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뉴스
하벨의 정치철학과 한국의 시민사회
‘힘없는 자의 힘’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벨의 정치철학은 어떻게 ‘촛불’과 만나는가.
박영신 지음 | 2017년 7월 28일 출간
134mm*215mm | 54쪽 | 무선 | 10,000원
ISBN 978-89-8222-568-0
벨벳혁명과 ‘촛불’
경희대학교는 오는 9월 21일부터 22일까지 Peace BAR Festival 2017 ‘전환의 시대: 촛불과 평화의 미래’를 개최한다. 행사 첫날 열리는 원탁회의에서는 ‘벨벳과 촛불 이후: 자유, 시민, 미래’를 주제로 ‘촛불’의 역사적 의미를 성찰하면서 전환 문명에 필요한 시민사회의 역할을 논의할 예정이다.
촛불은 무엇보다 기성 정치의 틀을 넘어서려는 시민 의식의 분출이었다. 기성 정치의 모순과 한계를 명백히 드러내며 깨어 있는 시민 의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체코 벨벳혁명을 주도한 바츨라프 하벨(전 체코 대통령, 1936~2011)의 표현을 따른다면, 거짓 안에서의 삶을 거부하고 진리 안에서의 삶을 실천한 것이었다.
하벨은 ‘힘없는 자의 힘’이란 에세이에서 사회주의국가의 어느 식품점 관리인을 예로 들며 거짓된 삶을 보여준다. 관리인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적힌 포스터를 진열대 유리창에 붙여놓는다. 그 슬로건을 지지하지도 않으면서 단지 타율에 의해, 자신의 생계를 위해 포스터를 내거는 행위. 하벨은 이러한 삶이 거짓 안에서 사는 삶이라고 논하며 진리 안에서의 삶을 주장한다. 억압에 순응하는 자기기만에서 벗어나 자유와 민주를 외친 양심이 벨벳혁명이었다.
Peace BAR Festival 2017 원탁회의에 패널로 참석하는 박영신 연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의 하벨 관련 강연이 책으로 나왔다. 경희대 미원렉처의 강연을 엮은 『하벨의 정치철학과 한국의 시민사회』는 하벨의 실천 도덕으로서의 정치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심도 있게 전한다.
진리와 초월의 도덕 정치
먹고사는 문제를 인생의 유일한 목표로 여기는 유권자들. 이런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 먹고사는 문제만 제기하는 정치인들.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악순환 속에서 정치발전은 요원하기만 하다. 하벨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거짓 안에서 살고 있다.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 계산하는 삶, 오로지 자신의 권력만 계산하는 삶은 거짓된 삶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우리는 진리 안에서 살아야 한다. 하벨이 이야기하는 진리는 초월과 잇대어진 삶이다. 현실을 넘어 인간, 자연, 지구, 우주의 신비로운 조화를 느낄 때 우리는 타인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진리 안에서 사는 사람은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봉사한다. 이처럼 하벨은 초월에 대한 감수성으로부터 도덕을 이끌어 내면서 그 도덕의 실천을 정치라고 부른다.
물론 하벨의 정치를 실현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시민사회는 생계의 문제를 중심으로 삶의 정치를 내세우기 쉽다. 정치판은 책략과 술수에 능한 책사들로 넘친다. 진리와 초월을 이야기하는 시민이나 정치인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높은 것에 대한 책임을 가진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박영신 교수는 말한다. 정치는 원래 진흙탕이라며 체념만 할 수는 없다. 정치꾼들만 판치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정치라는 무대에 다양한 도덕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하벨의 진리와 초월에 관심을 가진 정치인들이 선거에 당선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치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책임 있는 시민입니다. 시민사회의 구성원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 정치에 대한 관심은 4년마다 오는 잠깐 동안의 선거철 관심, 그것만 가지고서는 안 됩니다. 정치꾼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우리가 꾸준히 관찰해야 합니다.”
이에 따라 시민사회 역시 더 높은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시민사회가 나서서 진흙탕의 정치판을 바꿔야 한다. 책략의 정치라는 지평에 진리와 초월의 도덕 정치라는 지평이 교차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하벨의 정치철학과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박영신 교수는 동유럽의 현대사 속에서 하벨의 생애를 조명한다. 또한 후기 전체주의를 비판하고 진리와 초월, 도덕을 역설하는 그의 정치철학을 상세히 다룬다. 그러면서 진리와 초월을 중시하는 체코의 문화전통 속에 하벨의 사상을 위치시킨다. 마지막으로 박영신 교수는 우리나라 시민의 전통을 논하면서 하벨의 정치철학이 오늘날 시민사회에 갖는 함의를 강조한다. 일찌감치 하벨을 국내에 소개한 원로 학자의 폭넓은 논의 속에서 진실한 삶에 대한 통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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