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새로운 세기는 새로운 정치이념을 필요로 한다”
2023-05-17 교류/실천
개교기념(1) 창학 배경과 역사
전쟁 폐허에서 태동한 ‘문화세계의 창조’, ‘학문과 평화’의 가치
시대와 역사 성찰, 전일적 사유·전환적 사유 세계 펼쳐
5월 18일, 경희가 개교 74주년을 맞는다. 경희의 역사는 1951년 피란지 임시수도 부산에서 1949년 가인가 설립된 신흥초급대학을 인수하면서 시작했다. 경희학원 설립자 미원(美源) 조영식 박사는 경희정신의 모태가 되는 저서 『문화세계의 창조』를 탈고한 1951년 5월 18일 신흥초급대학을 인수했다. 이날이 경희의 개교기념일이다. 신흥초급대학은 1949년 설립됐다. 경희가 개교의 원년을 1949년으로 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5월 18일 개교기념일을 맞아 경희정신과 미래비전을 되새긴다. 그 첫 번째로 창학 배경과 역사를 살펴본다.<편집자 주>
전쟁의 참상에서 평화로운 인간의 인간적인 미래 지향
경희는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이 함께 했던 시대에 탄생했다. 시대와 역사를 성찰하면서 평화와 번영의 활로를 여는 지구공동사회의 길을 찾아 나섰다. 국가와 민족, 이념과 체제의 경계를 넘어 인류 보편가치를 모색했다. 조영식 박사가 전쟁의 참상을 겪으며 집필한 『문화세계의 창조』(1951년 5월 18일 발행)에는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된 시대, 닫힌 이념과 편견의 장벽을 넘어 인간의 인간적인 세상을 열어가자는 사유 세계가 펼쳐져 있다. 이것이 경희의 출발점이었다.
그 사유 세계는 경계와 환원, 기계론적 사유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근대의 지식 체계와 달랐다. 상호 연결과 중첩, 종합을 중시했다. ‘이 세상에 홀로 있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모든 것과 상관상제(相關相制)의 관계를 맺는다’, ‘존재와 의식은 서로를 전제한다’는 철학적 명제에 기반을 뒀다. 우주의 모든 것은 연결과 교호(交互) 작용에 따라 생성과 변화, 창조와 소멸을 거듭한다는 사상적 토대를 바탕으로 인간의 의식과 의지가 만들어내는 창조적 가능성을 포괄한 전일적 사유와 전환적 사유를 말했다.
이는 『문화세계의 창조』 서문 첫 문장 “새로운 세기는 새로운 정치이념을 필요로 한다”에도 잘 나타난다. 여기에서 말하는 정치이념은 현실정치 이념과 다르다. 고착된 틀의 정치, 대립과 폭력, 무고한 살상을 불사하는 현실정치가 아니라 평화로운 인간의 인간적인 미래를 지향했다. 내면 깊은 곳의 실존 의식과 양식에 귀 기울이고 이웃, 사회, 세계,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전일적 시민성을 강조했다. 주어진 시대의 난제를 돌파하고, 오늘보다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해야 하는 인류의 책무이자, 권리를 말했다. 경희는 먼저 교육을 통해 그 책무를 다하는 인재를 키워내고자 했다. 조영식 박사가 『문화세계의 창조』를 탈고한 1951년 5월 18일 경희의 전신인 신흥초급대학을 인수하면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로부터 10년, 경희는 일관 교육·학술 체제를 구축했다. 경희중·고등학교(1960년)에 이어 경희초등학교(1961년)와 경희유치원(1961년)을 설립했다. 유치원에서 대학원까지 교육의 전 과정을 일관된 체제로 묶어내는 국내 최대 규모의 종합학원 설립을 시작한 것이다. 이후 경희사이버대학교(2001년), 경희의료원(1971년), 강동경희대학교병원(2006년), 후마니타스 암병원(2018년)을 설치·운영하며 교육·학술·의료기관을 아우르는 종합학원 체제를 갖췄다.
피란지 임시수도 부산에서 발아한 경희의 창학이념, 서울캠퍼스에서 개화
경희는 1951년 부산 동광동에서 첫 캠퍼스 시대를 열었다. 판자 교사 세 채, 재학생 122명, 교직원 5명이 전부였다. 1952년 12월에는 4년제 대학 설립 인가를 획득한 데 이어 종합대학교로 도약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1953년 1월, 화재로 동광동 교사가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그해 봄 부산 동대신동에 교사를 다시 건립했다. 교훈 ‘학원의 민주화, 사상의 민주화, 생활의 민주화’를 써넣은 교문을 세우고, 새 출발을 알렸다. 1953년 3월에는 첫 학위수여식을 거행했다.
