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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제자들 그리고 나치

2021-03-18조회수 2008
작성자
리처드 월린 지음, 서영화 옮김


“대사상가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한나 아렌트, 카를 뢰비트, 한스 요나스, 허버트 마르쿠제
유대인 제자들의 대응과 그들이 발전시킨 사상을 통해
논란의 중심에 선 하이데거 사상을 조명한 최초의 책!



리처드 월린 지음 | 서영화 옮김 | 원제: Heidegger’s Children
152×225 | 488쪽 | 무선 | 22,000원
2021년 3월 5일
ISBN 978-89-8222-686-1 (03160)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자 한때 나치에 참여한 하이데거만큼 논란의 중심에 선 사상가도 없을 것이다. 하이데거 철학 자체를 나치즘과 전적으로 무관한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지만, 하이데거 철학은 그의 나치 참여를 배제하고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하이데거, 제자들 그리고 나치』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 하이데거와 유대인 제자들의 관계를 통해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와 사상을 조명한 최초의 책이다. 하이데거의 유대인 제자들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 카를 뢰비트, 한스 요나스, 허버트 마르쿠제에게 하이데거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는 동시에 이들이 하이데거 사상과 어떤 식으로 대결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하이데거의 제자이자 애인이었던 한나 아렌트는 위대한 정치사상가로 명성을 떨쳤다. 카를 뢰히트는 독일의 권위 있는 역사철학자가, 한스 요나스는 최고의 생태철학자가 되었다. 허버트 마르쿠제는 마르크스 이론가이자 신좌파의 대표적 사상가로 이름을 날렸다.

왜 이들은 위대한 사상가이면서도 하이데거의 생각과 독일의 미래를 미리 알아채지 못했을까? 그들의 철학이 하이데거 철학을 반영할까 아니면 거부할까? 홀로코스트 이후 독일의 지적 전통을 어떻게 재평가할 것인가? 하이데거를 연구하는 데 평생을 바친 리처드 월린 교수는 유대인들이 유럽 사회에 완전히 동화된 직후에 가장 큰 재앙을 경험한 아이러니한 상황에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사상과 정치의 관계 및 하이데거 철학의 현대적 의의를 제시한다.


출판사 리뷰

20세기 위대한 철학자이자 한때 나치에 참여한 하이데거 사상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20세기 최고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들뢰즈, 사르트르, 푸코, 데리다, 보드리야르, 라캉 등의 철학자들을 매료시켰으며 독창적인 근대 사상을 자극해 현대 사상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서구 철학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하이데거가 한때 나치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많은 이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나치를 옹호한 그의 행위와 사상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리처드 월린 뉴욕시립대 교수는 하이데거의 네 유대인 제자들이 그의 나치즘에 어떻게 반응했으며, 이후 어떠한 사상적 변화가 일어났는지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하이데거가 나치에 참여한 직접적인 동기와 그의 사상이 갖는 의의와 한계, 그리고 하이데거 사상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를 객관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섬세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각자 독자적 영역을 개척한 하이데거의 제자들이 받은 영향은 하이데거 사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결정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제자들이 펼치는 긴 학문적 여정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하이데거의 사유 방식이 갖는 풍요로움과 한계에 대해서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될 것이다.

스승의 나치 참여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유대인 제자들의 딜레마
하이데거는 1920년대 매력적인 강의로 독일의 젊은 지성인들을 끌어들였다. 제자들은 하이데거와 운명을 같이함으로써 철학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 그의 갑작스러운 나치즘 전향은 제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짧지만 히틀러 정권에 협조한 하이데거의 여파로, 제자들은 하이데거와 함께하면서도 하이데거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철학을 추구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스승의 강력한 그림자를 벗어던지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이들은 하이데거와 동시대인이면서 그의 제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스승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독일의 반유대주의 속에서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경험한, 비범한 재능을 가진 유대인 제자들이 지적 분리로 인한 딜레마를 극복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또한 유럽 사회에 완전히 동화된 유대인으로서,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독일인이라는 인식이 강했기에 그들은 하이데거의 ‘시대 진단’을 상당 부분 공유했다. 이는 제자들이 중요한 사상체계를 발전시키는 데 장애물이 되기도 했다.

