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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대혼돈

2020-12-09조회수 2701
작성자
슬라보예 지젝 지음 | 강우성 옮김


“생존이 걸린 위험한 항해에 우리는 이제 막 나섰다”
슬라보예 지젝이 파악한 '천하대혼돈'의 실상


원저 없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출간
전 지구적 이슈에 관한 전방위적 고찰, 그리고 대안


슬라보예 지젝 지음 | 강우성 옮김
140*210 | 256쪽 | 무선 | 15,000원
2020년 12월 10일
ISBN 978-89-8222-669-4 (03300)




모두가 인류의 위기를 말한다. 또 누군가는 현대 문명의 종말을 예언한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위기의 정확한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 제4차산업혁명 같은 단어는 이미 위험성이 제거된 관용구가 되어버렸고,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도 인류가 비상사태에 돌입했다는 사실을 애써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현재 마주한 위기는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고 다면적인 원인에서 비롯했기에 해결책은 고사하고 그 실상을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다. 《천하대혼돈》은 오늘 인류가 마주한 전 지구적인 혼란의 양상을 풀어낸 슬라보예 지젝의 칼럼집이며, 원저 없이 한국에서 처음 출간되는 지젝의 신작이다. 대여섯 쪽으로 이뤄진 서로 다른 주제의 글들이지만, 조각을 맞추어 퍼즐을 완성하듯 세계의 여러 양상을 연결해 위기의 전체상을 그려낸다. 각 글은 지젝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과 날 선 통찰을 품고 있으며, 마치 창문을 깨고 날아드는 벽돌처럼 우리를 깨우고 당장의 변화를 촉구한다.

《천하대혼돈》에서 다루는 주제는 현대정치와 문화 현상 가운데 이민, 반유대주의, 미국과 유럽의 정치 현안, 중국 문제, 기후 위기, 사회주의 등 지구촌 이슈를 총망라한다. 1부에서는 평화적 공존이라는 미명 아래 ‘자본’이라는 실재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허용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의 허위에 관해, 2부에서는 각종 허위 대립을 일으켜 현대정치를 혼란하게 하는 포퓰리즘이라는 유령을, 3부에서는 정치구조는 물론 무의식 세계까지 파고들기 시작한 ‘디지털 정치학’을, 4부에서는 문화와 권력이라는 불가분의 관계와 인간 심리의 심층을 다루며, 5부에서는 대혼돈을 넘어설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한다. 글의 작성 시점은 2018년도 하반기에 집중되어 있지만, 거대한 변화 속 현 상황을 진단하는 지젝의 성찰의 지도를 파악하고 그의 지적 성실성을 엿보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세계정세, 민주적 사회주의, 포퓰리즘, 인종차별, 문화 권력, 디지털 정치, 기후 위기…
전 지구적 사안을 철학적으로 사유하고 근본적 변화를 일으키는 행동을 촉구하다

지젝은 우리 시대의 숱한 논쟁에 개입해 자기주장을 거침없이 내놓는 논쟁적 인물이다. 그가 펼치는 비판은 이념의 좌우를 가리지 않고 때로 ‘상식’도 거스르며 분야를 넘나든다. 그래서 논란에 휩싸이기도 하고 자주 구설에도 오르내린다. 하지만 그는 한때의 위로나 미봉책을 제시하는 철학자가 아니다. 지젝은 묻는다. 과연 이 위기의 정체는 무엇이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젝의 정치학은 국가간 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해체이다. 지난 세대까지 세계를 지탱해온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는 지향점은 현재에 이르러 힘을 잃었다. 권위주의를 전복하고 자유 민주주의 수호라는 목표를 이룬 여러 저항이 마주한 것은 되풀이되는 실업, 가난, 사회 부패 등 자본의 실재였다. 위기의 근원은 우리 체제 자체에 내재하기에 현재 나타나는 좌파의 저항 정치학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는 현존하는 시스템을 보완하는 것으로는 인류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의회 민주주의로는 이 위기를 돌파할 수 없고, 단순히 한 정치 정당이 더 많은 투표를 얻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게다가 전 지구적 자본주의와 그 정치경제학은 구조적으로 급진적 정치의 가능성을 봉쇄하고, 기후 위기론을 경제 논리로 바꾸는 식의 환상을 재생산하며 트럼프와 같은 포퓰리즘의 망령을 불러낸다. 지구가열에서 난민에 이르기까지, 디지털화한 통제에서 유전공학적 조작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당면한 도전은 전 지구적 재조직화를 요청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젝이 레닌의 오래된 질문으로 돌아가, 무엇을 할 것인가 다시 묻고, 천하대혼돈은 곧 기회라고 본 마오쩌둥의 오래된 지혜를 되새기며, 자본주의국가의 철폐를 꿈꾼 마르크스의 슬로건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이러한 지젝의 지향점은 개인의 욕망부터 체제 변환에 이르는 총체적 대안의 정치학을 프로그램하고 다양한 저항 세력을 아우를 정치 지도자에 대한 요청으로 구체화한다. 문제는 대중의 눈먼 욕망이 아니라 경험의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정치력의 창조 여부다.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5부 ‘대혼돈을 넘어’에서 지젝은 정치의 대혼돈이 어떤 방식으로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불러올 수 있는지 탐색한다.

