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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르크시스트가 아니다”

2018-04-25 교육

제이슨 바커 외국어대학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가 소설 <Marx Returns>를 출간했다. 바커 교수는 오는 5월 영국 마르크스기념도서관이 주최하는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콘퍼런스에도 참석한다.

마르크스 전기 기반 소설 <Marx Returns> 출간한 제이슨 바커 교수
인간 삶의 배경 이해할 수 있는 ‘유물론적 사유’ 의미 있어
“현대 사회 속 ‘소외’는 노동의 행복감도 스스로 느끼지 못하게 해”

올해는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 탄생 200주년이다. 전 세계에서 마르크스의 삶과 사상을 기리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의 고향 독일 트리어와 그가 연구를 진행한 영국 맨체스터를 비롯해 유럽 곳곳에서 ‘마르크스’를 다시 호명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의미 있는 ‘기념물’이 나왔다. 제이슨 바커 외국어대학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가 소설 <Marx Returns>를 출간했다. 바커 교수는 오는 5월 영국 마르크스기념도서관이 주최하는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콘퍼런스에도 참석한다. 바커 교수를 만나 소설에 관한 이야기와 마르크스가 현대 사회에 재조명 받는 이유 등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이명호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학부장의 통역으로 진행됐다<편집자 주>.

<Marx Returns>는 마르크스 개인의 삶과 철학자로의 삶을 잇는 교각
Q) 마르크스를 주제로 한 소설은 낯설다. 원래 마르크스를 연구했는지?
박사학위의 주제는 알랭 바디우(Alain Badiou)였고 학문적 관심사는 바디우의 철학을 영미권에 소개하는 일이었다. 2002년에는 영미권에서는 처음으로 바디우에 대한 연구서를 출간했다. 바디우가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마르크스 연구도 진행했다.

Q) <Marx Returns>는 어떤 소설인지 소개를 부탁한다.
2007년부터 진행한 프로젝트이니 거의 10년을 고민했다. 원래는 영화로 만들려고 했던 내용인데 제작비가 많이 들어 포기했다. 2~3년 전 쯤 소설로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Marx Returns>는 마르크스의 전기에 기반한 소설이다. 그가 실현하지 못한 부분과 그의 철학적 고투를 판타지 형식에 담고 싶었다. 그의 일생을 단순하게 쓰기보다 구체적 생활을 상상해서 그동안 없었던 마르크스를 쓰려고 했다. 소설을 통해 철학적, 혁명적 맥락에서 마르크스 개인의 삶과 철학자로서의 삶을 잇는 교각 역할을 하고자 노력했다.

Q) 우리가 모르는 개인적 마르크스라면 어떤 모습인가?
마르크스가 영국 런던의 작은 아파트에 살 때 이야기다. 그 집에는 마르크스와 그의 아내 예니(Jenny)와 하녀 헬레네 데무트(Helene Demuth)가 살았다. 문제는 데무트가 마르크스의 아이를 낳으면서 발생한다. 본처인 예니와의 사이에는 세 명의 아이가 있었다.

아이의 탄생과 함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됐다. 아이의 존재는 비밀에 부쳐졌다. 나는 이 가족의 생활이 어땠을 지를 상상했다. 이 과정에서 귀족 출신인 마르크스의 아내 예니의 성격이 잘 표현된 것 같아 만족스럽다.

마르크스와 데무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나중에 마르크스의 영원한 동지인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의해 노동자 가정의 양자로 보내졌다. 엥겔스는 독신이었는데 아이를 본인의 아이로 꾸며 입양했다.

독자들이 이렇게 개인적인 마르크스의 모습을 보고 즐겁게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철학책이 아니고 읽는 즐거움이 있는 소설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물질적 상황이 우리의 사유 결정해
Q) 지금 우리에게 마르크스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왜 마르크스일까?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우리의 생각이 장소와 물질적 현상과 연관돼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행동문화에 따라 사회를 조직하고 민주주의를 조직했다. 이런 활동의 배경이 경제적 여건이다. 결국 우리가 실제로 어떤 현상 속에서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물질적 상황, 경제적 여건이 우리의 사유와 행동, 우리가 삶을 조직하는 방식을 조건 짓는다. 이 지점이 마르크스 철학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학생들도 그렇지만 우리는 추상적으로 사유하면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우리의 사유와 삶이 어떻게 결합되고 영향 받는지를 생각하는 ‘유물론적 사유’가 중요한 시점이다.