-하이데거의 제자이자 애인이었던 한나 아렌트는 20년이나 철학을 포기할 정도로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 그의 사상을 비판했다. 그러나 하이데거와 화해한 후에는 그의 사상을 옹호했으며, 유대인이 아닌 독일인의 입장에서 ‘악의 평범성’ 이론을 전개했다.
-근대 역사의식과 철학의 역사적 측면에서 중요한 사상을 발전시킨 카를 뢰비트는 하이데거의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했으나, 철학사에 대한 그의 접근과 철학적 방법에 대한 이해는 하이데거에게 철저하게 빚지고 있다.
-동화된 다른 유대인 제자들과 달리 한스 요나스는 유대교를 연구한 생태학자로 독자적 영역을 개척했으나, 재난에 대한 대안으로 전제정치를 옹호해 하이데거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렌트, 요나스, 뢰비트가 하이데거 철학의 궤적 안에 어느 정도 머물렀던 반면, 비판적 마르크스와 헤겔의 영향을 받은 마르쿠제는 스승에게서 영향받은 사상을 마르크스주의 틀에 결합했으며, 하이데거 사유의 틀 내에서 근대 산업사회와 과학기술을 비판했다.

독자적 영역을 개척한 유대인 제자들에게 끼친 하이데거 사상의 영향력과 현대적 의의
1930년대 초에 나치를 열성적으로 옹호한 하이데거가 유대인 철학자인 후설의 제자이자, 재능 있는 유대인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아이러니이다. 1933년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이었던 하이데거는 학생들의 나치 혁명 동참을 독려하고, 동료 교수들을 급진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공격했으며, 유대인 제자들과 교수들, 심지어 자신에게 교수직을 마련해준 스승 에드문트 후설까지 배신하며 국가사회주의를 옹호했다. 하이데거와 같은 대사상가가 어떻게 해서 나치라는 야만적인 행위에 동조할 수 있었을까?

현대라는 거대한 기계 속에서 현대인은 한낱 부품에 전락했다고 본 하이데거 사상은 민족 공동체주의적이고, 반자유민주주의적이며, 농촌 지향적이고, 기술 문명에 비판적이었다. 나치가 본색을 드러내기 전 표방했던 구호는 바로 하이데거의 이런 입장과 일치했다. 하이데거는 당시 독일 대학 현실에 대한 불만, 독일의 사회주의화에 대한 우려, 그리고 하이데거 철학의 핵심에 해당하는 근대 기술문명의 극복을 위해 나치 운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근대 기술문명에 대한 혐오는 그를 나치즘으로 이끌었으며, 후일 나치즘을 비판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위기 속에서 극우정당과 새로운 권력자들이 부상하면서 전 세계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맞고 있기에,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과 수용 양상을 파악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 역시 과거 일제 식민지하에서 독재를 겪은 적이 있기에, 이는 단순히 남의 문제가 아닌 우리 문제이기도 하다.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자유주의 경쟁으로 인한 분열, 과학기술 발전으로 인간이 소모품화되는 것을 경고하고 공동체와 자연의 중요성을 강조한 하이데거의 통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차례

제2판 머리말
제1판 머리말
프롤로그: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와 「토트나우베르크」

1장 도입부: 하이데거의 제자들이 지닌 딜레마
유대인 제자로서의 딜레마/하이데거의 몰락/하이데거의 돌파구

2장 독일에 동화된 유대인: 정체성 혼란과 시련
유대인의 정체성/동화된 유대인, 불길한 징후와 뒤늦은 깨달음

3장 한나 아렌트: 히틀러의 평범한 사형집행인에 대한 기능주의적 해석의 위험성
전체주의에 대한 해명/위험한 관계/부정적 공생관계/사랑과 실존/라헬 파른하겐: 파브뉴에서 파리아로/하이데거와의 재회와 화해/히틀러의 평범한 사형집행인/기능주의에 대한 재접근/행위 지향적 이론의 반근대주의적 뿌리/정치적 실존주의

