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인문학은 ‘비타민’이다”
2018-09-27 교육
권택영 명예교수, 인간의 감정과 의식을 다룬 <생각의 속임수> 출간
인공지능(AI)이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기억의 허구성’ 강조
“인류의 미래 위해 인문학 교육, 폭넓게 진행돼야”
영문학자임에도 자신의 학문 분야를 넘어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자크 라캉(Jacques Lacan),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등 철학과 정신분석 이론을 연구하고 국내에 소개해 온 권택영 명예교수.
나아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융합에도 관심을 기울여 <바이오 휴머니티: 인간과 환경의 경계를 넘어서>를 집필하기도 했던 권 교수가 최근 심리학과 뇌과학을 주제로 책 한 권을 냈다. <생각의 속임수: 인공지능이 따라하지 못할 인문학적 뇌>(글항아리)이다.
효율성 중시한 인공지능(AI), 인간의 뇌 따라갈 수 없어
3년의 집필 기간을 거쳐 출간한 책의 서두에서 권택영 교수는 인간과 동물의 커다란 차이를 언급한다. 습관적 기억뿐인 동물과 달리 인간은 에피소드적 기억, 즉 회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권 교수에 따르면 회상은 의식의 진화, 즉 자의식에 의해 나타난다. 그리고 자의식은 살아가면서 겪는 많은 경험들을 뇌의 ‘전두엽’에 저장한다. 문제는 시간의 흐름을 따르는 ‘의식’과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 ‘저장된 기억’ 사이의 간격이다.
인간이 느끼는 고독, 착각, 후회, 집착, 공감, 그리고 알면서 하지 않는 특성 등은 이러한 뇌의 ‘일원적 이중 구조’ 때문이라는 것이 권 교수의 주장이다. 그의 책에서는 문학과 철학, 심리학, 뇌과학, 대중문화 등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며 ‘기억의 허구성’을 강조한다.
권택영 교수는 책에서 말한 인간의 6가지 특성과 뇌에서 일어나는 기억의 허구가 인류의 문화, 예술을 창조해 온 원동력이었다고 역설한다. 권 교수는 “정확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인공지능(AI)은 감각과 의식의 상호 관련성에 의해 상상력을 지닌 인간의 뇌를 흉내 낼 수 없다”고 강조한다.
뇌의 불균형이 다양한 정신질환 초래한다
뇌는 위치와 진화 순서에 따라 안쪽부터 생명유지 기능을 담당하는 ‘파충류의 뇌(뇌간)’, 감정을 담당하는 ‘포유류의 뇌(변연계)’, 기억하고 판단하는 ‘인간의 뇌(전두엽)’ 세 부분으로 나뉜다.
권 교수는 이중에서도 ‘변연계’에 주목한다. 변연계가 전두엽과 뇌간 사이에서 양쪽을 적절히 중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
하지만 권 교수는 “최근 들어 이 균형이 깨지고 있다. 균형이 무너지게 되면 자폐증과 사이코패스, 우울증, 불면증 등의 정신질환들이 발생한다”고 우려했다.
불균형은 좌뇌와 우뇌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컴퓨터와 인공지능 시대에 들어서면서 공감, 상상력, 독창성을 담당하는 우뇌에 비해 효율성, 정확성, 합리성을 담당하는 좌뇌가 비대칭적으로 발달하고 있는 것이다.
권택영 교수는 “18세기 계몽주의가 전개된 이후로 문명이 논리성과 합리성만을 강조했기 때문에 우뇌 발달이 상대적으로 등한시됐다”면서 “더 늦기 전에 파충류의 뇌와 인간의 뇌, 좌뇌와 우뇌가 균형을 이루기 위한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문학 교육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뇌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권 교수가 제시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인문학 교육’이다. 권 교수는 “인문학이 신체 내에서 물질대사와 생리기능을 조절하는 ‘비타민’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덧붙여 “감각과 의식의 자리다툼을 이해하고, 뇌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학, 잘 짜인 서사, 잘 만든 예술작품 등을 감상하고, 이를 창조하는 인문학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권 교수는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인공지능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는 것을 우려한다”면서 “이미 기계가 균형의 경계를 넘어섰다고 본다. 좌뇌의 면을 갖고 있는 인공지능을 적절히 이용하는 한편, 우뇌의 기능을 키울 수 있는 인문학 교육을 폭넓게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택영 교수 프로필>
경희대학교 명예교수. 1990년대 국내에 포스트모더니즘을 본격적으로 도입해 반향을 일으켰으며, 라캉의 정신분석을 소개하고, 이후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에 대해 연구했다. ‘김환태 평론대상’(1999)을 수상했으며 한국연구재단의 ‘우수학자’(2012~2017)로 선정된 바 있다. 한국현대정신분석학회 회장, 미국소설학회 회장, 한국아메리카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소설을 어떻게 볼 것인가>(문예출판사), <바이오 휴머니티: 인간과 환경의 경계를 넘어서>(집문당), <나보코프의 프로이트 흉내 내기: 과학으로서 예술(Nabokov’s Mimicry of Freud: Art as Science)>(Lexington Books) 등이 있다.
글 한승훈 aidenhan213@khu.ac.kr
사진 정병성 pr@khu.ac.kr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communicatio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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