Q) 마르크스가 ‘소외’를 이야기한 지 100년 이상 지났다. 지금 우리는 ‘소외’돼 있는가?
‘소외’는 인간이 스스로의 통제에서 벗어난 상태다. 언제 일하러 갈지, 언제 일을 그만할지를 나 아닌 누군가가 결정한다. 여기서 개인은 불행해진다. 마르크스는 우리가 일을 하고도 불행하다고 이야기한다. 노동의 감옥에 갇혀있거나, 노동의 인질이 된 상황, 이것이 ‘소외’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철학은 좋은 것이지만, 세상을 바꾸기에 좋은 것은 아니다. 마르크시즘은 자본주의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방법론으로서 의미가 있다. 그의 업적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 아니었다. 세상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제이슨 바커 교수는 “지금은 우리의 사유와 삶이 어떻게 결합되고 영향 받는지를 생각하는 ‘유물론적 사유’가 중요한 시점”이라면서 “마르크스 철학에서 이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
Q) 마르크스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런던 마르크스기념도서관이 주최하는 ‘마르크스 200’에 참석한다고 들었다. 어떤 행사이고 어떤 내용을 다룰 예정인가?
영국 런던의 마르크스기념도서관이 기획하는 대규모 콘퍼런스다.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이고, 마르크스의 자료를 많이 갖고 있는 도서관이 아카이브를 만들고 콘퍼런스를 주최했다. 콘퍼런스에서 작가이자 연구자로서 마르크스가 어떤 동기를 갖고 활동 했는지 세계의 연구자들과 함께 살펴보려 한다.

Q) 마르크스는 현 대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학자다. 그가 지금까지 인기(?)를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려운 질문이다. 지금 존재하는 마르크시즘은 하나의 마르크시즘이 아니다.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맥락이 연관돼 있다. 마르크스는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를 상상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의 전범화된 마르크스를 설정하고 그것이 의미가 있다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마르크스가 여전히 중요한 이유는 그가 자신의 생각을 계속 바꾸었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론뿐 아니라 실천에서도 변화하고 발전하는 사람이었다. 사회 자체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사회를 해석하기 위해 이론을 고착시키지 않고 마르크스 자신도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항상 틀릴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배워야 한다.

마르크스가 상식선에서 전유돼 저항의 힘 잃어
Q) 마르크스와 관련해 뉴욕타임즈에 칼럼이 게재된다는 소식도 들었다. 어떤 내용인가?
오는 4월 말 뉴욕타임즈에 칼럼이 실린다. 미국 날짜로 4월 30일이 게재 예정일이다. 철학 섹션에 마르크스 특집이 실리는데 한 부분을 담당했다. 내용은 이렇다.

마르크스 사상이 사회적 상식선에서 전유돼 마르크스가 저항적 힘을 잃어버린 경향이 있다. 마르크스는 우리에게 상식을 받아들이지 말고 상식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질문하라고 요구했다. 우리 모두가 마르크시스트가 되고 마르크스가 상식이 되면 그 저항적 힘이 사라진다.

마르크스는 “나는 마르크시스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유사하게 나는 마르크스를 연구하지만 마르크시스트가 아니다. 나는 독립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그를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유하는 사람이다. 스스로 사유하고 자기 자신의 생각을 가져야 한다.

학생과 함께하는 국제적 지적 공동체가 목표
Q) 경희대에 대한 인상과 학생들에 대한 인상은 어떤지?
경희대가 인간적 교육에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 다른 대학과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학부(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가 뉴미디어와 영상 등을 활용하는 수업을 할 수 있는 개방적인 분위기인데 이 분위기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학생들이 매우 진지하고 열린 자세로 수업에 참여해 인상 깊다. 지적 호기심이 있고 도전적이다. 수동적인 모습도 있지만, 잘 독려해서 수업에 참여시키고 있다. 질문을 많이 던지고 있다.

학생들이 대체로 철학을 이론으로 받아들인다. 철학을 교육할 때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첫 번째는 추상화 방식으로 논리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실천형 방식이다. 친숙한 문화나 사회의 경험을 활용해 가르친다. 철학을 이론이 아니라 쇼핑이나 영화 같은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 마르크스가 철학을 대하는 방식도 이러했다. 그는 경제와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철학을 했다.

Q) 향후 계획은?
도전적으로 세계적 학자들과 연구하고 싶다. 이 과정에 학생들도 연계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외국인 교수로서 연구 실적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 지식 공동체를 만들어 학생들과 협업하고 싶다. 지식인으로서 한국 대학 안에서 여러 역할을 해보려한다.

바커 교수는 학자이자 다큐멘터리의 감독이기도 하다. 지난 2011년에는 ‘마르크스 재장전(Marx Reloaded)’을 발표해 대중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이 다큐는 독일의 ZDF 방송사를 통해 유럽에 방영됐고 2011년 9월 한국에서 열린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초청작으로 상영돼 국내에도 알려졌다.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를 마르크스 이론을 통해 설명한 작품이다.

▶ ‘마르크스 재장전(Marx Reloaded)’ 다큐멘터리 바로보기

바커 교수는 이번에 출간한 <Marx Returns>가 마르크스와 관련된 마지막 작품이라고 말한다. 경희대에 학생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그가 학생들과 함께 펼쳐나갈 ‘학술과 실천의 미래’가 기대된다.

정민재(커뮤니케이션센터, ddubi17@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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