4장 카를 뢰비트: 근대 니힐리즘에 대한 스토아주의적 답변
유럽의 니힐리즘/세계와 인간세계의 구분/철학적 도제 기간/우파 혁명/카를 슈미트를 비판하다/하이데거, 로고스로부터 후퇴하다/뢰비트, 역사로부터 후퇴하다

5장 한스 요나스: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추구한 생철학자
운명으로서의 존재/때 이른 성찰/니힐리즘과 그노시스/과학, 그리고 실존론적 고향 상실/생명의 원칙/기술의 위협과 공포의 발견술/정치적 수호자의 위험성/전제정치의 장점/홀로코스트 이후의 신학/하이데거 되돌아보기

6장 허버트 마르쿠제: 실존론적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좌파 하이데거주의로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구체철학/존재론, 삶, 그리고 노동/마르크스로부터 실러에게로/하이데거, 철학을 배반하다/좌파 하이데거주의

7장 노동이 자유롭게 하리라: 독일적인 ‘방식’의 철학자, 하이데거
보편 개념에 대한 거부감/역사성/게르만적인 ‘세계-내-존재’/논리학과 민족/노동 계급/노동과 본래성/비은폐성으로서의 노동

8장 남은 이야기: 『존재와 시간』, 실패한 걸작인가?
반근대주의와 ‘새로운 삶’/가톨릭과의 단절/현상학과의 만남/프로네시스와 실존/1927년, 불가사의한 해

결론
옮긴이 해설
미주 및 참고문헌
찾아보기


지은이_리처드 월린 Richard Wolin
뉴욕시립대 대학원 역사학과 비교문학 교수. 저서로 『존재의 정치학(The Politics of Being)』, 『하이데거 논쟁(The Heidegger Controversy)』(편저), 『문화 비평의 용어들(The Terms of Cultural Criticism)』 등이 있다. BBC 다큐멘터리 <하이데거: 삶을 위한 디자인(Heidegger: Design for Living)>의 학술 컨설턴트로 활동했으며, <뉴리퍼블릭(The New Republic)>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960년대 서방에서의 마오쩌둥 정치사상의 수용에 관한 그의 연구인 『동방으로부터의 바람(The Wind from the East)』을 2012년 최고의 역사책 중 하나로 선정했다.

옮긴이_서영화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차이와 무의 관계에 대한 연구』로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신대, 서울대에서 철학과 글쓰기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공저로 『아주 오래된 질문들』, 『철학자가 사랑한 그림』, 『철학, 문화를 읽다』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 「초기 하이데거의 현사실성의 해석학」(2019). 「후기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차이에 대한 해석」(2012) 등이 있다.


추천의 글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는 여전히 세계적인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한나 아렌트, 카를 뢰비트, 한스 요나스, 허버트 마르쿠제는 모두 하이데거의 유대인 제자들로서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던 사람들이다. 이 책은 나중에 세계적인 명성을 획득하게 된 네 명의 유대인 제자들이 하이데거와 대결하면서 자신들의 철학을 개척하는 과정과 이들의 철학에 드리우고 있는 하이데거의 그림자를 섬세하게 분석한다. 이들의 사상을 개인사와 시대사와 함께 조명하고 있는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오랜만에 몰입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손에 쥐면 놓기 힘들 정도로 철학서로서는 보기 드물게 흥미진진한 책이다. 이들의 사상과 아울러 독일의 현대 지성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필독을 권한다. 옮긴이의 유려한 번역도 크게 치하하고 싶다.
- 박찬국, 『하이데거는 나치였는가?』 저자, 서울대 철학과 교수

하이데거나 아렌트, 요나스, 마르쿠제 사상의 통찰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실존의 문제, 즉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 사이의 괴리에 대한 실마리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 김필영, 『5분 뚝딱 철학』 저자, 철학 1위 유튜버

