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논평] ‘저물녘의 대학’, 돌아봄과 내다봄-송재룡 교수(사회학)
2022-04-27 연구/산학
한국연구재단 등재 학술지 『현상과인식』 봄호(46권 1호)에 조인원 경희학원 이사장과 박영신 경희학원 고황석좌(전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의 글이 실렸다. 이 글은 지난해 11월 13일 열린 한국인문사회과학회 가을 학술대회(주제: 저물녘의 대학, 돌아봄과 내다봄)에서 발표한 기조강연과 논문 전문이다. 『현상과인식』 봄호에서는 조 이사장의 ‘전환의 시대, 원천서 배우고 미래에서 행한다’라는 제목의 기조강연(전문 보기: 하단 참조)과 박 교수의 ‘대학의 소명: “자기 물음”을 위한 큰 배움터로’(전문 보기: 하단 참조), 박치현 대구대 교수의 ‘탈콧 파슨스의 대학론과 한국 대학’, 김영선 성공회대 교수의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한국여성학의 도전과 새로운 실천’ 등 세 편의 논문을 특집으로 다뤘다. 송재룡 경희대 특임교수(사회학)가 ‘저물녘의 대학, 돌아봄과 내다봄’이라는 큰 주제를 다룬 네 편의 글에 대해 논평을 전해왔다. 그 글을 함께 나눈다.<편집자 주>
『현상과인식』은 1977년 4월 계간 학술지로 창간되었다. 이번 봄호가 통권 150호가 된다. 『현상과인식』은 창립 이후 지금까지 수미일관되게 ‘기존 학문의 울타리를 넘어서 학제 간의 대화와 연구’를 이끌었다. 이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다루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학문 지평을 넓히는’ 목적을 추구하고 지향해 왔다. 순수 학술지 그것도 특정 전공 중심의 전문학술지가 아닌 간분과적 융합학문을 지향하는 학술지가 반세기 가까이 존속해 왔다는 사실은 아주 대단한 것이다! 이 점에서 『현상과인식』의 전통과 역사에는 그 어느 학술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정신과 가치가 살아 숨 쉰다. 진리와 이상을 통섭적으로 조망하고 성찰하는 지적·학술적 공동체로서의 정신과 가치가 뚜렷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봄호의 특집 주제인 ‘대학(교육)’의 문제도 통상적 수준과 범위의 논의를 벗어나 심층의 문제를 들춰내어 씨름할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현상과인식』은 2000년대 이후 십년마다 교육 문제를 다뤘으니, 이번이 세 번째다. 2001년 봄/여름 학술대회 주제는 “대안의 삶을 찾아서/위기의 교육”이었으며, 2012년 주제는 “100년 전 교육, 100년 후 교육”이었다. 세 번의 주제 모두 진리와 이상을 추구하고 실현하기 위한 성찰 비판적 지식·학문의 공동체로서의 대학의 정체와 역할에 대한 위기의식을 반영한다. 더욱이 21세기 들어 가속화되고 있는 전례 없었던 인류문명의 위기와 그로 인한 문명 패러다임 전환의 문제로부터 스스로를 주변화하거나 절연하고 있는 이 시대 대학의 소명과 책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조인원 박사(경희학원 이사장)는 하버드대 루이스 교수의 ‘영혼이 빠진 수월성’이라는 명제를 상기하듯, 오늘의 대학이 처한 이 위기의 상황을 ‘영혼을 잃어가는 대학’이라고 은유한다. 그는 대학이 잃어가고 있는 그 영혼을 찾기 위한 해법을 상실의 위기를 초래한 근원에 대한 성찰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말한다. 그 근원이란 사실 대학의 영혼을 되찾는 성찰적 해법이 모색될 수 있는 원천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 박사의 ‘원천에서 배운’다는 말에는 고전적 의미의 단순한 인과적 배움을 넘어, 패러다임 또는 차원 전환적 통찰이라는 급진적 의미가 함의되어 있다.
조 박사는 근대 인류문명을 옭아맨 산업화와 성장지상주의의 신화를 초월해야 함을 주장한다. 그 신화의 원천이 되는 사유체계의 예는 이를테면 뉴턴의 ‘자연의 보편법칙(universal laws of nature)’이다. 이 결정론적 사유체계는 후기 뉴턴주의(post-Newtonian) 사상가들에 의해 ‘물질주의와 기계론, 환원주의 사유체계로 발전해’ 이후 수 세기를 걸치며 전개된 근대문명의 공리이자 거대서사로 작용해 왔다. 하지만, 주지하듯이 현대에 이르러 그 문명적 귀결은 지극히 파멸적이다. 이른바 ‘여섯 번째 대멸종(The Sixth Mass Extinction)’이라는 현생인류의 종말의 서사가 이를 극적으로 상징한다.
