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전환시대의 대학의 본령 -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2017-11-17 교류/실천
‘제2회 미래대학포럼’ 개최… 경희대·고려대·연세대 등 10개 대학 참여
조인원 총장, “문명사 전환, 대학은 역할과 책무를 재정립할 요구에 직면해”
참여 대학, ‘문명사적 과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대학의 책무’에 공감
“급속한 산업화가 초래한 기후변화와 환경 위기,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기술이 상징하는 문명사적 전환 앞에 대학은 자신의 역할과 책무를 재정립할 요구에 직면해 있다. 진지한 자기성찰이 필요한 때다. 이를 통해 개인과 사회, 인류에 대한 지적 담론과 실천 가능성을 확보해야 할 시점이다.”
지난 11월 15일(수)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제2회 미래대학포럼’에서 조인원 총장은 이 같은 화두를 던졌다. 미래대학포럼은 고등교육 혁신을 통한 미래 대학교육의 역할과 비전을 모색하는 자리로 경희대를 비롯해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숙명여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국외대, 한양대가 참여하고 있다. 조인원 총장이 던진 화두는 10개 대학이 모인 이유이기도 하다.
전환시대에 따른 혼돈의 상황에서도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며 새로운 가치와 희망의 지평을 열어가기 위한 대학의 소명과 역할을 강조해온 조 총장은 미래대학포럼에서 이 담론을 대학 총장들과 나눴다.
‘대학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대학의 본령이 무엇인가?’
포럼은 조인원 총장의 기조발제로 시작했다. 조 총장은 '전환시대의 대학의 본령 -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를 주제로 발표했다.
최근 인공지능 로봇 소피아가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패널로 등장해 인공지능이 인류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엔은 인공지능 무기가 인류에 미칠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반영해 지난 13일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CCW) 회의에서 킬러 로봇을 주제로 논의 중이다.
조 총장은 인공지능과 함께 기후변화, 미세먼지, 화석 연료 고갈 등 인류가 처한 현실을 전한 뒤, <경희대학교 미래대학리포트 2015> 결과를 소개했다. <미래대학리포트>는 2014년 경희대가 개교 65주년을 맞아 구성원의 집단지성을 바탕으로 대학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더 나은 대학 건설을 위한 핵심 요건을 모색하기 위해 추진됐다.
설문조사, 포커스 그룹 인터뷰, 심층 토론회, 소셜 픽션(Social Fiction, 특정 주제를 놓고 함께 상상해보는 대규모 집단 토크), 미래연표 작성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된 인식조사에 1만 5천여 재학생이 참여했다. 학생들은 미래대학에서 존경받는 교수상으로 인격 형성에 도움을 주는 정신적 스승, 50년 뒤 유망한 직업으로 종교 분야를 가장 많이 꼽았다.
조 총장은 “우리 학생들은 사회진출을 돕거나 현재 주목받는 직업과 같은 사회 통념에서 벗어난 선택을 했다.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처해있는 상황이 척박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며 “이러한 결과와 시대의 변화, 대학이 처해있는 현실을 보면서 ‘대학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대학의 본령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대학은 학문의 학문적 가치, 인간적 가치, 실용적 가치를 추구해왔다. 그러나 사회는 ‘직업교육’을 시켜달라고 요구한다. 조 총장은 이 간극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대학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으로 학문과 평화, 인류 공영의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 총장은 “인류학자와 미래학자들이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100여 년 내에 인류는 ‘진화’ 또는 ‘소멸’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는 이 시대, 인류와 문명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기후변화, 환경위기, 양극화, 탈인간화 등 문명사적 과제를 풀어나가는 것 역시 대학의 책무다”라고 말했다.
염재호 고려대 총장, “대학, 지식 전달에서 창출하는 곳으로 변화돼야”
이어서 염재호 고려대 총장이 ‘대학의 미래와 사학의 미래’를 주제로 발제했다. 우선 사학의 역사를 되짚었다. 염 총장은 “고려대는 구한말 식민지 전에 ‘나라를 구하기 위해선 교육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며 “시기만 다를 뿐 다른 사학들도 비슷한 정신으로 태동했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경제가 평균 6.6배 성장할 동안 한국이 400배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수한 인재를 대량 배출해낸 사학의 역할이 컸다고 강조했다.