이 이야기는 20세기의 충격적인 지적 스캔들이었던 한 독일 현자의 사유와 정치적 실천 사이의 끔찍한 아이러니, 그리고 그로 인해 스승만큼이나 독창적이었던 유대인 제자들이 겪은 극심한 철학적 곤경에 관한 성찰이다. 그들이 모두 현대성에 관한 위대한 사유자였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마지막 인류’의 세기로 불리는 지금, 휴머니즘의 종말에 관한 상기할 만한 지성사적 묵시록을 제공한다.
- 함돈균, 『사물의 철학』 저자, 문학평론가

하이데거는 끊임없이 자신을 깨닫는 삶의 가치를 말한다. 제자들에게 그리고 세상에 “결코 당신에게 주어진 가장 지적인 일을 포기하지 말라”라고 외친다. 언제나 세계가 바라는 것은 부와 속도다. 그러나 부와 속도만을 바란다면 그것에 의해 우리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멈추지 않고 사색한 자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내게 독일은 괴테의 나라였다. ‘나의 괴테’라고 부를 정도로 그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지성을 닮고 싶었지만, 이제 한 명을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나의 하이데거.’
- 김종원, 『하루 한 장 365 인문학 달력』 저자, 15만 부모의 인문교육 멘토

나치의 동조자인 마르틴 하이데거와 그의 유대인 제자들의 관계에 대한 도발적이고 학술적인 연구. 지난 세기의 가장 야심만만한 정치, 사회 사상가들의 지적 진화에 대한 통찰력 있는 초상을 제공한다. 하이데거의 제자들에 대한 그의 논거는 하이데거의 막강한 영향력에 대해 정보에 근거하면서도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다.
- 제임스 라이어슨,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 북 리뷰

하이데거를 대화에 끌어들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대단히 흥미로운 연구를 읽어야 한다.
- 레슬리 체임벌린,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

이 책은 하이데거의 유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하는 동시에 명료한 견해를 담고 있다. 월린은 하이데거의 사유와 홀로코스트 사이의 심오한 관계를 예리하게 파악한다. 뢰비트의 작품에 대한 재조명 및 한스 요나스의 후기 작품에 대한 월린의 해석은 실로 독창적이고 혁신적이다.
- <초이스(Choice)>

이 책은 하이데거 철학의 도덕적·정치적인 약점을 명료하고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 4인에게 끼친 하이데거의 영향력에 대해 매우 유익한 통찰을 제시한다.
- 브라이언 J. 폭스, <메타피직스(Metaphysics)> 리뷰

하이데거와 그의 헌신적인 추종자들이 조심스럽게 형상화한 하이데거 신화─하이데거의 나치즘은 그의 철학과 본질적인 관련이 없는 잠깐의, 이례적인 실수였다는─에 계속해서 균열이 생기고 있다. 월린의 책은 하이데거가 그의 제자들에게 미친 영향력을 이해하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하이데거의 신화에 가해지는 균열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 존 P. 버크, <필로소피(Philosophy)> 리뷰

마르틴 하이데거가 20세기 사상에 기여한 중요한 업적 중 하나가 재능 있는 제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준 것이다. 뛰어난 제자들은 하이데거를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을 거슬러서 그를 해석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1933년, 스승이 자신에게 영원한 불명예를 안겨준 이념(나치 사상)에의 동조와는 완전히 다른 정치사상을 확립할 수 있었다. 월린은 문제가 되는 잔재가 제자들의 영향력 있는 작품 속에 여전히 남아 있음을 도발적이고 단순명쾌한 논리로 보여준다. 많은 이들이 반박하고자 하지만,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책이다.
- 마르틴 제이,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캠퍼스

근대성과 인간의 조건에 대한 논쟁의 핵심을 꿰뚫는 대단히 중요한 책이다. 이 책은 시기적절하며, 오래도록 중요한 책이 될 것이다. 어떤 곳에서는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로 도발적이며, 다른 곳에서는 깊이 있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이 책은 이 분야에 중요한 기여를 하는 것을 넘어서, 그 자체로 새로운 분야라 할 수 있다. 월린은 철학적 판도라의 상자를 명확하게 해명하고 있으며, 그의 해석은 고통스러운 성찰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 마이클 어마스, 다트머스 대학


