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뉴스

제목

반철학 입문

2018-01-05조회수 3021
작성자
보리스 그로이스 지음

반철학을 통한 철학의 자아 성찰



보리스 그로이스 지음 | 서광열 옮김
152×224 | 296쪽 | 무선 | 18,000원
2018년 1월 5일 출간
ISBN 978-89-8222-571-0






세상에는 참된 이치, 즉 진리가 넘쳐흐른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진리를 마주할 수 있다. 철학은 이들 진리를 비판한다. 진리들이 과연 옳은지 시험한다. 그러고는 그 결과에 따라 진리들을 긍정하거나 배척한다. 이런 태도는 수동적이다. 철학은 자신에게 주어진 진리들을 요모조모 따지는 사색에만 몰두한다.

그러나 진리는 비판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는 진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곧장 써먹을 수도 있다. 평가하지 않고 실천할 수 있다. 여기서 하나의 새로운 입장, 반철학이 등장한다. 반철학은 진리를 비판하지 말고 진리를 실행하라고 명령한다. 이에 따라 비판의 원천인 철학은 폐지된다. 반철학은 세계를 설명하지 말고 세계를 변화시키라고 명령한다. 세계가 변화되어야만 세계의 진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반철학은 진리의 실천으로 세계를 바꾸기 위해 다양한 근대적 명령을 내린다.

보리스 그로이스의 저서 『반철학 입문』은 키르케고르부터 맥루한에 이르는 반철학자의 계보를 면밀히 추적한다. 사상가별로 하나의 챕터를 할애해 그들의 이론을 파헤치고 시대적 배경과 철학적 논쟁을 곁들인다. 이 책은 반철학에 이르는 진입로는 물론 반철학으로 우회하여 철학에 도착하는 길을 소개한다. 우리에게 낯선 러시아 종교철학도 선보인다. 구동독 출신의 철학자 보리스 그로이스가 레닌그라드대학에서 공부한 경험이 책에 녹아들어 있다. 그는 예술에도 조예가 깊어 근대 예술의 본질을 논하면서 반철학적 입장을 풀어낸다.

키르케고르는 주체의 진정한 자유를 위해 끝없이 의심하라고 명령한다. 그에 의하면 철학이 얻은 자유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이성의 논리로 외부 세계에서 해방됐지만 이성이라는 내부 세계에 예속됐기 때문이다. 이성의 속박에서도 벗어나 완전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이성이 자명하다고 판단한 모든 것을 끝없이 의심해야 한다.

철학은 삶이 잘 풀리지 않는 이에게서 나온다. 러시아 철학자 레프 셰스토프의 주장이다. 니체는 병에 시달린 나머지 운명애를 보편적 진리로 내세웠다. 그리고 운명애를 통해 자신도 구원했다. 반면 건강하고 행복하다고 자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철학은 불필요하다. 불행한 사람이 쓸데없는 철학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셰스토프는 이성과 자연법칙에 경도되어 불행을 극복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그러면서 이성과 자연법칙을 수용하지 않는 종교적 인간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자연을 넘어서는 신의 의지로 불행은 극복 가능하고 인간은 이로써 구원을 받는다.

데리다는 철학의 계시적 어조를 논박한다. 철학은 직관과 계시를 적으로 삼지만 자신 또한 빛과 탈은폐에 호소하면서 계시적 담론에 빠지고 만다. 데리다에 따르면 철학의 계시적 담론은 진리를 드러낼 수 없다. 빛을 따라가면 길을 잃거나 빛의 근원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에게 진리에 대한 모든 요구는 잘못된 것이다. 핵전쟁을 경고하는 계시적 담론 역시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독일의 유대계 철학자 테오도어 레싱은 보편적 인간성을 추구하는 유대인에게 격분했다. 니체의 영향을 받은 레싱은 보편성이 정신의 산물인 학문과 도덕 속에서 구현된다고 보았다. 생명이 없는 추상인 학문과 도덕은 인간에게 행복과 평화를 줄 수 없다. 만일 추상이 사람들에게서 고향 땅을 빼앗으면 오히려 삶을 파괴한다. 레싱은 정신에 대한 충직함을 버리고 본래적인 고향 땅으로 되돌아갈 것을 유대인에게 명령한다.

