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2012 미래문명원 콜로키움’ 개최
2012-11-26 교육
경희대, 한국현대사연구원(가칭) 설립 앞둬
학내외 석학 초청해 한국 현대사 연구 방향성 모색
'2012 미래문명원 콜로키움’이 지난 11월 10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개최됐다. 경희대학교는 한국현대사연구원 설립을 앞두고, '인류 문명사적 시각에서 조명한 한국 현대사 연구’를 주제로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 콜로키움에서 학내외 석학들은 한국 현대사 연구 방향에 관해 심도 있는 토론을 진행했다.
신은희 국제교류처장 사회로 이정식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 겸 경희대 석학교수(Eminent Scholar), 권기붕 평화복지대학원장, 김여수 미래문명원장, 이동수 공공대학원장, 이동욱 경희학원 이사, 정연교 서울캠퍼스 후마니타스칼리지 학장, 정진영 국제캠퍼스 교무처장, 허동현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참여했다. 이선민 조선일보 오피니언 부장, 이인호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한경구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외부 토론자로 초청됐다.
한국현대사연구원, 인류사적ㆍ문화사적 시각으로 역사 연구
행사에 앞서, 허동현 교수가 한국현대사연구원의 지향점을 발표했다. 그는 "한국 역사학계가 민족과 자주성의 신화에 지나치게 함몰돼 있고, 한국 사회과학계는 외국 이론을 그대로 차용하는 데 그치고 있다"고 지적한 뒤, "역사적 사실을 분석한 후 국가와 민족, 이념의 울타리를 넘어 우리만의 독자적 이론을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현대사연구원은 남북한 현대사 연구에만 치중했던 종래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인간성(humanity)에 기초해 국제사, 인류사, 문명사의 넓은 시각으로 역사 흐름을 조망한다는 방향성을 설정한 바 있다. 앞으로 학내외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역사 연구 방법과 연구원 운영 방침 등을 수립할 계획이다.
이인호 이사장은 "그동안의 역사 연구와 교육은 기초적인 자료 조사ㆍ분석보다 한쪽에 치우친 이론을 배우는 수준이었다"면서 "역사를 인류사적ㆍ문화사적으로 접근하고, 역사적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알리고자 하는 한국현대사연구원의 설립은 매우 반가운 일"이라고 격려했다.
"신탁통치에 의해 한국의 자생적 자치단체 활동 좌절"
발제를 맡은 이정식 교수는 해방 직후 한국의 사회질서 형성 배경을 먼저 소개했다. 그는 "일본의 패망으로 관(官) 제도가 무너졌지만, 한국인들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지도자를 선출해 새로운 사회질서, 인간관계를 맺어갔다"면서 "이는 당시 한국인들이 민주주의 경험은 없었지만 자치 경험이 많았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그 근거로 이정식 교수는 1934년 조선총독부 경무국이 발간한 <최근에 있어서 조선 치안 상황>의 자료를 제시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청년, 여성, 농민, 노동단체 등 사회-정치단체가 1920년 296개에서 1930년 3,941개로 급증했다. 일제하에서 자생적 자치단체의 활동이 활발했다는 증거다. 이정식 교수는 "이런 경험은 해방 후 자발적 자치단체 조직의 기반이 됐다"면서, 그럼에도 자생적 자치단체가 왜 시민사회, 비정부기구(NGO)로 연결되지 못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 이유에 대해 이정식 교수는 "미-소의 신탁통치 방침에 따라 미군정이 한국의 민간자치단체들을 탄압하면서 자발적 자치단체의 출현이 좌절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해방 후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여운형(1886~1947)을 중심으로 국내 최초의 건국준비단체인 건국준비위원회(이하 건준)를 조직했다. 건준의 목적은 완전한 독립국 건설, 민주주의적 정권 수립이었다. 그러나 좌익진보세력이 득세하자 민족주의계 인사들이 건준을 탈퇴했다. 이로써 건준은 와해됐고, 조선인민공화국으로 재편됐다. 이정식 교수는 "건준은 자생적 민주주의 단체들의 집합체로서 한국 역사에서 가져보지 못한 담론기관의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 뒤, "좌우 대립이 담론의 기회를 앗아갔다"고 밝혔다.
결국 신탁통치 입장을 유지하고 있던 미국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고, 미군정과 조선인민공화국은 갈등을 겪게 됐다. 이정식 교수는 "이 과정에서 조선인민공화국뿐 아니라 지방 조직으로 출발한 인민위원회 등 모든 민간자치단체가 미군정의 탄압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역사 자료 확보가 시급한 과제"
발제에 이어 한국사 연구 방법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됐다. 토론자들은 역사 연구에 앞서, 역사 왜곡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권기붕 대학원장은 "지난 30년 동안 수정주의자들에 의해 왜곡된 역사가 많다"고 지적하고, 사실에 더 투철할 것을 요구했다. 이선민 기자는 "역사를 지나치게 이념적으로 접근해 상대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면서 "그 결과 큰 틀에서 역사를 바라보지 못하는 폐단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잘못 알려진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한국 현대사를 연구해달라"고 주문했다.
한국 현대사의 왜곡 원인에 대해, 토론자들은 역사 자료 부족을 지적하고, 올바른 한국사 정립을 위해서는 자료 확보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정식 교수는 "더 많은 자료를 수집해 객관적인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여운형 암살사건을 언급했다. 그는 "미군정의 민정 책임자였던 E. A. 존슨의 회고록 <페르 귄트의 모습인 미 제국주의(American Imperialism in the Image of Peer Gynt, 1971)>에는 당시 미군정이 여운형을 민정장관에 임명하려 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밝혔다. 이는 미군정이 우익세력을 견제할 의도를 갖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여운형이 극우파에 의해 살해됐다는 기존 학설과 달리 좌파에 의해 암살당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한국 현대사 연구에 대한 정치계의 참여 요구도 있었다. 이인호 이사장은 "요즘 역사가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고 지적한 뒤, "역사학계와 정치계가 함께 열린 자세로 역사를 연구해줄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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