조 박사는 근대문명의 위기를 초래한 근원에 대한 깊은 비판적 성찰과 통찰은 인류문명의 운명적 향배를 가르는 일종의 문명사적 분기(bifurcation)로 작용할 새로운 가능성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에게 그 문명사적 분기는 닫힌 사유 세계의 지평을 초월하는 전환적 인식 지평의 활로를 통해 ‘역사의 합류(historical confluence)’ 과정을 찾아내는 일이다. 당연히 이 초월적 문명 전환을 통한 역사적 합류의 과정은 전일적이어야 한다.
“물리적 성장과 팽창의 역사가 “실존적 위협(existential threats)”으로 다가선 이 시대엔 인간, 자연, 세계의 연결과 중첩 가능성에 관한 새로운 인식이 중요합니다. 사상과 철학, 이론, 종교의 융합과 종합을 모색하면서 문명의 결실을 이어가고, 미래를 헤쳐 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21쪽)
조 박사에게 이 시대의 대학이 견지해 가야 할 학문함의 소중함과 탁월성이 바로 여기에, 곧 문명사적 합류 과정을 성찰하고 탐색하는 데에 있다. 응당 이 과정은 시민의 길을 밝히고 미래를 성찰하는 차원과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에게 이 학문함의 과정은 인간이 ‘살기 위해 신처럼 돼야 하는’ 과정으로 은유된다. 곧, ‘인간은 신처럼 돼야 한다’
조인원 박사의 글이 강연문 형식이라서 그 논지와 논리 전개가 서사적이고 축약적이라면, 박영신 교수가 규정하는 이 시대 대학의 위기와 그 해법에 대한 논지 전개는 좀 더 사실적이고 구체적이다. 하지만, 또 다른 두 글에 비하면, 박 교수의 논지는 다분히 간분과적 접근이 두드러지는 이론적 조망과 분석 방법을 취하고 있다.
박영신 교수는 독일 비텐베르크 대학교수이자 성직자로서 프로테스탄트 개혁 운동을 이뤄낸 마르틴 루터의 비판 학문의 분석을 통해 대학이 왜 어떻게 ‘큰 배움터’이자 ‘진리의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를 예증한다. 박 교수에게는 이것이 사회의 여타 영역들과 구별되어야 하는 대학의 당위적 존재 이유다. 이 주장의 논리적 근거는 베버와 뒤르케임의 교육·역사 사회학의 핵심 개념을 통해서도 찾아진다.
먼저, 뒤르케임 사회학의 토대 개념인 ‘집합적 가치 의식(conscience collective)’에는 단지 통합과 응집의 차원에 대한 강조뿐만이 아니라,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근원이자 원천으로서의 ‘도덕 이상’의 차원이 더욱 근본적으로 중시되고 있다는 이해가 그것이다. 이 이해는 사회화의 주요 방편으로서의 (대학)교육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무 또는 사명과 연관된 뒤르케임주의 교육 사회학 이론의 기초가 되었다. 또 다른 경우는 베버의 사회학에서도 발견된다. 베버의 역사 사회학은 개신교 윤리와 근대문명의 전개 간의 상관성에 관한 연구를 통해, 그 전개 과정에 나타난 초월적 삶의 지향성, 곧 ‘현세 순응의 자기중심적 지평’을 돌파해 현세 부정의 사랑으로 나아가는 형제애와 이웃됨의 정신과 삶을 가능하게 하는 ‘초월 지평의 지향성’을 주목하고 이에 희망을 걸었다. 베버의 이 사회학적 통찰은 뒤르케임과 유사하게 ‘현실 초월의 도덕 이상’을 함의하는 것으로, 대학이 지향하고 견지해 가야 할 소명 및 책무의 차원과 크게 공명한다.