책 속으로

당시 나는 하이데거가 나치에 참여한 것은 사전에 계획되지 않은 우발적인 일이 아니라, 그 자신이 자칭 일종의 계승자로 서 있는 독일의 지적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고 주장했다. 내가 의도한 것은 이 논의를 ‘하이데 거와 함께 종결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의도한 것은 그의 사유가 갖는 역사-정치적 심층 차원을 해석자들에게 경고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심층 차원은 문화적·언어적 이유들로 인해 명백한 것이었기에, 수많은 독일의 비평가들과 제자들에게 거의 자명하고 논란의 소지가 적은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대서양에서는 하이데거 철학에 대해 비역사적이고 텍스트 내적인 독해가 우세했던 덕분에, 그러한 주장이 논쟁을 초래하고, 어떤 면에서는 환영받지 못했다.
- p. 52

많은 동시대 독일인처럼, 하이데거는 과거 독일이 저지른 죄악을 헤쳐나가려는 진지한 시도를 하지 않았다. 이 점에 있어서 하이데거는 확실히 유대인 ‘제자들’의 임무를 어렵게 만들었다. 그의 제자들 중 몇몇은 그의 명성을 손상시킨, 나치 시대의 치정에 관여한 것을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솔직담백하게 그러한 일들과 단절할 것을 간청했다. 어마어마한 자료에 비해 그리 많지 않은 구절에서, 하이데거는 지조를 굽히고 나치가 촉발시킨 전쟁의 공포에 대해 다룬다. 그런데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회피와 합리화뿐이다. 1940년대 후반 강연에서 하이데거는 무미건조하게 ‘가스실에서의 시체의 제작 과정’을 ‘기계화된 농업’과 동일시한다.
- p. 64

하이데거에게 히틀러는 끈질긴 허무주의의 운명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였다. 동시에 하이데거의 정치적 과오가, 아무리 어처구니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의 거대한 철학적 성취를 어떻게든 실추시킬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대신, 확실한 것은 문제의 진실이 이러한 두 극단 사이 어딘 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유대인 제자들은 각자가 이러한 난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며, 특색 있고 존경할 만한 독일 정신의 계승자인 그가 어떻게 철학과 문화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보이는 정치 운동을 기꺼이 수용할 수 있었는가 하는 난제 말이다.
- pp. 73-74

카프카는 ‘질병’으로서의 문명사회라는 아이디어에 새로운 종말론적 의미를 부여한 바 있다. 카프카는 아버지의 유대인성을 제거하는 일을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경건 행위였다”라고 말했다. 카프카의 이야기들과 소설이 아우르는 많은 의미의 층위에서,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중부 유럽 유대인 의식은 그 방향감각을 심각하게 상실하고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의 유대인이 아니었다. 또한 그들은 자신이 채택한 유럽 고향의 문화에서도 유대인이 아니었다. 중부 유럽의 유대인들은 정체성 위기와 무소속이라고 하는 위험지대에 끼어 있었다.
- p. 97

아렌트는 자신을 좀 더 세련되고 숭고한 정신의 전통, 즉 유럽의 지적 전통과 동일시했다. 그녀는 유럽의 지적 전통을 이끄는 대표자 중 하나인 마르틴 하이데거 밑에서 수학했으며, 그와 사랑에 빠졌었다. 어떤 면에서는 그러한 충성도가 그녀로 하여금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유대인에 대해 그런 비방을 하도록 한 것일 수 있을까? 그러한 발언들은 유대인들을 전멸시키려 했던 정권을 대신해 메스키르히 마법사의 범죄를 용서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어떤 면에서 유대인들이 나치와 다를 바가 없다고 넌지시 암시하면서 말이다.
- p. 153

