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로마에서 고등교육의 미래를 논하다
2017-12-01 교류/실천
11월 16~18일 로마에서 미래교육 논의 위한 ‘로마 콘퍼런스’ 개최
세계예술과학아카데미·로마 제3대학·세계대학컨소시엄, 경희대 등 공동 조직
경희 주최로 특별기획 포럼 ‘내일의 고등교육, 그 미래적 도전’ 열려
사회 소수자에 대한 교육의 공적 책무 등 논의… 경희대 학생 23명 참가
지난 11월 16일부터 18일까지 3일간 이탈리아 로마대학에서 ‘로마 콘퍼런스’가 개최됐다. ‘미래교육’을 주제로 한 이번 국제포럼은 ‘세계예술과학아카데미(World Academy of Art and Science, WAAS)’, ‘로마 제3대학(Roma Tre)’, ‘세계대학컨소시엄(World University Consortium, WUC)’이 주관하고, ‘세계대학총장회(International Association of University President, IAUP)’, ‘유엔 아카데미 임팩트(United nations Academic Impact, UNAI)’를 비롯한 국제기관과 경희대학교가 공동으로 조직했다. ‘로마 콘퍼런스’에 다녀온 김민웅 미래문명원 교수의 참관기를 게재한다.<편집자 주>
이탈리아 레오나르도다빈치 공항의 밤은 이방인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시내로 들어서면서 로마의 야경을 볼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열두 시간을 넘는 비행은 육신의 고단함을 가져왔지만, 마음은 어느새 청년의 기력을 일깨우고 있었다.
5~6년 전, 로마에 왔을 때와는 다른 차분함이 동방에서 온 여행자의 마음에 깃들었다. 이탈리아 곳곳을 정신없이 누비던 속도전 같았던 여정이 아니다. 4박 5일의 여유로운 시간이 로마의 깊이를 느끼게 해 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이어지는 일정과 흥미로운 소주제, 참가자들의 진지함으로 회의 내내 긴장을 풀기 어려웠다.
미래교육으로 가는 길에 대한 고민·전망 나눠
첫날인 11월 16일, 경희가 주최한 특별기획 포럼 ‘내일의 고등교육, 그 미래적 도전’이 진행됐다. 이번 포럼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참석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탄탄한 준비로 현장의 놀라움을 이끌어낸 23명의 경희대 학생들이 참석해 자리를 더욱 빛냈다.
박용승 국제교류처장의 환영사와 발제가 이어졌다. 발제 책임을 맡은 나는 ‘경계를 넘어’라는 제목으로 미래교육으로 가는 길에 대한 고민과 전망을 나누었다.
발제 요지는 교육이 학생들을 전쟁터에 끌고 가 인격살해를 하고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미리 포기하게 하는 것과 같은 방식, 또는 이미 그 미래가 결정되다시피 한 배양방식에서 벗어나 가치를 추구하면서 고등교육의 본령을 복원하는 노력을 기울이자는 것이었다. 학문의 경계를 넘어 지구적 현실이 제기하는 도전과 마주하는 융합적인 미래역량을 기르는 노력을 강조했다.
이 자리가 더욱 뜻깊었던 것은 스페인 출신의 유네스코 사무총장이었던 페데리코 메이어, 이탈리아 전국노조 사무총장 구길리엘모 로이, 사회적 소수자들과 시민들에게 대학을 개방하는 프로그램을 이끄는 이탈리아 자유대학의 전 학장인 월터 로렌조 등이 함께했기 때문이다. 참석이 예정되어 있다가 사정이 생겨 오지 못했던 바티칸의 주교이자 대학교육의 책임자 로렌조 리우지까지 있었다면 단연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유네스코 차원의 미래교육에 대한 안목, 노동의 현실과 고등교육의 관계,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교육의 공적 책무 등에 대한 폭넓고 깊은 논의의 장이 펼쳐졌다. 바티칸의 주교를 통해 프란체스코 교황의 정신적 지향점과 고등교육의 관계까지 아우를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그 정도만 해도 경희대가 주최한 특별순서의 가치가 분명했다.
