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경희의 공적 가치, 세계로 미래로
2022-08-25 교류/실천
경희학원 미원평화학술원 워크숍, 평화·학술·교육·실천 활동 관련 자문과 토론
조인원 이사장 “시대의 난제 해결하려는 노력과 열정,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J. Toynbee)는 1965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열린 세계대학총장회(IAUP) 창립총회 기조연설에서 “세계가 지금 겪고 있는 대량 살상 무기의 위협, 빈부격차, 식량난과 같은 문명사적 난제를 헤쳐가기 위해서는 정치가 선린(善隣)의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면서 “세상 정치가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대학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 문제의식은 유효하다. 오히려 더 절실해졌다.
코로나 팬데믹은 인류와 자연의 상호연결성을 명확하게 보여줬다. 인간 개개인의 존재와 타자, 세계, 자연의 관계성을 이해하고, 지구적 협력과 연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시대의 요청에 더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경희학원은 미원평화학술원과 대학, 사이버대학, 의료기관 미래문명원 출범으로 글로벌·공공 협력 체계 구축을 본격화하며 담대한 전환의 여정에 나섰다. 지난 7월 6일(수)에는 ‘제1회 미원평화학술원 워크숍’을 개최해 학원의 가치와 철학, 역사와 전통을 계승·발전하는 평화·학술·교육·실천 활동과 관련한 자문과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행사는 조인원 경희학원 이사장과 김원수 미원평화학술원 상임고문, 이리나 보코바 전 유네스코 사무총장(경희대 미원석좌교수), 존 아이켄베리 프린스턴대 석좌교수, 과제별 담당 교수와 관계자 등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희대 서울캠퍼스 본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상호연결성 이해하면서 미래 준비해 나가야”
조인원 이사장은 환영사를 통해 “경희학원은 한국전쟁 중에 역사를 정초했다. 국가적·민족적 비극의 한복판에서 ‘문화세계의 창조’ ‘학문과 평화’의 가치와 함께 그 시작을 알렸다. 경희의 설립 정신은 인간의 인간적인 세상, 전일적(Holistic) 사유와 함께하는 평화로운 미래사회를 향한다”면서 경희 역사와 함께해온 공적 책무를 강조했다.
그는 “인간의 가치와 양심, 세계와 미래를 향한 공적 가치와 지구적 기여를 말하는 경희학원의 가치는 죽고 사는 문제와 먹고 사는 문제에 모든 관심이 쏠린 설립 당시의 현실에 비춰보면 대단히 이례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공감하고, 책무성을 갖고 추구해야 할 가치”라며 “전쟁, 핵, 빈곤, 기아, 양극화, 환경오염, 생태파괴, 기후변화 등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위기와 함께 문명사적 대전환을 맞고 있는 지금 이 시대의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선 현실 세계를 전일적 안목으로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 경희의 가치를 이어가면서 세계 교육·학술기관, 의료기관, 국제기구, 시민사회와 함께 이 시대의 수많은 난제를 풀어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열정과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이켄베리 교수는 세계와 미래에 기여하는 공적 가치의 중요성을 되새긴 조 이사장의 발언에 공감하면서 “우리는 모든 것이 상호연결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지구라는 공동운명체의 일원임을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해 나가야 한다. 경제·정치·사회 규범의 틀 안에 박힌 지식보다 새로운 가능성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공적 가치를 더 많이 끌어안아야 한다”고 말한 뒤, 프린스턴대 사례를 전했다. 프린스턴대는 인류에 기여하는 대학으로 비전을 재정립하고, 인류가 직면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사회 여러 분야의 석학, 전문가, 동문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학제적 교육·연구·실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구사회의 위기 상황 해소에 대학이 선도적 역할해야”
아이켄베리 교수와 보코바 교수는 인류가 처한 현 상황을 ‘복합위기’로 진단하고, 교육의 역할을 강조했다. 아이켄베리 교수는 “글로벌 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면서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로 인한 지정학적 위기, 기후변화로 대표되는 근대성의 위기, 인권과 자유, 법치가 훼손되는 자유민주주의의 위기에 주목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 구현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 이렇게 큰 의구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는 말로 위기의 심각성을 설명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선 협력과 연대에 기반한 국제협력 시스템이 지속되는 것이 중요한데, 포퓰리즘·민족주의·반세계주의 득세로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은 대학밖에 없다. 우리가 직면한 지구사회의 위기 상황 해소에 대학이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대학의 전통적인 역할은 진리 탐구다. 인간의 인간적인 가치를 찾아 나서고, 불확실성에서 윤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다. 이러한 대학과 교육의 역할, 이것이 지금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가치다”라고 말했다.