이러한 비판이 있다고 해서 하이데거 작품을 읽지 말아야 한다고 결론 내리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대신, 그의 작품을 더 이상은 순진한 시각에서 바라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즉 1930년대 초 나치와의 동맹을 용이하게 한 그의 사상과 지적 아비투스의 측면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럼에도 뢰비트의 논거가 보여주듯, 하이데거의 전후 사상조차도 나치에 오염되어 있지 않다고 보기 어렵다. 전쟁이 끝나고 몇 년이 지난 후에도, 하이데거는 계속해서 “국가 사회주의의 내적 진리와 위대함”에 대해 열정적으로 늘어놓았다. 뢰비트의 비판과 논평은 시의적절한 것이었다. 하이데거 학생이자 친밀한 사이였던 그의 성찰은 하이데거 사례의 복잡성을 판단할 수 있는 독특한 관점을 제시한다.
- pp. 215-216

‘기초존재론’의 고질적인 윤리적 결함에 대한 요나스의 날카로운 비판은 이후 하이데거 연구에 뚜렷한 영향을 미쳤다. 비록 드류 대학에서의 학회가 하이데거 지지자들의 행사로 구상되고 진행되었지만, 결국에는 요나스의 도덕적 열변과 인간성이 모임을 장악했다. 그가 연설을 마치자 청중들은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냈으며, 하이데거 지지자들은 반론을 제기했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나치즘에 정면으로 맞설 용기를 갖고, 당시 더욱 논란이 되었던 하이데거의 정치적 잘못을 그의 사유의 결함과 직접 연결하려 노력함으로써, 요나스는 그의 삶과 작품의 특징이 될 흔들림 없는 도덕적 진실성을 보여주었다.
- pp. 226-227

허버트 마르쿠제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이자 신좌파의 지적 선지자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1928년부터 1932년까지 프라이부르크에서 하이데거의 지도로 철학을 공부했고,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그의 성숙한 사상에 미묘하고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남아 있게 된다. 일부 사람들의 추정에 따르면, 심지어 후기에도 마르쿠제는 ‘하이데거적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마르쿠제가 하이데거 개념들을 전유했다는 말은 여기에서 신중하게 기술되어야 한다. 우리가 검토해온 다른 철학자들과 달리, 심지어 젊은 시절에도 마르쿠제는 결코 투 철한 하이데거주의자가 아니었다. 하이데거 사상에 대해 마르쿠제가 보여준 관심은 항상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지속적인 헌신과 균형을 유지했다.
- p. 276

1920년대 후반 하이데거는 독일의 정신적 삶이 점차로 ‘유대인화’되는 것에 격렬히 항의했다. … 하이데거의 사유는 보편적인 것에 비해 특수한 것을 일관되게 가치 있게 여기는 철학적 관점에서 논의를 전개함으로써, 시작부터 중대한 윤리적·정치적 흠결에 노출되었다. 이는 하이데거가 1920년대 초에 구축했던 실존론적 관점이 1933년의 그의 정치적 잘못을 해명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그의 옹호자들이 강조하는 역사적-생물학적 우연성만큼이나 말이다
- p. 340

하이데거는 전쟁을 새로운 독일이 출현할 수 있는 위대한 정화제라고 생각했다. 정신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전장에서의 패배는 되돌릴 수 없는 좌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쟁은 인공적이고 머뭇거리고 필수적이지 않은 모든 독일 문화를 정화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전쟁터에서의 패배는 인위적이고, 불확실하며, 비본질적인 모든 독일 문화를 정화해줄 것이다. 전쟁은 더 깊고 심오한 독일이 출현하기 위한 위대한 산욕이었다. 독일 낭만주의의 프리즘과 전쟁 경험 자체를 통해 재해석된 근본 기독교의 주제는, 죽음과 파괴로부터 ‘새로운 삶’이 탄생한다고 보는 하이데거의 통찰과 맞닿아 있다.
- p. 391

그럼에도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왜 다른 민족이 아닌 유대인이 서구 형이상학적 사유, 곧 제작성의 사유와 태도를 대표하는가?” “오늘날 우리는 하이데거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이데거를 철학사에서 성급하게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것이지 않을까.
- p.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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