인류의 생존을 위한 근본적인 변화는 우리 삶이 평소처럼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과 우리 내면조차 바꿔야 한다는 점을 인정할 때만 가능하다. 지젝은 이러한 상황에서 《천하대혼돈》을 통해 우리가 선 자리를 먼저 되짚는 통찰을 제공한다. 그리고 다시 좌파 진영부터 또 다른 반기득권 전선을 체계적으로 조직하여 혼돈을 헤쳐나가기를 촉구한다. 천하대란, 형세대호(천하가 대혼란이지만, 기운은 상서롭다)! 이 천하를 휘감은 대혼돈은 새로운 질서 출현의 조짐일 뿐이다.

* 《천하대혼돈》은 이택광 경희대학교 교수가 직접 슬라보예 지젝에게 제안해 원저 없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출간되는 책이다. 유수한 매체에 게재된 지젝의 칼럼과 새롭게 작성된 글 등을 갈무리해 펴냈다.


차례

추천의 글 이택광/ 천하대혼돈을 뚫고 가는 정치

1부 새로운 세계 질서
진짜 신세계에 잘 오셨습니다
반(역)성을 촉구하는 긴급한 호소
민주적 사회주의와 그 불만
유럽연합에 독자적 군대가 필요한가?
트럼프와 유럽이라는 이념

2부 현대정치와 포퓰리즘
맞아요, 인종차별은 여전합니다!
진짜 반유대주의자와 그 시온주의적 협력자
지붕이 새면 어떻게 해야 하나?
보스니아의 진짜 기적
우파 포퓰리즘을 향한 좌파의 응답

3부 디지털 정치학
가짜 뉴스에서 거짓 선전까지
대중에게 나쁜 소식을 알릴 권리
빨갱이가 되느니 죽음을 달라!
아케론강을 솟구치게 하리라
디지털 공유재의 운명 : 트로츠키적 관점
부자유가 자유로 통할 때

4부 문화와 권력
그렇지, 문제는 정말 권력이야!
콘센티콘의 신세계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왕실 결혼에 숨겨진 해방적 맥락
섹스봇 논란
삶의 규제와 자유 체험의 환상
행복이라고? 됐거든!

5부 대혼돈을 넘어
현재의 폭염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레타와 버니는 어디에 있나?
중국은 공산주의인가 자본주의인가?
사라지는 마르크스주의 학생들
천하대란, 형세대호(天下大亂, 形勢大好)
모든 투쟁을 아우를 수 있을까?

옮긴이 해설 강우성/ 보편주의 정치학을 위하여


지은이_슬라보예 지젝
현대철학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자,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상가로 꼽힌다.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서 태어나 류블랴나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 파리제8대학교에서 정신분석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컬럼비아대학교, 프린스턴대학교, 파리제8대학교, 런던대학교 등 세계 주요 대학교에서 강의했고, 경희대학교 석학교수 Eminent Scholar로 재직 중에 3,500여 명의 청중이 참여한 ‘경희대 석학초청특강’에서 강연하기도 했다.

지젝은 급진적 정치이론, 정신분석학, 현대철학에서의 독창적인 통찰을 바탕으로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 대중문화를 자유롭게 꿰어내며 전방위적 지평의 사유를 전개하는 독보적인 철학자다. 강렬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존재감과 그와 대비되는 독특한 유머 감각 때문에 언론에서는 그를 ‘문화이론의 엘비스 프레슬리’ ‘지적인 록스타’라고 부르기도 한다. 스스로는 ‘정통 라캉주의적 스탈린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 ‘공산주의자’라고 칭하며, 여전히 ‘혁명’의 불씨를 품고 그 현실화를 위해 노력한다.

