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문학은 사업 아니야, 개인의 즐거움으로 음미해야”
2017-12-11 교육
케빈 오록 명예교수, 제25회 대산문학상(번역) 수상
“학자로서 마무리하는 시기에 큰 상 받아 안성맞춤”
번역은 재미로 시작, 앞으로는 문학 향유자로 남을 것
케빈 오록 영어학부 명예교수가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다. 제25회 대산문학상(번역)의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한국에서 산지가 50여년이 됐고, 본인에게 ‘우리문학’은 ‘한국문학’을 뜻한다는 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를 주도한 그였지만, 소비적인 한국 문학 향유 양상과 사업으로 변해버린 번역 시장에 대한 고언도 아끼지 않았다.
향가, 고려가요, 시조, 한시 등 왕성한 번역 원동력은 ‘재미’
소감을 묻는 질문에 오록 교수는 너무나 큰 상을 받았다며, “40년 전 번역을 시작하면서 문화예술진흥원 대한민국상 본상을 탔었는데, 학자로서의 삶을 마무리하는 시기에 큰 상을 타니 안성맞춤”이라며 소감을 밝혔다.
이번에 대산문학상 수상을 안긴 책은 <한국 시선집: 조선시대(The Book of Korean Poetry: Chosun Dynasty)>이다. 지난 40년 동안 이규보, 정철, 윤선도 등의 시 600수를 번역해 모은책이다.
대산문학상 심사위원단은 이 책에 대해 “한국에 체류하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한국문화와 역사, 시조를 이해해온 번역자로서의 고민의 흔적과 오랜 기간의 노력이 엿보였다”며 “한국의 얼과 문학성을 되살려 세계화에 기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오록 교수는 40년 전 최인훈의 <광장>을 시작으로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의 단편소설을 번역했다. 또한 향가, 고려가요, 시조, 가사, 악장, 조선시대의 한시 등도 번역했고 현대시도 2,000편 정도를 번역했다. 40여년이라는 긴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엄청난 양을 번역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간단하다. 오록 교수는 “번역은 재미로 하는 일”이라 말했다.
번역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 대해 물었다. 1968년도 연세대학교에서 대학원에 진학한 오록 교수는 교수들의 권유였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에는 연세대에 외국인이 거의 없었다. 교수들이 여러 작품의 번역을 권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에는 강의를 듣고 과제를 내는 일에 바빠서 번역을 즐기질 못했지만, 이후 작품 읽기를 즐기면서 번역에도 즐거움이 생겼다”고 밝혔다.
한국문학의 다양한 작품들 중 오록 교수의 마음을 끄는 작품들은 ‘선시(禪詩)’계열의 작품들이다. 오록 교수는 선시의 분위기가 좋다며 “결국 혜심(慧諶)이 말한 것처럼 ‘말없이 보기만 하면 된다’”며 “눈앞에 너무나 다양한 세계가 펼쳐져 있다. 많은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보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조선시대부터 말이 길어지고 많아졌다. 상상을 중시해야 좋은 시가 나온다”고 밝혔다.
애착 있는 작가는 이규보와 서정주
오록 교수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작가를 물어봤다. ‘이규보’를 최고의 작가로 뽑으며 “이규보와 혜심의 시가 최고이고 세계적 수준의 작품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고전문학 작품을 읽는 사람들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입시준비를 하는 사람들이나 작품을 읽지, 자유로운 시간에 고전문학을 취미로 읽는 사람도 없고 이들의 시를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록 교수가 쓴 <이규보 시선집(Singing Like a Cricket, Hooting Like an Owl: Selected Poems of Yi Kyubo)>에 관한 이야기는 그의 이규보에 대한 평가와 번역에 대한 소신을 말해준다. 그는 “이규보는 상상력과 욕심을 초월한 인생관이 놀랍도록 훌륭하다. 그는 중국의 두보나 소동파를 능가하는 시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번역한 지 벌써 2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쉽다”며 “번역한 시를 버린 종이만 해도 엄청날 것이다. 번역한 시를 소리 내서 읽으면서 운율이 잘 살았는지를 확인하고 아니면 버렸다”고 말했다.
미당 서정주와의 인연도 이야기했다. 그에게는 미당과 아일랜드에서 만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는 “할아버지와 함께 더블린의 중국집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진 미당 선생을 만났다”며 “당시 우리 할아버지는 90세, 미당은 80세가 넘은 나이였는데, 두 분께서 3시간을 넘게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이어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두 분과 함께한 그 시간의 따뜻함이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밝혔다.
노벨상 집착 말고 유교적 짐 벗어나야, 문학은 사업이 아니라 개인의 즐거움
오록 교수는 한국문학에 대해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한국 사회와 문단은 문학에는 관심이 없고, 노벨상을 수상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위대한 한국 문학은 신라, 고려시대에 쓰인 것인데, 이러한 것을 계승하지 않고 20세기에 들어와 다시 새로 시작했으니 그 전통을 만드는데 시간이 좀 많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또한 노벨상 수상작, 맨부커상,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등의 많이 팔리는 책만 만드는 것도 그릇된 태도라며, “좋은 작가가 나타나면 자연스럽게 상을 타는 것이니, 그때까지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오록 교수는 한국문학에 전반적으로 깔린 ‘유교적 짐’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국사람의 생각은 아직 유교적이다. 이를 초월할 때까지 진정한 의미의 한국문학을 만들지 못할 것 같다”며 “최근의 젊은 작가들이 새로운 문학을 하고 있다고 본다. 사회를 바라보는 ‘풍자’적 시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록 교수는 문학이 소비적으로 흐르는 흐름을 경계하고 문학을 즐기는 자세를 가져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국 사람들에게 “문학을 사업으로 생각하지 말자”며 “문학은 개인의 즐거움으로 음미하자”고 말했다.
정민재(커뮤니케이션센터, ddubi17@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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