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에너지 소비 없이 금속 스스로 열 내린다
2021-06-07 연구/산학
김선경 응용물리학과 교수 연구팀, 나노 광학 원리 이용한 열복사 냉각 기술 개발
‘틈새 플라스몬’ 나노 광학 원리 활용해 금속의 복사율 높여
에너지 소비·유지 비용 필요 없어··· 친환경 냉각 기술의 표준안으로 자리 잡을 것
한여름 야외에 주차된 차량의 실내 온도는 90도 넘게 올라가기도 한다. 금속은 태양광을 잘 반사하지만 일부는 금속에 흡수된 뒤 열에너지로 바뀌는데, 열복사를 거의 하지 않는 금속은 태양광을 약간만 흡수해도 쉽게 뜨거워진다. 자동차, 건축물과 같은 금속 구조물이 강렬한 태양광 아래서 적정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냉각 기술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주로 두꺼운 방열판을 부착하거나, 강제로 바람을 일으키는 방식을 이용했다.
응용물리학과 김선경 교수 연구팀이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 금속 표면의 온도를 저절로 떨어뜨리는 나노구조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연구팀은 태양광의 반사도는 유지하면서 복사를 통한 열 배출을 늘리는 ‘틈새 플라스몬(Gap Plasmon)’이라는 나노 광학 원리를 금속 표면에 도입하고, 이를 야외 태양광 실험으로 증명해냈다. 이번 연구 결과는 향후 대형 건축물부터 소형 전자기기까지 다양한 금속 품목에 응용될 전망이다. 이번 연구는 지난 4월 나노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나노 레터스(Nano Letters)> 온라인판에 실렸다(논문명: Cooling metals via gap plasmon resonance).
샌드위치와 비슷한 틈새 플라스몬 활용해 냉각 효율 높여
연구팀은 ‘틈새 플라스몬(Gap Plasmon)’이라는 나노 광학 원리를 활용해 금속의 복사율을 높였다. 마치 샌드위치처럼 금속판 위에 얇은 유전체를 코팅하고, 그 위에 다시 정사각형 모양의 금속 타일을 얹으면 금속판과 금속 타일의 틈새를 채우고 있는 유전체 영역에 빛이 강하게 모이는데 이를 틈새 플라스몬이라고 한다.
김선경 교수는 “틈새 플라스몬은 기본적으로 금속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반사 특성이 우수하고, 잘 설계하면 흑체(Blackbody)처럼 기능하도록, 즉 복사 특성까지 우수하게 나타나도록 할 수 있다”라며 “이 두 가지 특성을 결합하면 에너지 소비 없이 금속을 밖에 내놔도 뜨겁지 않고 차가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태양광에 노출된 야외 구조물의 경우 전체 복사광 에너지의 절반 이상이 파장 8~13㎛의 적외선에 집중돼 있다. 연구팀은 구리판에 두께 500nm의 황화아연을 코팅하고, 그 위에 정사각형 모양의 구리 타일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틈새 플라스몬 구조를 제작했다. 김선경 교수는 “틈새 플라스몬 구조에서 크기가 정해진 한 개의 구리 타일은 오직 한 파장의 복사광만을 방출한다”라며 “냉각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복사광이 파장 8~13㎛의 적외선 영역에서 모두 방출되도록 설계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야외 태양광 실험 기반으로 여름철 10도 이상의 냉각 효과 예측
틈새 플라스몬 구조에서 복사광의 파장은 구리 타일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크기가 다른 구리 타일을 가능한 한 많이 도입해야 하는데, 구리 타일의 수가 증가하면 이웃하는 구리 타일 사이가 점점 가까워지고, 오히려 금속의 복사율이 감소하는 문제가 생긴다. 김선경 교수는 “여기서도 ‘거리 두기’와 같은 법칙이 존재한다”라며 “크기가 다른 다섯 종류의 구리 타일이 구리판 위에 도입될 때 가장 효율적으로 냉각이 진행되는 것을 확인했다”라고 언급했다.
연구팀은 겨울철 평균대기 온도인 약 0℃에서 진행된 야외 태양광 실험에서 틈새 플라스몬 구조 도입 시 기존 구리판과 비교해 약 4도 이상의 온도가 감소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열복사를 이용한 냉각 기술은 뜨거운 환경에서 훨씬 더 효과적이다. 연구팀은 열 시뮬레이션 결과, 여름철 평균대기 온도인 약 25℃에서는 10도 이상의 냉각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측했다.