염 총장은 “그러나 정부는 사립대에 사업비나 연구비 외에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고 있으며, 사업비와 연구비는 대학 간 경쟁을 통해 지원하면서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고 밝힌 뒤 “8년 동안 등록금이 동결됐고, 정부 지원마저 녹록지 않은 상황으로 사학이 어려움에 처해있다”고 토로했다.
염 총장은 사학, 특히 국가발전에 직결되는 이공계 분야에 대한 조건 없는 정부 지원을 촉구하는 한편 대학 역시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전했다. “21세기는 20세기와 전혀 다르기 때문에 대학의 역할도 달라질 것”이라며 “대학이 지식을 전달하는 곳에서 지식을 창출하는 곳으로 변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래지향적 교육으로 글로벌 능력을 함양하는 실용학문 현장수업과 함께 토론 등을 통해 학생 스스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방법을 제안했다. 이를 위해 “미래대학포럼에 참여하는 대학과 ‘공유경제’ 개념으로 서로 나눌 수 있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면서 공동 강의 개설, 온라인 강의 활용이 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은 학생 미래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인류와 지구 위해 노력해야”
기조발제 후 김용학 연세대 총장이 좌장을 맡은 좌담회와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미래대학포럼 참여 대학들은 ‘문명사적 과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대학의 책무’라는 데 공감했다.
강정애 숙명여대 총장은 “대학이 학생들의 미래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인류와 지구, 환경문제와 평화,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한다”며 “미래대학포럼에 참여한 대학은 물론, 한국의 모든 대학이 이러한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데 동참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수 중앙대 총장은 “싱가포르에서는 4개 대학이 함께 ‘다음 50년 상상하기’라는 교육모델을 만들어 인구, 경제, 정치, 안보 등 ‘6대 위기’에 대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미래대학포럼도 서울의 10대 위기를 선정해 집단지성이 함께 사회 문제를 해결해나가자”고 제안했다.
“대학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 미래 준비하는 유연한 변화가 필요하다”
전환의 시대 속에서 대학의 역할과 책무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다.
김혜숙 이화여대 총장은 “무크(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와 같은 온라인 강의가 확대되면서 대학이 독점적으로 누려왔던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이 줄어들었는데, 대학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성찰한 뒤, “아젠다와 문제의식을 갖고 대학의 특수성과 고유성은 유지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유연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대학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되묻고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종구 서강대 총장은 “대학이 산학협력과 취업, 창업 등에 대한 요청을 받으면서 인간을 만드는 대학교육, 학문하는 곳이라는 대전제가 훼손되고 있다”며 “대학이 시대의 요청을 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육과 대학의 근본이념을 놓쳐선 안 된다. 대학 고유의 가치를 지켜가면서 시대가 요구하는 것을 차근차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립대는 국립대와 마찬가지로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공적 기관이다”
질의응답에서는 미래대학포럼의 방향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송재룡 경희대 대학원장은 “대학이 직면한 현실 중 하나가 대학평가인데, 획일화된 평가 기준으로 대학의 다양화와 특성화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미래대학포럼 참여 대학들이 연대해 대학평가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홍준현 중앙대 국제처장은 “사립대는 국립대와 마찬가지로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인재를 길러내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지원에 차등을 두고 있다”면서 이 부분에 대한 개선을 위해 10개 대학이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에 조인원 총장은 “사립대와 국립대는 설립 주체나 창립 이념의 차이는 있지만, 사회 발전과 미래를 준비하고 공헌한다는 차원에선 차이가 없는 공적 기관이라는 부분에 대한 정부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며 사립대학의 길이 무엇인지 사회와 적극 소통해 나가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염재호 총장은 “각 대학이 특수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공동의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지만, 고등교육 기관으로서 스스로 반성하고 변화하기 위해 모인 만큼 미래대학포럼을 통해 대학과 사회가 변화할 수 있도록 문제를 공론화하고 함께 노력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오은경(커뮤니케이션센터, oek8524@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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