기업·노조·정부, 4차 산업혁명과 교육, 민주주의 등 지구 공통관심사 논의
로마 제3대학의 학생들과 교류와 토론 시간을 가진 경희대 학생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첫날은 기본 지향점에 대한 발표 위주라 따로 발언 기회가 없었던 이들은 소주제 세션이 시작된 둘째 날부터 자신들의 역량을 드러냈다. 학생들은 높은 수준의 공격적인 과감성까지 발휘하며 논쟁의 자리를 뜨겁게 만들어 세계적으로 이름 높은 기성학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학생들에게 더욱 큰 즐거움을 안겨준 것은 저녁 식사자리에서 각처에서 온 지식인들과 나눈 격의 없는 대화였을 것이다. 하버드, MIT 등 세계 명문대학의 교수들만이 아니라 낯설었을 에스토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루마니아, 인도 등에서 온 지식인들과의 만남과 환대도 젊은이들에게 평생에 남을 감동을 주었던 것 같다. 역시 소탈한 자리에서의 교류는 모든 회의나 행사의 숨겨진 꽃이다.
‘기업과 노조, 정부의 관계’를 비롯하여, ‘마음과 창의력’, ‘4차 산업혁명과 교육의 미래’,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 그리고 고등교육’, ‘경제와 고등교육’, ‘창의적 사유, 비판적 사유를 위한 교육’, ‘복잡계와 불투명성’, ‘시스템 사유’, ‘교육의 지구적 관점과 지역적 관점’, ‘교수법의 새로운 패러다임’
이번 국제포럼에서 다룬 소주제는 다채롭기 그지없었다. 이 주제들은 일부를 빼고는 대체로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지구적 공통관심사라는 점에서 고등교육의 미래를 향한 세계적 차원의 협의와 연대가 가능하다는 전망을 더욱 굳건하게 해주었다.
“경희가 그리는 미래교육이 현실로 살아 움직이는 힘 갖길”
3일간의 치열한 일정은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를 새삼 일깨웠다. 학생들에게는 포럼 3일째, 따로 여행 시간을 가질 수 없어 잠시 탈출할 기회를 주었고 로마 시내를 걷다가 일부러 그럴 이유는 없으나 길을 잃어보는 경험도 괜찮다고 했다. 발터 벤야민의 말대로, 도시를 제대로 아는 방법은 길을 잃었다가 어떻게든 길을 찾는 과정을 겪는 체험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는 중에, 이미 정해진 경로에서는 전혀 보지 못했던 풍경과 만날 수 있다.
사실 로마는 걸어 다니면서 둘러보기 쉽지 않다. 워낙 모든 것이 큼직큼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작은 길을 탐색하면서 이리저리 돌아보는 일은 거대한 문명의 도시가 만들어진 역사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배움이 된다.
하나의 문명이 인류사에 자신의 흔적을 뚜렷이 남기기는 그리 쉽지 않다. 우린 지금 그런 여정을 향해 가고자 하는 것이다. 다시 레오나르도다빈치 공항으로 가기 전, 콜로세움에서 바티칸시에 이르는 길을 반나절 넘기도록 걷고 또 걸으면서 나 또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 세계를 향해 뚫린 길의 위대함을 목격했다. 하루하루가 착실하게 쌓이면서 문명은 자신의 진로를 확립해나간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던가? 한국에서의 고등교육의 길은 경희를 통한다는 소문이 소리 없이 퍼지고 있다는 상상에 잠겨본다. 그러자 갑자기 이그나시오 로욜라 성당 천장 벽화가 떠오른다. 입체다. 곡면의 천장 전체에 펼쳐진 화폭과 맞닿은 네 기둥 쪽의 벽화 묘사가 이제껏 보지 못한 독특함을 드러낸다. 손과 팔 그리고 머리는 그림인데 몸체는 조각으로 되어 그림과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다. 조각이 그림에 스며든 것인지, 아니면 그림에서 조각이 태어나 뻗어 나온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다.
우리가 그리는 미래교육의 그림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스미기도 하고 솟아오르기도 하는 3차원의 현실로 살아 움직이는 힘을 가진.
김민웅 교수(미래문명원/교육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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