첫 책인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을 시작으로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용기의 정치학》 《팬데믹 패닉》 등을 펴냈으며, 실천적 이론가로서 왕성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옮긴이_강우성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미국 뉴욕주립대학교에서 미국문학과 해체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문학, 비평이론, 비교문학, 영화를 연구하고 가르친다. 비평이론의 정치성과 주체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 쓴 책으로는 《불안은 우리를 삶으로 이끈다》 《미술은 철학의 눈이다》(공저), 옮긴 책으로는 《팬데믹 패닉》 《어리석음》 《이론 이후 삶》(공역) 등이 있다.


추천의 글_이택광 (경희대학교 교수, 문화비평가)
“천하대혼돈을 뚫고 가는 정치”
질서와 안정은 정치의 소멸을, 대혼돈은 정치의 출현을 의미한다. 지젝은 트럼프의 출현이 미국의 위기에서 기인한 것이고, 이 위기는 정치의 귀환을 불러올 것이라고 예견했던 것이다. 2020년 미국의 대선은 이런 예견에서 크게 벗어나 보이지 않는다. …이 책에서 지젝이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정치의 귀환이자 또한 정치적 주체의 호명이다.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5부 ‘대혼돈을 넘어’에서 지젝은 정치의 대혼돈이 어떤 방식으로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불러올 수 있는지 탐색한다. 그 정치의 도래에서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용기이다. 지젝의 말을 받아서 우리가 행동을 결정할 차례이다.


책 내용

민주적 사회주의와 그 불만_근본적 변화를 꾀할 적절한 때를 기다리기만 한다면 그 시간은 결코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그러나 아무런 환상 없이 수행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가 선거를 통한 게임과 민주적 사회주의 조치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깨닫고 나서 말이다. 생존이 걸린 이 위험한 항해에 우리는 이제 막 발을 디딘 참이다._[31쪽]

유럽연합에 독자적 군대가 필요한가?_예컨대 푸틴은 곧바로 (방어용 보호 장치 덕분에 미국이 러시아와의 핵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트럼프의 주장에 반응한 것일 뿐이라고 덧붙인다. 옳은 이야기다. 하지만 이 말의 의미는 전체 시스템 자체가 광기이며, 일단 시스템에 가담하면 빠져들게 되는 악순환이 바로 그 광기라는 이야기다. 여기 이 사고의 구조는 모든 참가자가 이성적으로 행동하는데, 자신과 정확히 똑같이 생각하는 상대방만 비이성적이라고 상정하는 믿음의 구조와 유사하다._[34쪽]

빨갱이가 되느니 죽음을 달라!_덮어놓고 트럼프를 비난할 일이 아니다. 좌파는 그가 하는 짓을 배워서 똑같이 따라 해야만 한다. 긴급한 상황이라면 우리는 스스럼없이 뻔뻔하게 불가능한 것을 행하고 불문율을 깨뜨려야만 한다. 불행하게도 오늘날의 좌파는 미리부터 겁을 먹고 아무런 급진적 행위를 하지 못한다. 심지어 권력을 쥔 경우에도 늘 걱정으로 세월을 보낸다. “이 일을 하면 세상에서 어떻게 반응할까?_[117쪽]

천하대란, 형세대호_트럼프의 행동에 당혹스럽게 대응하는 일은 그가 미국의 정치적 기성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손상하고 불안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따라서 우리가 내려야 할 결론은 다음과 같다. 맞다, 상황은 위태롭고, 국제적 관계에는 불확실성과 대혼란의 요소가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마오쩌둥의 오래된 전언을 기억해야 한다. 천하대란, 형세대호! 정신을 차리고 좌파 진영에서부터 또 다른 반기득권 전선을 체계적으로 조직하여 혼돈을 헤쳐나가자._[229쪽]

옮긴이 해설_지젝이 펼치는 선명한 정치 비판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때로는 ‘상식’을 거스르는 일도 많아서, 그의 주장에 공감하더라도 쉽사리 동의하기 힘든 일이 잦다. 특히 좌파 지식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지젝은 입바른 소리를 하기는 해도, 너무나 저널리즘적 존재로 각인되고 말았다. 여기에서도 재기발랄함과 톡톡 튀는 사유는 여전하다. 그가 건드리는 주제 역시 현대정치와 문화 현상 가운데 논란거리가 될 만한 것으로 이민자 문제, 반유대주의, 미국과 유럽의 정치 현안, 중국 문제, 기후변화, 사회주의 등 가히 지구촌 이슈를 망라한다. ‘천하대혼돈’이라는 제목도 다양한 전 지구적 문제의 혼란상에 개입하는 지젝의 ‘이슈메이커’적인 면모를 여실히 드러낸다._[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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