이리나 보코바 교수는 “시대의 위기를 헤쳐가기 위해 적극적인 시민성을 일깨워야 한다. 교육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유네스코가 지난해 발행한 국제미래교육위원회 보고서 『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Reimagining Our Futures Together: a New Social Contract for Education)』(이하 미래교육 보고서)는 인류 공통 의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데 교육의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단기적인 교육이 아니라, 한 개인의 장기적인 성공 가치, 국가 경쟁력 제고, 시민 가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가치를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성에 균형을 잡고, 인간적인 가치를 찾아 나서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평화·학술위원회 운영, 평화복지대학원 혁신, 세계시민포럼(WCF) 재개 등 현안 토론
워크숍에서는 계속해서 △평화·학술위원회 운영 △평화복지대학원 혁신 프로그램 도입 △세계시민포럼(World Civic Forum, WCF) 재개 △평화공원과 국제NGO센터 건립 등 경희학원이 추진·검토 중인 주요 현안을 발표하고, 과제별 자문과 토론을 진행했다.
경희학원은 설립 초기인 1950년대부터 농촌운동과 자연보호운동, 밝은사회운동, 인류사회재건운동, 네오르네상스운동을 통해 시대와 국가사회가 초래한 인도적·지구적 난제 해소를 위한 노력을 거듭했다. 또한 1970년대부터 각종 국제 학술회의를 주도해 위기에 처한 세계를 직시하면서 교육을 통한 평화 구현을 강조해왔다. 1965년 세계대학총장회(IAUP) 창립, 1981년 유엔 세계평화의 날과 해 제정에 선도적 역할을 한 것은 경희학원의 학문과 평화 운동이 지구사회 차원으로 확장된 상징적 결실이었다.
경희학원은 지속 가능한 문명의 미래에 기여하는 가치를 계승·발전하기 위해 다양한 평화·학술·교육·실천 활동을 추진·검토하고 있다. 자문기구인 경희학원위원회에 평화·학술위원회를 두고 학원 안팎, 국내외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교육 부문에선 평화복지대학원 혁신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평화에 대한 의미를 재정립하고, 평화 거버넌스 관련 학술·교육 프로그램을 새롭게 구축하려는 것이다. 평화복지대학원은 1984년 세계 최초로 평화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그 특수성과 평화 가치 구현을 위한 노력을 인정받아 1993년 대학으로는 세계 최초로 유네스코 평화교육상을 수상했다.
경희학원은 교육·학술기관, 국제기구, 시민사회와 함께 미래에 대한 책임 의식을 공유하고, 협력과 연대의 기회도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09년 창립한 세계시민포럼의 재개, 평화공원과 국제NGO센터 건립을 검토하고 있다.
