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전환의 시대: 현실, 진실, 대학의 길을 묻다’
2017-12-20 교육
공공대학원, '명사초청 지식나눔세미나' 특강에 조인원 총장 초청
‘우리는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 제기
이 순간 선택, 곧 마주할 현실… ‘미래의 회상’ 통해 지속 가능성 만들어야
“삶의 존엄과 의미를 찾아나서는 일은 우주 내 존재인 인간의 도전적 과업이다. 그 과업을 향한 실존의 성찰을 멈추면 우리는 ‘현실의 환영(幻影)’ ‘작위의 제국(帝國)’에 갇히고 만다. 삶의 모든 국면이 지구적·문명사적 전환의 소요를 겪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 것인가?”
지난 12월 12일(화) ‘공공대학원 명사초청 지식나눔세미나’ 강연자로 초청된 조인원 총장은 <내 안의 미래>(한길사, 2016) 발췌문(5p)을 들려주며 강연을 시작했다. <내 안의 미래>는 조인원 총장과 재학생, 교수들이 대학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고 공적 책임을 다하는 ‘대학다운 미래대학’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지 토론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인류의 보편의제가 ‘거짓’으로 인식되는 ‘탈진실’, 미래 혼란 가중
경희는 2014년 개교 65주년을 맞아 구성원 대규모 인식조사를 실시하고 <경희대학교 미래대학리포트 2015>를 발간했다. 이후 학생, 교수, 직원을 대상으로 총장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대학과 인류의 현재, 미래에 대한 구성원의 인식을 기반으로 더 나은 대학의 미래를 위한 핵심 요건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끊임없이 대학의 존재 이유를 성찰하고 대학, 나아가 인류 문명의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해온 경희는 최근 그 담론을 국내외 대학, 학계, 국제기구와 나누고 있다. 안으로는 설문조사와 북토크, 토론회를 통해 대학의 역할과 추구해야 할 가치, 교육·연구·대학원 역량 제고 방안 등에 대한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했다.
지난 11월에는 국내 주요 사립대학과 함께 ‘제2회 미래대학포럼’을 개최해 문명사적 과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대학의 책무라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대학이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모았다. 세계예술과학아카데미(WAAS), 세계대학컨소시엄(WUC), 로마 제3대학(Roma Tre)과 공동 개최한 ‘로마 콘퍼런스’에서는 고등교육의 미래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펼쳤다.
경희가 안팎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에 대한 담론을 공론화하는 이유는 인류 앞에 놓인 미래가 희망적이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급속한 산업화가 초래한 기후변화와 생태·환경 위기,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기술이 상징하는 문명사적 전환은 ‘예측 불허의 미래’를 불러온다.
편견과 배제, 분리의 정치로 인해 기후변화와 같은 인류의 보편의제가 ‘허구’ 또는 ‘거짓’으로 인식되는 ‘탈진실’의 담론은 미래에 대한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환경파괴, 자원고갈 등 지구적 문제, 반세기 넘도록 해결되지 못해”
조인원 총장은 전환시대에 따른 혼돈의 상황에서도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며 새로운 가치와 희망의 지평을 열어가기 위한 대학의 소명과 역할을 강조해왔다.
조 총장은 공공대학원 명사초청 강연에서도 ‘전환의 시대: 현실, 진실, 대학의 길을 묻다’를 주제로 그동안 가져온 문제의식을 공공대학원 재학생, 졸업생, 교수들과 함께 나누고, 문명 전환적인 징후에 대처하는 우리의 역할에 대한 사유를 풀어냈다.
조 총장은 강연 서두에 하나의 영상을 소개했다. 인공지능 로봇 소피아가 지난 10월 11일 열린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정기 회의에 등장해 유엔 사무차장 아미나 모하메드와 대화를 나누는 영상이었다. 소피아는 탄생한 지 1년 반 만에 사람과 눈을 맞추며 “인공지능이 인류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에 대답하는 등 빠른 속도로 진화한 모습을 보여줬다.
조 총장은 “인공지능의 진화를 지켜본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움과 충격, 미래에 대한 걱정 등 다양했다. 오늘날 인류는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과 함께 기후변화, 미세먼지, 자원고갈, 식량부족과 같은 문제를 직접 겪고 있다”며 “문명전망 기관은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짧게는 수십 년 내에 인류는 ‘진화’ 또는 ‘멸절’의 운명에 놓일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설명했다.