철학은 현실에 없는 진리를 기다린다. 철학은 알려지지 않은 것을 진리로 간주한다. 완전히 새로운 진리를 생산한다. 반면 신학에게 진리는 이미 알려져 있다. 다만 진리는 망각에 의해 위협받는다. 따라서 신학이 해야 할 일은 진리의 생산이 아니라 재생산이다. 벤야민은 철학과 신학에서 신학의 편을 든다. 그에게 진리는 눈앞에 있다. 오직 망각에서 진리를 지켜내는 것이 관건이다. 이 문제는 근대에서 해결된다. 근대는 모든 것을 대량으로 복제하고 재생산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미 알려진 진리가 재생산을 통해 유지되는 시대에 철학은 종말을 고한다.

이처럼 기술 복제 시대인 근대에서 독일 작가 에른스트 윙거는 주체의 불멸을 목도한다. 근대 기술은 모든 것을 대량생산 방식으로 표준화한다.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표준화된 노동자가 된다. 이제 개인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표준화된 노동자 대중이 차지한다. 개인이 없으니 개인의 인권과 자유도 무의미하다. 표준화된 주체는 언제나 재생산될 수 있다. 근대의 주체는 불멸을 획득한다.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철학자 알렉상드르 코제브는 근대국가의 탄생과 함께 역사는 종말을 고했다고 주장한다. 인정을 받기 위한 투쟁은 인류 역사의 동인이다. 인정 욕구가 민주적 근대국가에 의해 완전히 충족되면서 역사는 종말을 맞이한다. 역사 이후의 세계에서 모든 것은 완전히 투명해지기 때문에 철학도 종말을 고한다. 이제 철학자는 지혜와 하나가 되면서 현인이 된다. 그리고 지식에 대한 현인의 기억이 상실되면서 책이 자리를 잡는다. 진리의 가능성은 진리를 완성한 헤겔의 『정신현상학』이라는 책을 반복하고 재생산하는 것에 놓여 있다.

근대 예술은 보통 자신의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다. 아방가르드처럼 기성을 부정하고 혁신을 표현하면서 동시대를 넘어선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근대 예술을 미래에 귀속시킨다. 근대 예술은 다가오는 것의 탄생을 향해 열려 있다. 미래를 예측하고 미래를 향한 길을 건설한다. 근대 예술은 다가올 존재의 진리를 드러내고 수립한다. 근대 예술은 철학적으로 비판될 수 없다. 존재하는 것에 관여하는 철학적 비판은 다가올 진리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이데거는 철학적 비판을 거부하면서 근대 예술을 정당화한다.

또한 근대 예술은 예술가와 대중의 분리를 극복하기 위해 대중이 참여하는 예술을 기획하기도 했다. 참여 예술의 모범을 제시했던 리하르트 바그너는 모든 예술 장르를 결합한 종합예술로 예술가들의 통일은 물론 예술가와 민중을 통일을 의도했다. 아방가르드는 많은 실천 영역에서 예술가의 개인성과 권위를 해체하며 관객을 예술에 참여시켰다. 이러한 예술적 실천은 인터넷에서의 예술 전시를 통해서도 구현된다. 인터넷은 예술 전시를 통해 대중을 한자리에 모은다. 맥루한의 표현을 빌리면 인터넷은 뜨거운 미디어에서 차가운 미디어로 전환된다.

