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평화와 문화는 어떻게 동의어가 되었는가?”
2017-12-18 교육
권헌익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평화와 문화’ 주제로 경희대에서 특강
20세기 중·후반 역사 훑으며 다양한 평화론 비교, 문화로서의 평화 강조
“이 땅에 사는 우리들의 책임이 막중하다”
북한이 지난달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올해들어 16번째 장거리 미사일 발사다. 북한의 계속된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고, 국제사회의 우려 또한 높다.
한편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발언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갈등이 정점에 이르고 있다. 전 세계에 평화가 절실하다.
“전쟁의 계보 안에 평화의 역사가 존재한다”
지난 12월 12일 “평화와 문화 ? 냉전 시기에 평화와 문화가 어떻게 동의어가 되었는가?”를 주제로 권헌익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특강이 열렸다. 본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특강에서 권 교수는 교육과 문화 운동에 근거한 평화 기획을 20세기의 몇 가지 다른 평화론들과 비교해 조명했다.
권헌익 영국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칼리지 석좌교수는 냉전 문제를 역사인류학적으로 접근, 냉전사를 글로벌 역사 속에서 조명하는 등 실증적인 현장 연구와 창의적인 이론 연구로 주목받는 세계적인 인류학자다. 2007년 기어츠상(Clifford Geertz Prize), 2009년 조지 카힌상(George McT. Kahin Prize), 2016년 제12회 경암학술상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극장국가 북한>(2012), <또 하나의 냉전>(2010), <학살 그 이후>(2006) 등이 있다.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사회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두 국가’로 북한과 미국을 꼽은 권헌익 교수는 “이들의 힘겨루기가 전 세계 안전을 위협하고, 이들 사이의 전쟁이 너무나 쉽게 언급되고 있다”며 “전쟁의 위기 안에도 평화의 역사가 있다는 것, 전쟁의 계보 안에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운동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특강을 시작했다.
권 교수는 20세기 중·후반기 역사를 시기별로 세 단계로 나누었다. 평등으로서의 평화, 자주로서의 평화, 힘의 균형으로서의 평화가 이어졌지만 그렇다고 이전 시기 평등으로서의 평화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권 교수는 냉전은 자유의 제국과 평등의 제국, 두 모습으로 작동했다면서 “평등의 제국은 계급의 성격을 갖고 있었고, 계급 혁명을 통해서만 영구적 평화를 이룬다는 나름대로의 평화론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전쟁이 필요악이라면 자기방어를 목적으로 한 전쟁만 정당화된다는 인식이 강해졌고, 이 과정에서 한국전쟁이 남침이냐 북침이냐로 갈라지며 문화적 공산주의 운동이 와해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주의 평화 공세의 역사는 아직도 한반도에 영향을 준다고 언급했다.
자주의 평화에 대한 강연이 이어졌다. 권 교수는 “한국전쟁이 휴전상태에 진입하며 또 다른 주목할 만한 평화운동이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회의에서 시작됐다”며 “제3세계의 시작이라고 여겨지는 이 회의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신생독립국들이 연대를 추구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이들은 강대국의 세력권에 들어가지 않고, 즉 자유의 제국, 평등의 제국 어디에도 종속되기를 거부한 비동맹의 동맹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들은 식민주의 청산을 평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내세우며 민족자결, 국가 자주권이 지고의 가치가 될 때 영구적인 평화가 형성될 것이라고 보았다”고 설명했다.
“다름의 평화, 다름의 조화는 여전히 유의미하다”
전쟁이 부재한 의미에서의 평화에 대해 권 교수는 냉전시대 선진국들에게 익숙했던 평화의 개념이 ‘전쟁의 부재’라고 지적하며 이런 평화는 “전쟁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유지되는 평화이기에 소극적이고 어떻게 보면 병리학적 개념인데 지금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는 핵과 같은 ‘밀리터리파워’가 사용될 때 상대방은 물론, 자신까지 절멸하기 때문에 도저히 전쟁을 할 수 없는 의미에서의 평화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권 교수는 “이 같은 평화의 개념이 아직도 한반도에 살아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권헌익 교수의 논의는 문화로서의 평화를 주제로 이어졌다. 권 교수는 “국가는 100% 자기만 생각하기에 전쟁이 일어나지만, 인간은 아무리 개인적이라 하더라도 10%의 사회적 존재를 잃어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전쟁을 하는 국가의 마음을 바꾸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데, 유일하게 이들을 바꿀 수 있는 건 국가를 구성하는 시민들의 마음”이라며 “새로운 시민들이 나타나 국가를 향해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해야 전쟁이 없어진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세계시민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권 교수는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를 문화의 평화를 ‘다름의 평화’로 바라본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다름을 어떻게 전쟁의 요소가 아니라 평화의 수단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마가렛 미드를 비롯한 평화의 문화 프로젝트 주요 멤버들은 유네스코 초기 대표적인 매체인 <유네스코 꾸리에>를 만들었다. 이들은 <유네스코 꾸리에>를 교육운동이라고 생각하며, 이것을 어떻게 전후 미국 혹은 타 지역의 교육기관에서 다름의 존중, 다름의 조화, 다름의 평화라는 대주제로 교육을 실천할 것인가 고민했다.
“어느 한 쪽이 이기거나 지면 안 된다”
이들의 시도를 하루아침에 부숴버린 사건이 한국전쟁이다. 권 교수는 “한국전쟁으로 또 한편 냉전체제가 격화되고 군사화되면서 양극 체제에서 다름의 조화 자체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이렇게 문화운동으로서의 평화는 끊어진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네스코 안에서 이 부분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권 교수는 “한반도처럼 반세기 전 양극화 노선이 아직 진행 중인 곳도 있고, 오직 자신만 생각하며 국제사회의 보편적 합의를 무시하는 크고 작은 국가들의 지나친 자기편애가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다름의 평화, 문화의 평화가 추구하는 이상은 아직 유의미하며, 이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계속 된다”고 말했다.
이어 “하나 확실한 것은 이 싸움에서 이 땅에 사는 우리 책임이 막중하다”며 “한반도 역사가 문화와 평화의 글로벌 역사에 차지하는 자리가 크기 때문이고, 국제사회 보편적 합의를 무시하는 크고 작은 국가들 중 대표적인 두 나라가 이 땅에서 출몰하고 서로 싸움을 걸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싸움에서 둘 중 하나가 이기고 지면 절대 안 된다. 이 싸움에서야말로 문화의 평화가 다른 평화론을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특강을 마무리지었다. 질의응답도 이어졌다.
경희는 학계와 지성사를 선도하는 세계적인 명사를 초대해 인류사회의 더 큰 미래를 모색하는 ‘성찰과 창조’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세계평화의 날 제정을 주도하고, 지구촌 평화 축제인 Peace BAR Festival를 매년 개최하고 있는 경희는 앞으로도 평화로운 미래에 관한 논의를 멈추지 않을 계획이다.
박은지(커뮤니케이션센터, sloweunz@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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