 축을 이루고, 다른 세상, 인간다움에 대한 갈구가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두 축 사이의 간극이 매우 크다. 『미래리포트 2015』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이에 대해 『미래리포트 2015』는 “이상과 현실, 현재와 미래 사이의 간극이 클수록 학생들은 힘들어진다. 현재는 불안하고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이 간극을 좁혀주는 것이 대학 교육이 해결해야 할 1차적 과제”라고 제시한 바 있다. 대학 교육이 시급히 풀어가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팬데믹으로 비대면 한계와 교육의 새로운 가능성 발견
『미래리포트 2023』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대학 교육, 대학 사회에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지 자유롭게 응답하는 문항이 신설됐다. 이 질문에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는 ‘비대면’이다. 주요 의견으로 ‘관계/교류의 부재, 단절’, ‘사회성 저하’, ‘대면 활동/경험 감소’, ‘교육의 질 저하’, ‘소속감/유대감 약화’ 등 부정적인 영향을 언급한 내용이 많았다.
FGI에서도 비대면 상황에 대한 언급이 주를 이뤘다. 비대면 한계에 공감하면서 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교수는 “과거에는 대면 교육이 제일 효율적·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코로나19를 겪으며 여러 툴이 개발되고, 경험치가 쌓이며 비대면 교육도 대면 교육 못지않게 강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교육 기회가 확대되리라 예상한다”라고 말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또 다른 교수는 “대학에서 사회진출 전 단계를 경험하는데, 그 사회화 과정이 송두리째 빠졌다. 그리고 직접 대면과 인터넷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결국 학생의 학업성취도나 이해도가 상당히 떨어져 있는 상태다. 대학은 학생을 잘 교육해서 배출해야 하는데, 그 수준이 전반적으로 저하되지 않았나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미래리포트 2023』은 “코로나19 팬데믹은 대학에서의 관계 맺기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동시에 또 다른 방식의 교육을 상상할 수 있게 해 준 시간이었다. ‘절반의 대학’을 벗어나 교육과 학습, 구성원 간 교류가 ‘꽃 피는 대학’이 되기 위해 어떤 비전과 정책이 필요할 것인가. 논의가 시급하다”라고 강조했다.
팬데믹이 가속한 유례 없는 대전환기에 대응하는 방법 모색
『미래리포트 2015』와 『미래리포트 2023』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일관된다. ‘대학이 바뀌어야 미래가 바뀐다’는 것이다. 구성원들은 대학에 다니는 이유,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 인류의 미래에 대한 전망 등에 대해 냉정한 인식을 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비관적이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 대학 현실에 대한 암울한 진단, 인류 문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어두운 전망을 표출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경희 구성원은 50년 후 현재 내가 원하는 미래가 실현될 확률은 몇 %인가라는 질문에 67.3%라고 응답했다. 미래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인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대학원생과 학부생이 각각 69.8%, 67.1%로 교수(62.1%)와 직원(63.5%)에 비해 높았다. FGI 참여자들 또한 대체로 미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한 학생 그룹의 FGI에서는 참여자 일곱 명 가운데 여섯 명이 50년 후 자신의 꿈이 실현돼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직원 그룹의 FGI에서는 참여자 다섯 명 가운데 네 명이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미래리포트 2015』 참가자들은 대학 혁신을 촉구했다. 특히, 학생들은 전공교육의 내실화와 사제지간 회복을 요청했다. 경희는 이듬해 ‘21세기대학혁신위원회’를 구성한 데 이어 ‘함께하는 대학 혁신 대장정’을 출범했다. 교육, 연구, 행정, 인프라, 재정 등 전 부문에 걸쳐 혁신안을 마련해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했다. ‘교육에서 학습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교수와 학생이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교학상장(敎學相長)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미래리포트 2015』에 나타난 학생들의 요청에 응답하는 것은 물론, 문명사적 격변기에 대응하는 ‘대학다운 미래 대학’으로 거듭나기 위한 여정에 나선 것이다.
이후 우리는 거대한 문명사적 파고에 휩싸였다. 팬데믹이 가속화한 유례 없는 대전환기를 맞이했다. 경희는 이에 대응하면서 더 나은 대학 건설을 위한 핵심 요건을 모색하기 위해 『미래리포트 2023』을 기획했다. 구성원이 함께 현재를 성찰하고 상상한 미래는 경희의 도약 발전은 물론 국내외 대학, 나아가 지속 가능한 인류 문명을 꿈꾸는 시민과 단체, 공공기관에도 실질적인 지침이 될 수 있다.
경희는 ‘학문과 평화’의 전통 위에서 ‘지구적 존엄’을 구현하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해 왔다. 그 전통과 역사를 계승·발전시켜 지속 가능한 미래에 기여하는 대학을 건설해 나가기 위해 지속해서 지구적 차원의 집단지성을 창출하고자 한다. 『미래리포트』가 지구적 집단지성 창출을 위한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 오은경 oek8524@khu.ac.kr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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