“경희학원의 독특한 가치, 경희만의 브랜드로 강화해야”
아이켄베리 교수는 학문과 평화를 연결하고, 시민사회의 참여를 연계하고자 하는 경희학원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경희학원은 다른 학술·교육기관과 다른 독특한 가치를 갖고 있다. 이 가치를 경희만의 브랜드로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코바 교수는 “경희학원이 추진하고 검토하는 여러 가지 도전 과제에 대해 인도주의적 접근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하면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의 상호연결성이 더욱 명확해졌으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이 상황, 그리고 인류 공동의 도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 시스템에서 어떻게 휴머니즘을 구현할지 고민해야 한다. 공감과 연대의 가치를 심어주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교육은 시민을 키워내는 일이라는 사명감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토론자도 휴머니즘 가치를 강조했다. 신충식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오늘날 문제는 휴머니즘 교육을 통한 공존의 가치를 공유할 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 경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역사적으로 보면 문제 해결을 위해 시행한 제도가 원하는 만큼 작동하지 않은 사례가 많다. 유엔은 그 원인이 교육이라고 했다”면서 “교육자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교육 시스템이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가를 성찰하면서 도덕과 양심, 인간성의 가치를 교육 시스템에 편입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평화복지대학원, 시민참여 온라인 프로그램 등 구상
발표와 토론은 평화복지대학원 혁신 프로그램을 포함해 미래교육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관련 주제를 발표한 권기붕 평화복지대학원장은 “인류가 써내려온 산업문명의 역사가 위기를 맞았다. 우리는 과거의 성장 방식을 더는 유지할 수 없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설계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을 통해 생존과 번영의 미래로 나아가는 지구공동사회를 구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평화복지대학원은 평화 거버넌스 분야에서 학술 연구를 위한 석·박사 프로그램,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최고경영자 프로그램, 대중 강의로 구성한 시민참여 온라인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라고 설명했다.
미래교육과 관련해 두 교수는 문제 해결력을 강조했다. 보코바 교수는 “미래세대가 직면할 문제가 무엇인지 그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을 가르쳐 줄 수 없다.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문해력을 키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켄베리 교수는 “생각해보면 대학에서 여러 과목을 수강했는데, 무엇을 배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수업을 통해 탐구하면서 문제를 해결해나갔던 경험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며 “미래교육을 고민하면서 이 부분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두 교수는 평생학습 접근법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보코바 교수는 “교육이 문제 해결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교육 시스템을 학생과 동문, 가족, 지역사회를 포함해 평생학습, 열린 학습이 가능하게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네트워크를 활용한 다양한 상호작용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켄베리 교수는 “과거에는 교육·학술기관이 독립된 캠퍼스를 보유해야 한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캠퍼스의 경계가 무의미해졌다.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동문과 시민사회가 평생학습의 기회를 누릴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계시민포럼, 국제사회와 의제 공유해 지속 가능한 역동성 만들어내야”
세계시민포럼과 관련해선 지속 가능성 확보, 실천 운동으로의 연계 필요성이 개진됐다. 송재룡 경희대 특임교수는 세계시민포럼 재개 의제를 발표하면서 “경희학원과 유엔 경제사회국(UNDESA)의 협력으로 개최한 2009년 창립대회에는 전 세계 57개국 교육·학술기관, 국제기구, 시민단체, 정부, 기업, 언론기관 대표 3천여 명이 참여했다.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뒀으나, 당시 결의가 실천 담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실천으로 연계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코바 교수는 “세계시민포럼이 지향하는 인도주의적인 사회, 윤리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현장과의 연계, 시민사회의 참여를 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민사회, 국제사회와 의제를 공유해 지속 가능한 역동성을 만들어내야 한다”면서 다양한 협력 방안을 제시했다. 일례로 포럼을 유엔총회가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채택한 지 10주년이 되는 2025년에 재개해 아젠다를 중간 점검하는 기회로 삼자는 것이다.
우기동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세계시민포럼이 일회성 행사로 끝나는 게 아니라 교육, 나아가 지구적 위기 상황을 풀어가고자 하는 세계시민 의식까지 연결하는 게 중요하다. 세계시민운동으로 확대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보코바 교수는 디지털 플랫폼 구축, 온오프라인 행사 개최 등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세계시민과의 접점을 확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워크숍을 마무리하면서 아이켄베리 교수는 “제대로 된 질문을 찾아낸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질문 자체가 해결책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다른 기관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어떤 교육·학습법을 운영하고 있는지 살피는 노력과 함께 오늘 워크숍과 같은 전문가와의 대화, 다른 기관과의 교류를 통해 최적의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 오은경 oek8524@khu.ac.kr
사진 이춘한 choons@khu.ac.kr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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