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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하나에 인생이 듬뿍

2016-08-05 교육

인문학은 일깨움을 이루는 힘이다
“능력보다 내면 응시하는 능력, 타자의 자리에 설 줄 아는 태도가 먼저다”

시각 장애인들이 코끼리를 처음 대하고 만지면서 하는 우화가 있다. 각기 코끼리의 다른 몸체를 만지면서 누구는 다리를 어루만지면서 ‘아, 기둥같이 생겼군’, 또 다른 누구는 꼬리를 잡고 ‘아니야, 뱀처럼 생겼는데’라고 한다. 부분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풍자하는 이야기이다. 물론 시각장애인들에게 모멸감을 주려는 의도는 아니다.

자, 그렇다면 코끼리를 생전 처음 대한, 눈을 온전히 뜬 사람은 어떨까? 전체를 본다고 전체에 대한 이해가 진정 가능해질까?

대상으로 인식하는 존재의 내면에 대한 느낌, 공감이 중요하다
가령 눈이 멀쩡한 철학자가 있다고 하자. 그는 코끼리의 커다란 몸을 보고는 나름 여러 해석을 내릴 것이다. 사실 코끼리가 어디 코만 긴가? 귀도 크고, 상아도 있고, 지르는 소리 또한 얼마나 큰가? 하여간 철학자는 코끼리에 대해 뭔가 그럴싸한 말을 내뱉지 않았을까 싶다. ‘몸집만큼 사고능력도 그만할까?’라든지 아니면 사자가 용맹을 뜻한다면 코끼리는 돌진을 의미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여기 어떤 사람이 또 등장한다. 그는 코끼리가 멀리서 온 것을 알았다. 코끼리는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며 식음을 전폐한다. 고향과 혈육, 벗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흘린다. 이걸 본 이 사람은 함께 눈물을 흘린다. 마침내 그 자신이 코끼리가 된다. 이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이 우화를 이어나간 작가는 그가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한다.

<광장>의 작가 최인훈의 이야기다. 사실 우리는 부분을 넘어서는 전체에 대한 인식을 교육의 목표라고 생각하고 산다. 하지만 최인훈은 그보다 더 깊은 곳을 짚는다. 대상으로 인식하는 존재의 내면에 대한 느낌, 공감, 이런 게 더 중요하다는 일깨움을 그는 불러일으키고 있다. 
 
마음을 잃어버린 사회는 곤경에 빠진 타자에 냉혹해진다
이솝의 우화 <개미와 베짱이>에서 부지런한 개미는 추운 겨울날, 먹을 것을 구하러 온 베짱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 “그때는 노래를 불렀으니 이번에는 춤을 추시려나?”하고 조롱하더니 문을 쾅 닫아버린다. 베짱이는 어두운 들판으로 쓸쓸하게 돌아간다. 그를 기다리는 운명은 과연 무엇일까?

베짱이가 구걸하러 개미의 집 앞에 서 있을 때, 그래서 겨우 용기를 내고 문을 두드리는 순간에 그의 심사에 솟아오르는 그 온갖 생각들, 모멸감, 암담함, 절망이 느껴지는가? 부지런하게 살아왔다는 개미가 보이는 태도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을 수 있는가? 열심히 일하라고 재촉해온 우리 사회의 현실은 이와 얼마나 다를까?

혹시 아까 그 베짱이가 개미의 집 앞에 당도한 것은 오늘 처음이 아니라 어제도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진종일 우두커니 서 있다가 용기를 내지 못하고 어느새 해가 기울자 그대로 돌아갔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상상을 해보는 마음을 잃어버린 사회는 곤경에 빠진 타자에 대해 냉혹해진다. ‘다 네 탓이야’라면서 멸시한다.

인생에 대한 지혜·가치에 대한 각성이 없으면 그 삶은 추락할 것
하늘로 올라가는 길을 찾던 줄무늬 애벌레는 벌레들의 탑을 기어 올라간다. 무수한 벌레들이 서로를 밟고 높은 곳으로 오르려고 사력을 다한다. 이때 하나의 원칙이 있다. 오르다가 마주치는 애벌레들의 눈을 보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정들면 짓밟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그런데 줄무늬 애벌레는 중도에 놀라운 일을 경험한다. 나비 한 마리가 하늘을 향해 춤추듯 사뿐히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비밀은 고치에 있었다. 그 안에 있는 동안 애벌레는 성숙해지고 날개가 생겨나고 드디어 고치에서 벗어나 하늘과 만난다.

트리나 폴러스의 동화 <꽃들에게 희망을>의 깨우침이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나비를 태어나게 하는 것이 정작 하늘로 날아오르는 진정한 길이다. 고치는 이 과정을 위해 준비된 시간과 공간, 기다림과 자라남의 모태이다. 인문학은 바로 이런 일깨움을 이루는 힘이다.

제아무리 능력을 길러 세상에서 승승장구한다고 해도, 인생에 대한 지혜와 가치에 대한 각성이 없으면 어느 때엔가 그 삶은 추락하거나 가다가 어디에선가 실종된다.

마음이 아름답지 못한 사람과 함께 어울리고 싶어 하는 이는 없다. 다른 이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냉대하는 이를 존경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남을 짓밟고 높은 곳에 올라서서 떵떵거리고자 하는 이를 부러워하는 사회는 이미 죽은 사회이다.

능력을 우선하는 교육에 매달렸다가 마음이 거칠어진 자식에게 상처를 받는 부모가 수두룩하다. 출세를 최고로 아는 사회는 그렇게 출세한 자들이 저지르는 부패와 비리로 멍이 든다. 인간이 먼저 되지 못한 자들이 상사가 되어 부하직원들을 함부로 대하고 능멸하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하도 괴롭힘을 당해 자살하는 이들도 생겨난다.

우린 어떤 삶을 갈망하는가? 어떤 사회를 바라는가?

무엇이 먼저일까? 아름다운 마음, 체온이 있는 생각, 자기 내면을 응시할 줄 아는 능력, 타자의 자리에 설 줄 아는 태도, 이런 것들로 길러진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과 훈련해야 할 능력이 무엇인지 저절로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자신을 몰두시키는 열정을 인생 전체에 걸쳐 끊임없이 뿜어내게 될 것이다. 언제나 빛나는 청춘이다.
 

김민웅(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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