야외 태양광 실험이 쉽지만은 않았다. 제1 저자인 조진우 응용물리학과 박사과정 학생은 “우리나라는 태양광의 평균 세기가 크지 않고, 화창한 날이 드물어 어려움을 겪었다. 화창하더라도 미세 먼지로 인해 장비가 더러워지거나 혹은 기대 이하의 성능을 나타내기도 했다”라고 언급했다. 모든 연구원이 늘 일기예보에 따라 일정을 조정했고, 화창한 날이 예보되면 그 전날 밤새 측정 장비를 옥상에 설치하기도 했다. 김선경 교수는 “향후 개발된 복사냉각 구조의 재현성 검증 및 태양광 세기별 성능 측정을 위해 일조량이 많고 화창한 날이 많은 해외 국가에서의 냉각 실험을 진행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틈새 플라스몬 구조의 제작을 위해서는 고도의 반도체 공정 기술이 필요한데 대학에서는 예산 문제로 장비 구축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연구팀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나노팹센터의 여러 반도체 장비의 도움을 받아 연구 성과를 냈다.
태양전지, 발광다이오드 등 광전자 소자 성능 개선하는 새로운 돌파구
김선경 교수 연구팀이 제안한 복사냉각 기술은 에너지 소비가 없고, 다양한 모양의 발열체에 얇고, 신축성 있게 부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유지비용이 필요하지 않아 가까운 미래에 친환경·저탄소 냉각 기술의 표준안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김선경 교수는 “태양전지, 발광다이오드와 같은 모든 광전자 소자는 구조 표면에 금속 전극이 있고, 구조 바닥에 금속 거울이 있다. 금속 전극과 금속 거울의 틈새에는 빛을 흡수 혹은 발생하는 반도체 물질이 있다”라며 “광전자 소자의 전극을 틈새 플라스몬이 발생하도록 설계하면, 복사냉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이러한 냉각 전극의 도입은 광전자 소자의 성능을 개선하는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라고 기대효과를 언급했다.
이번 연구에서 개발한 복사냉각 구조는 고도의 반도체 공정 기술을 필요로 해 자동차, 건축물과 같이 큰 구조물에 적용하기 쉽지 않다. 김선경 교수는 “후속 연구로 동일한 복사냉각 기능을 갖는 나노입자를 대량으로 합성하고, 이를 스프레이 방식으로 넓은 면적을 코팅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정보전자신소재공학과 정선호 교수님과 협업하고 있다”라고 향후 연구계획을 언급했다.
“에너지 ‘덜’ 쓰는 전략을 위한 연구 이어나갈 것”
김선경 교수는 에너지 문제 해결에 관심이 많다. 그중에서도 에너지를 덜 쓰는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김 교수는 “현재 인류의 전기 사용량을 목적에 따라 분류할 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섹터가 ‘난방’이고, 다음이 ‘냉각’이다. 국제기후협약 보고서에 따르면 근미래에는 냉각이 난방을 앞지를 것이라 한다. 지구온난화와 데이터 센터 확충 등이 큰 이유다”라며 “온도를 떨어뜨리는 메커니즘 중 전도, 대류와 비교해 복사 현상이 상대적으로 연구가 덜 되고 있고, 물리학 측면에서도 상당히 흥미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주제이기에 연구를 진행했다”라고 언급했다.
정보전자신소재공학과를 졸업해 응용물리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조진우 학생은 “대학원에 진학해 연구뿐 아니라 연구 외적으로도 성장하고 있다”라며 “생각을 확장하고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방법, 논문을 포함한 다양한 글 작성법, 연구 내용을 조리 있게 설명하는 방법까지 배우며 연구에 재미를 느꼈다. 이번 연구에서 좋은 결과를 거둬 기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김선경 교수는 “경희대학교 학생들이 능력이 우수하다. 조금 더 자부심을 느끼고 도전하면 좋겠다”라며 “취업난 때문에 연구하고자 하는 학생 수가 줄고 있는데, 공부를 더 하면 그만큼 길이 더 열릴 수 있다. 열정만 있어도 괜찮으니 연구실로 찾아오길 바란다”라고 학생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중견연구자지원사업(중견후속연구)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글 박은지 sloweunz@khu.ac.kr
사진 정병성 pr@khu.ac.kr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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