조인원 박사와 박영신 교수 모두 큰 배움터이자 진리의 파수꾼으로서의 대학이 마땅히 수행해야 할 학문함의 소중함과 탁월성은 초월의 지향성에 있다고 본다. 앞서 인용한 대로, 조 박사에게 이는 신의 지경을 탐구하고 지향하는 것으로 은유된다. 유사하게 박영신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학은] ‘자기를 넘어’ 큰 삶의 세계로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곳이고, 이의 소명은 현실의 요구에 맞춰 움직이는 순응 지향성에 매이지 않고 이를 넘어서는 돌파 지향성을 이른다. 대학의 소명은 이 삶의 문제를 두고 배우며 대화하는 ‘도덕 공동체 됨’에 놓여 있다.”(38쪽)
이런 일은 결코 대학 아닌 다른 영역에서 수행될 수 없다. 예컨대, 과학이나 의학 영역의 자본주의적 수행성이 제아무리 막강하다고 하더라도, 결코 의미와 가치의 문제, 그리고 그와 연관된 도덕 관심과 실천의 물음을 비껴가지 못한다. 이는 응당 대학의 몫이다. 입시교육과 출세주의라는 강력한 문화 습속에 휘둘리는 한국적 교육 현실의 돌파나 그로부터의 자유 또한 대학 이외의 다른 데서 나올 수 없다. 박 교수는 ‘이 습속에 물음을 던지고 이를 뒤엎어 버릴 수 있는 곳은 대학’이라고 말한다. 이 점에서 대학은 자명했던 기존 패러다임이 깨지는 동요를 체험하고 그로부터 충격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박영신 교수에게 이러한 대학의 소명과 책무는 마치 운명과 같은 것으로, 이의 수행이 쇠락해질 때 대학은 그 정체를 상실하고 운명을 다하는 것이 된다.
“[대학에서는] 자기 열망의 타당성이 여지없이 흔들리고 자기 존재 자체가 깊은 회의의 회오리바람에 비틀거리고 허둥거리고, 자신의 세계가 파열하고 확장하는 자기 변화를 겪는다. 이 ‘변화 체험’의 과제는 오늘날의 대학이 짊어져야 할 일이고 짊어질 수 있는 일이다. 산학협동을 외치고 산학 일체화를 부르짖더라도 이 일을 저버리거나 게을리한다면 대학의 존재 이유는 시들어질 것이고, 대학 바깥의 산업 경제 세력에 의하여 삼켜버림을 당하고 말 것이다.”(41쪽)
앞에서 말한 대로, 다른 두 편의 글은 앞에서 앞의 두 글과는 성격이 크게 다르다. 먼저 박치현 교수의 ‘탈콧 파슨스의 대학론과 한국 대학’은 기능주의 사회학이론의 대가인 파슨스의 사회체계론에 따라 대학을 인지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인지복합체’로 보고, 한국의 대학 체계에 대한 분석을 통해 몇 가지 함의를 원론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선 대학이 자율적인 연구공간이라는 점에서, 대학이 정부와 기업의 자본이나 각종 정치적 이해관계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다음으로 ‘인지복합체’로서의 속성은 대학의 장뿐만 아니라 대학 외부(비제도권의 학술 영역이나 사이버 공간)의 장에서도 작동되어야 한다는 이해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열린 시각을 견지해 갈 것이 요구된다. 그리고 대학의 사회적 기능이 기본적으로 시민권의 확대 등과 같은 민주화를 증진한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록 원론적 수준의 함의이기는 하지만, 제도 교육의 난맥을 경험해 오고 있는 한국 대학교육의 현실에서 기본과 원리에 충실해야 한다는 성찰을 다시 한번 자극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마지막으로 김영선 교수의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한국 여성학의 도전과 새로운 실천’은 한국의 여성학과 여성운동이 대학교육의 현장에서 실천적으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조망하는 흥미로운 글이다. 김 교수는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 이후 한국적 여성학의 제도화가 시작되었지만, 정작 여성학 담론은 방향성을 잃고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고 조망한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와 대학사회가 신자유주의, 물질주의, 성과주의 추세에 휩쓸려가면서 여성학 담론을 대학이 주도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김 교수는 흥미롭게도 이 비현실적 제도화로 인한 공백을 페미니스트 독학자들이 채우게 되었다고 본다. 이 페미니스트 독학자들은 자신들의 절박한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온라인 안팎의 경계를 넘어 상호연결된 환경을 활용하는 학습 소모임을 통해 여성학 담론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생산자이자 소비자가 되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이들에게 대학은 ‘관계의 비대칭성과 위계의 재구조화를 강화시키는 곳’으로 인식되었다는 날카로운 비판의 메스를 가한다. 김 교수는 이와 같은 구조적 맥락에 대한 분석을 통해, 페미니스트 현실을 외면한 대학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저물녘의 대학! 네 편의 글은 한편으로는 대학 소명과 책무라는 근원의 문제를, 다른 한편으로는 실천적 방법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저물녘에 날아오른다. 저물녘의 대학이 부디 대학 본연의 소명과 책무를 수행해 갈 수 있는 지혜의 단계로 솟아오를 수 있는 날개를 펼치게 되기를 간구한다. ‘대학의 소명’이 운명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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