지구와 인간의 미래를 위협하는 문명사적 난제는 최근의 문제가 아니다. 1965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열린 세계대학총장회(IAUP) 창립총회에서 아놀드 토인비는 ‘세계가 지금 겪고 있는 대량 살상무기의 위협, 빈부격차, 식량난과 같은 문명사적 난제를 헤쳐가기 위해서는 정치가 선린(善隣)의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 세상 정치가 나서지 않는다면, 대학이 나서야 한다’고 전했다.
로마클럽도 1972년 출간한 보고서 <성장의 한계>에서 자원고갈과 환경오염의 가속화를 예측하고, 현재와 같은 성장 속도가 지속되는 한 2100년 전에 성장의 한계에 도달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기후와 환경, 소외와 갈등, 테러와 폭력 등은 문제의식이 제기된 지 반세기가 넘도록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공감과 합의를 이뤄내는 ‘공유의 정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인류는 여전히 근시안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조인원 총장은 국수주의와 배타주의, 편견의 리더십을 통해 권력을 강화하고 있는 일부 정치권을 예로 들었다.
미국은 지난 2015년 195개국 정상이 모여 체결한 ‘파리협약’에서 탈퇴했다. 파리협약은 화석연료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산화탄소와 이에 따른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한 국제사회가 지구 평균온도의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섭씨 1.5도 이내로 제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 총장은 “기후변화는 진실이고, 이산화탄소 배출은 화석연료에 기인한 것이라는 과학적 발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정치권 일각의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라고 반문했다.
이러한 담론이 가능해진 이유를 조 총장은 ‘탈진실의 시대’에서 찾았다. 지난해 연말, 옥스퍼드 사전은 ‘탈진실’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탈진실은 ‘내가 보기에 따라, 그렇게 보고 싶은 마음에 따라 진실은 달라진다’는 견해다.
조 총장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게 될 경우, 가치 충돌을 피할 수 없다. 인공지능, 기후변화와 같은 인류 보편의제에 작동하는 탈진실의 담론은 더욱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고 우려한 뒤, “진실과 허구, 현실과 가상이 혼재하는 탈진실의 시대에서 삶의 새로운 인식과 존재에 관해 근원적으로 성찰하고 공동·보편의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총장은 이를 위해 지식을 탐색하는 앎의 세계와 함께 ‘그렇지 않을 가능성’, ‘다르게 사유할 수 있는 역량’에 주목하며 ‘앎 너머 모름의 세계’를 탐구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탈진실의 시대를 가능케 한 힘의 논리, 정치에 대한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정치는 좁은 의미에서 보면 정치권, 혹은 국가권력이라는 틀에 귀속된 것처럼 보이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자신을 표현하고, 타자와 관계를 설정하는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는 현실 정치인에게 주어진 특권이 아니라, 삶의 일부이며, 우리는 모두 정치인이다’라는 것이 조 총장의 견해다.
같은 맥락에서 조 총장은 자신을 표현하고, 타자와 교류하며, 만사·만물에 관한 엄정한 분석과 추론을 근거로 공감과 합의를 이뤄내는 ‘공유의 정치’를 강조했다.
“대학, 지성, 시민사회가 ‘희망’을 함께 불어넣어야 한다”
과연 ‘더 나은 미래’는 가능할 것인가. 조인원 총장은 ‘미래의 회상’이 이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는 불과 몇 년 전에는 ‘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미세먼지와 폭염을 경험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내리는 선택은 곧 마주할 현실이다”라고 설명한 조 총장은 “앞날의 성찰과 회상을 통해 성장과 번영의 지속 가능성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조 총장은 “대학, 지성, 시민사회가 미래를 향한 희망을 함께 불어넣어야 한다”며 “특히 대학이 이러한 노력에 더 많이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은 미래에 관한 오늘의 상상과 창조의 공간, 현실과 진실의 무한 가능성을 부단히 생산해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날 강연에는 공공대학원 재학생, 졸업생, 교수 등 250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더 이상 기후변화, 미세먼지와 같은 지구적 문제들이 나와 상관없는 문제가 아니다.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조인원 총장의 생각에 공감하는 한편, 구체적인 실천 방법에 대해 질문했다.
조 총장은 “공동·보편의 가치를 추구하는 시민 의식이 형성될 때 현실의 제약을 넘어서 희망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며 사회적 이슈가 제기됐을 때 기꺼이 참여하라고 조언했다.
조 총장은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가 나서야 하는데, 다수의 표심이 중요한 정치는 사회에 어떤 공통 의식이 생기면 변할 수밖에 없다. 정치를 움직이기 위해선 어떤 공통의 시민 의식이 만들어지느냐가 중요하다”라며 일례로 시민 사회에서 환경 문제를 위해 세금을 공유하겠다는 의식이 형성될 때, 정치가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오은경(커뮤니케이션센터, oek8524@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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