철학에 따르면 그림은 진리를 파악하는 데 부적당하다. 숨어 있는 원형에 도달하지 못한 채 외관만을 모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의 작가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은 철학적 논증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그림을 저평가한다. 그림은 인간의 행위를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불완전할 뿐이다. 행위의 묘사는 언어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레싱에게 아름다운 그림은 행위를 묘사하고 싶은 언어적 욕구를 철저히 억압한 그림이다. 이와 유사하게 근대 회화는 모든 신체와 사물을 그림의 표면에서 제거한다. 그러나 미국의 예술 비평가인 클레먼트 그린버그는 반론을 제기한다. 언어적 욕구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그림은 그 물질적 성질인 평면성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큐비즘은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충실했으며 맥루한은 큐비즘을 좇아 미디어는 메시지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메이예르, 바흐친, 불가코프 같은 러시아 지식인들은 스탈린 체제를 니체의 이원론으로 해석했다. 이 체제는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두 측면으로 이뤄져 있다. 공산주의의 냉혹한 의지가 아폴론이라면 디오니소스는 예술적 충동이며 지식인은 디오니소스에 속한다. 아폴론은 디오니소스를 억압한다. 이들 지식인도 정권의 탄압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저항을 통해 노예도덕에 빠지지 않는다. 삶의 피할 수 없는 비극 속에서 기꺼이 성스러운 희생을 실천한다.

『반철학 입문』은 이처럼 다양한 반철학의 변주곡을 들려준다. 반철학의 변주곡을 듣다 보면 철학은 물론 예술과 문학의 선율이 흘러나오며 다소 낯선 러시아 사상가들의 목소리도 울려 퍼진다. 그리고 반철학자의 부분적 모순과 한계에 대한 저자의 날카로운 지적은 앙코르 공연이다. 반철학의 변주곡 속에서 학문의 제왕인 철학은 호된 시련을 겪는다. 하지만 반철학을 하나의 철학 분파로 볼 수 있다면 철학의 시련은 가혹한 자아 성찰일 것이다.


지은이

보리스 그로이스 Boris Groys
보리스 그로이스는 철학자이자 예술 비평가다. 1947년 동베를린에서 태어나 1965년 소련의 레닌그라드대학에서 철학과 수학을 공부한 후 소련에 정착한다. 1981년 서독으로 이주하면서 이른바 ‘서방 생활’을 시작했으며 미국 여러 대학에서 방문 연구를 했다. 1992년에 뮌스터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94년부터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학에서 미디어 철학 및 예술 이론 전공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9년에 뉴욕으로 이주했다. 현재 뉴욕대학 러시아 및 슬라브 연구 글로벌 석좌교수다.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미학적 기획과 스탈린의 정치적 기획 사이의 내적 연관성을 통찰한 첫 저서 『스탈린의 종합예술』을 통해 동시대의 가장 논쟁적인 사상가로 떠올랐다. 그 후로도 『아트 파워』, 『형식이 된 역사: 모스크바 개념주의』 등 현대 예술 및 미디어에 관한 흥미로운 이론적 성찰들을 잇달아 내놓았다. 보리스 그로이스는 2011년 제54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러시아관의 책임 큐레이터로 활약하는 등 예술 현장에서도 활동했다. 2012년에는 ‘역사 이후: 사진작가로서의 알렉상드르 코제브’라는 전시 프로젝트로 광주비엔날레에도 참여했다.


옮긴이

서광열
경희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였으며 ‘니체의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와 역서로는 『한권으로 읽는 철학사』, 『LEET 추리논증』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독일 낭만주의 문학과 사상에서 나타난 ‘밤’의 상징적 의미’, ‘니체의 사유에 있어서 ‘꿈’의 역할과 의미에 관한 연구’, ‘디오니소스적 세계관과 공동체의 가능성’ 등이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 철학과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강의를 하며, BK21 Plus ‘동서양 과학문화에 대한 철학적 성찰’팀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차례

서문
쇠렌 키르케고르
레프 셰스토프
마르틴 하이데거
자크 데리다
발터 벤야민
테오도어 레싱
에른스트 윙거
알렉상드르 코제브
프리드리히 니체, 미하일 바흐친, 미하일 불가코프
리하르트 바그너, 마셜 맥루한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클레먼트 그린버그, 마셜 맥루한
옮긴이 후기

파일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