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나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소설 쓸 것”

2017-12-11 교육

손보미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문학동네, 2017)으로 제25회 대산문학상 소설부문을 수상했다.

손보미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대산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
심사평 “한국문화 지평의 초국가적 확대에 대응되는 서사적 상상 돋보여”
“대학 문학동아리 활동이 많은 도움 됐다”


‘우연’은 때로 삶의 방향을 결정짓기도 한다. 우연히 경희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해 우연히 문학동아리에 가입한 사람의 경우가 그렇다. 이 우연은 한 사람을 소설가의 길로 이끌었고, 최근 제25회 대산문학상(소설)의 주인공을 탄생시켰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2012년 젊은작가상 대상, 2013년 제46회 한국일보문학상, 2014년 제21회 김준성문학상 등을 수상한 손보미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다.

2009년 21세기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고,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손보미 동문은 첫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문학동네, 2013)로 문단과 독자의 지지를 받아왔으며, 이번에 첫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문학동네, 2017)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손보미 교수는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다.

대산문학상은 최근 1년 동안 단행본으로 발표된 작품 가운데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을 선정, 시상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종합문학상이다. 1992년 상이 제정된 이래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고은, 백낙청, 박완서 등이 수상했다. 시·소설·희곡·번역(평론) 4개 부문을 시상하며, 상금은 각 5천만 원씩 총 2억 원이다. 시·소설·희곡 부문 수상작은 외국어로 번역, 해외에 소개된다. 올해 번역 부문은 케빈 오록 영어학부 명예교수가 수상했다.
(12월 11일자 ‘“문학은 사업 아니야, 개인의 즐거움으로 음미해야”’ 포커스 기사 참조)

‘랄프 로렌’을 탐구하겠다고 나선 주인공이 자신을 대면하는 과정 그려내
대산문학상 수상에 대해 손보미 교수는 “<디어 랄프 로렌>을 쓰면서 좋았던 순간이 매우 많았고, 나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을 쓴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기도 했기에 수상 여부는 크게 중요하진 않다”고 소감을 밝혔다.

수상작 <디어 랄프 로렌>은 미국 유학 중 좌절한 한국인 남자가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며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이야기와 그가 조사한 랄프 로렌과 그의 양부 조셉 프랭클, 레이철 잭슨, 섀넌 헤이스의 이야기를 액자의 안팎 관계로 겹쳐 놓고 있다. 랄프 로렌 제품에 열광했던 세대의 경험을 반영하며, 한 개인이 그 자신의 진실과 대면하는 과정을 그렸다.

심사위원단은 “다국적 소비문화의 영향 아래 자기인식의 언어를 배운 젊은 세대가 한국인 같은 주어진 동일성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자리에서 자신들이 누구인가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그런 점에서 <디어 랄프 로렌>은 한국문화 지평의 초국가적 확대에 대응되는 서사적 상상의 발랄한 표현이라는 찬사에 값한다”는 심사평을 남겼다.

“‘소설을 쓰는 나 자신’이 중요하다”
<디어 랄프 로렌>은 손보미 교수의 첫 장편소설이다. 단편소설 쓸 때와 장편소설 쓸 때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 묻자 손 교수는 “단편소설 같은 경우 찰나의 감정에 집중해서 쓸 수 있고, 장편에 비해 좀 더 압축적인 부분, 상징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며 “장편을 쓰며 그 차이를 많이 느꼈고, 특히 화자의 톤이 일정한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어 “단편을 통해 보여준 중산층 가정의 불안, 의심도 내가 갖고 있는 주제 의식이 맞지만, 궁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그러한 불안과 의심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람들을 엮어주는 어떤 것이었는데, 장편을 썼을 때 이를 봐주는 사람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손보미 교수는 평소 소설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언급해왔다. 이에 대해 손 교수는 “문장, 인물, 형식 등 작가나 독자 개개인마다 소설에서 느끼는 재미는 다르지만 계속 페이지를 넘길 수 있게 하는 어떤 힘을 재미라고 생각한다”며 “그런데 요즘엔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사람들에게는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의미 있는 소설이 있을 수 있다”며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아 이래서 내가 이 소설을 끝까지 읽었구나’ 하고 생각한다면 소설이 재미없어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는 손보미 교수 자신에게도 적용된다. 손 교수는 “전에는 소설의 완성도를 생각해 읽는 사람을 전제해왔다면, 지금은 ‘소설을 쓰는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내가 내 소설에서 받은 의미를 어떤 독자가 똑같이 느낄 수 있다면 무척 행복한 일이지만, 그렇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독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손 교수는 “독자들이 편지나 선물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내 소설을 쓸 때 느꼈던 마음을 정확하게 읽거나 나 이상으로 읽어주는 독자들이 있다”며 “그런 독자를 만나면 무척 행복하다”고 미소 지었다.

우연히 가입한 문학동아리에서 소설의 재미 발견
우연히 문학동아리에 가입해 소설을 쓰게 된 손보미 교수는 “문과대학 문학동아리 ‘한빛’에서 그 당시 인기가 많았던 은희경, 김영하, 윤대녕 같은 작가들의 소설을 읽고 토론했고, 국어국문학과 소설창작동아리 ‘들녘’에서 소설을 쓰고 합평했다”며 “문학을 사랑하는 학생들끼리 모여 소설에 대해 얘기하고 서로 읽어주는 그 분위기가 좋았다”고 말했다.

대학 때 소설도 써보고 시와 평론도 써봤지만 소설 쓰는 게 가장 재밌었다는 손보미 교수는 “지금 나에게 소설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는 것”이라며 “원한다면 다른 사람의 삶을 살 수 있는 것. 이게 소설을 쓰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잘 쓴 글보다 열심히 쓴 글이 낫다”
“쓰고 싶은 것을 써라.” 손보미 교수가 글쓰기 강의에서 특히 강조하는 것이다. 손 교수는 “문장이나 내용을 꾸미려 하지 말고 주제에 대해 생각한 바를 진솔하게, 그대로 쓰라고 얘기한다”며 “잘 쓴 글보다 열심히 쓴 글이 낫고, 아무리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도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허투루 쓴 것이 글에 다 드러나기에 꾸미려 하지 말고 정성껏 쓰라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이어 “후마니타스칼리지 글쓰기 강의는 단순히 글쓰기만을 위한 강의가 아니라 나와 세상을 재발견, 재정의하는 활동을 글이라는 결과물로 보여주는 강의”라며 “강의가 끝나더라도 이 같은 활동을 학생들이 계속해나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소설가의 꿈을 갖고 있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손 교수는 “소설을 너무 지나치게 중요하게 생각하면 시야가 제한돼 오히려 못 쓰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소설보다 가치 있는 것은 훨씬 더 많고, 재밌는 것도 훨씬 더 많은데 소설 쓰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쓴다는 마음으로 써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손보미 교수는 “앞으로도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소설을 많이 썼으면 좋겠고, 최근 출판된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다산책방, 2017)에 실린 <이방인>의 세계관이 그 전에 썼던 소설들과 연결된 부분이 있어 그 세계관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킨 경장편이나 장편을 쓰고 싶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박은지(커뮤니케이션센터, sloweunz@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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