그해 7월 휴전 협정이 체결되자 피난했던 대학들이 서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희는 서울에 두고 온 교사도 없었고, 새 캠퍼스를 지은 지 불과 반년으로 서울에 부지를 장만할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서울캠퍼스 이전은 큰 결단이 필요했다. 부지 물색과 캠퍼스 건설 등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했다. 조영식 박사는 고황산 일대 30여만 평의 교지를 확보한 후 ‘100년 뒤의 경희, 세계적인 경희’를 그리며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
경희는 1954년 3월 24일 서울 회기동으로 캠퍼스를 이전했다. 대학원(현 신문방송국)과 임시 사무실(중앙도서관 옆 봉수대 자리) 그리고 목조 임시 교사(현 문과대) 등 세 채의 임시 교사를 지었다. 그해 4월 15일 임시 교사에서 첫 개강식을 열었다. 서울캠퍼스 시대가 개막한 것이다. 피란지에서 발아한 ‘문화세계의 창조’, ‘학문과 평화’의 가치가 고황산 기슭에 뿌리를 내리고 개화하기 시작했다.
세계 최빈국 신생 대학 ‘세계적인 대학 건설’ 꿈 키워
경희는 서울캠퍼스 시대를 열면서 ‘세계적인 대학’을 향한 담대한 비전을 선언했다. 조영식 박사는 1954년 5월 20일 학장(이듬해 종합대학으로 승격됐기 때문에 당시에는 총장직이 없었다) 취임식에서 “한국에 있어서의 어떠한 특정 대학을 흉내 내서 그와 같은 대학을 만들고 싶다 하는 심정은 없습니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것은 한국의 어느 대학보다도 동양적이요, 세계적으로 내놔서 첫째가는 제일 대학과 경쟁해야 되겠다”면서 구성원의 협동과 단결을 당부하는 말을 남겼다.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손에 의해서 결정지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목표를 지향해서 함께 노력한다면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으리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한 번 더 기억하면서 여러분들한테 부탁합니다.”
당시는 민족상잔의 참혹한 전쟁을 치른 직후였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세계 최빈국의 신생 대학, 경희가 처한 상황이었다. 암울한 시대 상황과 신생 대학이 겪게 마련인 고난에도 경희는 국내,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학’을 향한 미래를 꿈꿨다.
100년 후 미래를 건설하는 마스터플랜에 기반해 캠퍼스 구축도 시작했다. 부산 동대신동 교사를 건축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서울캠퍼스를 건설해야 했기에 재정적 난관이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애초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다. 1954년에 제작된 마스터플랜에서 볼 수 있듯이 정문(등용문), 본관, 중앙도서관 등 대학의 핵심 건물이 처음 설계한 그 모습 그대로 건설됐다.
1960년 ‘경희(慶熙)’로 교명 개명 후 비약적 발전 거듭
경희는 초급대학 설립의 법적 인가를 받은 지 불과 3년 만인 1955년 2월 28일 종합대학으로 승격했다. 이후 빠른 속도로 성장해 1958년 4월 8일에는 박사 학위 과정을 개설, 종합대학으로서의 면모를 완전히 갖췄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희 캠퍼스의 틀이 잡혀 나갔다. 마스터플랜에 따른 종합학원 건설 사업이 이어지며 ‘학문과 평화의 전당’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1960년 3월 1일에는 신흥에서 경희(慶熙)로 교명을 개명했다. ‘경희(慶熙)’는 객체와 주체, 양과 음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생성의 법칙과 일원론적 우주관을 함축하고 있다. 광활한 우주에 던져진 왜소한 인간의 전환적 사유와 함께 ‘인간의 문화세계’를 창조해보자는 소망을 담고 있다. 이름을 바꾼 후 경희는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1965년에는 동양의과대학을 합병해 스러져 가던 한의학의 불씨를 되살렸다. 이로써 의학, 한의학, 치의학, 약학, 간호학을 아우르는 국내 유일의 종합 의학 계열 체계를 구축했다. 1979년에는 53만 평 규모의 국제캠퍼스 설립 인가를 받고, 인문사회, 의학, 기초과학, 예술 중심의 서울캠퍼스, 공학, 응용과학, 국제학, 현대예술, 체육 중심의 국제캠퍼스, 평화학 센터로서의 광릉캠퍼스 체제를 구축했다. 1984년 설립된 평화복지대학원은 1993년 교육기관 최초로 유네스코 평화교육상을 수상한 바 있다.
지난 74년, 전쟁의 총성과 포화로 폐허가 되어버린 한반도. 모든 것이 힘겹기만 했던 신생 대학. 그 어려움 속에서도 경희는 경희만의 역사를 써내려 왔다. 경희는 오늘도 ‘문화세계의 창조’, ‘학문과 평화’의 가치와 전통을 기반으로 인간의 인간적인 세상,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창조적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 관련 영상 및 기사 보기
미원(美源) 조영식 박사 서거 10주기 기념 영상 에세이 ‘전환의 시대, 평화의 책무’
개교기념(2) 개교기념일에 첫선을 보인 상징물
개교기념(3) 설립자 미래메시지
글 오은경 oek8524@khu.ac.kr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
-
많이 본 기사
-
멀티미디어
-
-
신간
-
아픈 마음과 이별하고 나와 소중한 이를 살리는 법 처음 만나는 정신과 의...
-
2024 K-콘텐츠 한류를 읽는 안과 밖의 시선 “지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