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열린 문명의식으로 긴급한 지구적 위기 헤쳐 나가야”

2020-10-02 연구/산학

이한구 미래문명원장이 제29회 수당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의 탁월한 성취와 유네스코에서 발간하는 인문학 학술지 <디오게네스> 초빙 편집장으로 한국철학특집을 발간한 공로를 인정 받았다.

이한구 미래문명원장 제29회 수당상 수상자로 선정
역사철학과 사회철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 성취

이한구 미래문명원장(석좌교수)이 수당재단에서 선정하는 제29회 수당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당상은 삼양그룹 창업주인 수당 김연수 회장의 산업보국과 인재육성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지난 1973년부터 수상자를 선정했다. 2008년부터는 매년 기초과학, 응용과학, 인문사회 3개 부문의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다. 이 원장은 역사철학과 사회철학 분야의 탁월한 성취와 유네스코에서 발간하는 인문학 학술지 <디오게네스>의 초빙 편집장으로 한국 철학 특집을 발간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당상은 학계에서 권위가 높은 상 중 하나이다. 그런 상을 받아 영광스러우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이 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비판적 합리주의 철학으로 역사와 사회 탐구
Q. 수당상 수상자로 선정되며 그간의 연구성과를 인정받았다. 어떤 성과가 있는지 소개 부탁한다.
‘비판적 합리주의’ 철학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비판적 합리주의는 인간 이성의 오류 가능성을 출발점으로 한다. 누구든 잘못된 판단과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 점에서 인간 이성의 무오류성을 주장하며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는 ‘독단적 합리주의’와 구별된다.

저서 <역사학의 철학>(민음사, 2007)과 <역사와 철학의 만남>(세창출판사, 2017) 등에서 비판적 합리주의의 관점으로 역사와 사회를 탐구했다. 이를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의 여러 상대주의 형태를 비판하며 객관주의 역사학의 기반을 다지는 노력을 했다. 이 외에도 비판적 합리주의의 관점에서 어떤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인가를 연구했다. 비판적 합리주의는 열린 사회를 주장한다. 열린 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 그리고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다.

Q. 수당상 수상 이유의 대표적인 성과로 인문학 학술지 <디오게네스> 관련 이야기가 언급됐는데, 한국 철학의 어떤 주제를 중점적으로 소개했는지,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현대 한국 철학이 무엇인지 정의하고자 했다. 한국 논문 열 편을 선별해, 특집호를 발간했다. 우리의 사상적 바탕인 유·불·도 사상,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유입된 독일을 위시한 유럽 대륙 철학, 마지막으로 해방 이후 미국을 통해 들어온 실용주의 철학을 소개했다. 현대 한국 철학은 이러한 세 가지 철학이 융합되며, 새로운 철학을 생성하는 과정에 있다. 이를 중점적으로 소개하고자 했다.

융합의 방법은 다양하다. 유·불·도의 전통적 주제를 현대적 방법론으로 재해석하거나, 현대 철학의 보편적 주제를 해석학과 같이 전통적인 방법론으로 접근하는 방법 등이 있다. 융합과정에서 지역적인 특수성에만 매몰되면 발전할 수 없다. 지역적인 특수성과 세계적 보편성이 동시에 고려돼야 한다. 융합의 원리는 ‘대중문화’나 ‘철학’이 다르지 않다. 최근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방탄소년단’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 전통 음악의 요소를 현대적 음악에 넣었는데, 이들을 보며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한국 철학도 전통적인 정체성을 지키며 융합된다면 세계 지성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

열린 사회 이념 재구성해 <열린 문명과 그 적들> 집필 중
Q. 최근 진행하는 연구가 있는지?
열린 사회는 비판적 합리주의가 추구하는 사회 이념이다. 열린 사회 이념을 21세기 상황에 맞게 재구성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열린 문명은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자연 중심적 세계관으로 전환하는 특성을 갖는다. 존재하는 모든 문명이 하나의 보편 문명으로 통합되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근본적인 변혁을 추구한다. 열린 문명 이념을 바탕으로 <열린 문명과 그 적들>(가제)을 쓰고 있다.

Q. 평소 문명 융합을 주장했다. 문명 융합이 무엇인지, 문명 융합으로 세계화의 부정적 측면을 해결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문명의 융합>(철학과현실사, 2019)에서 현존하는 여러 문명이 융합하고 있다는 논의를 전개했는데, 역사철학적 관점에서 문명 융합 이론을 제시하려고 했다. 그리고 문화유전자(meme) 개념을 활용해 문명의 변천을 설명했다. 문명을 문화유전자의 복합체로 규정하는 문명 존재론을 새롭게 전개하고, 정보사회에서 문화유전자들의 융합과정을 밝히려고 했다.

문명 융합이 세계화의 부정적 측면을 해결할 수는 없다. 문명 융합과 세계화는 별개의 문제다 세계화는 정보혁명으로 불가피하게 진행됐다.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동시에 있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이나 국가주의 부활 때문에 반세계화 이론에 힘이 실리지만,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세계화 운동도 세계시민사회 연대를 통해 진행되는 현실이 증명한다. 인류는 말 그대로 한동네에 살며, 당면한 문제를 함께 풀지 않으면 공멸하는 상황이다.

이한구 원장은 인류 문명을 위협하는 위기를 해결하려면 “세계시민사회가 연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철학계와 세계시민사회가 연대해 인류 난제 해결해야
Q. 많은 사람이 기후위기나 코로나19 같은 위협을 현대 문명의 위기로 보는데, 철학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지?
초연결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은 다른 학문 분야와 마찬가지로 철학에서도 고민거리다. 세계가 연결되며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했다. 문명의 융합은 양날의 칼과 같다. 날카로운 칼은 유용한 도구이지만 잘못 다루면 다칠 수 있다.

기후위기, 팬데믹, 핵무기의 위협은 인류가 당면한 난제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자연을 지배하는 힘은 더욱 강해졌지만, 문명이 성장할수록 위험수준도 상승하고 있다. 현대 과학문명이 한계에 도달한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현재 국제 사회는 국가 우선주의 팽창으로 각국 지도자가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인류 난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세계시민사회의 지성들이 공동으로 논의해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 경희대학교가 9월 22일과 9월 23일에 제39회 UN 세계평화의 날 기념 국제회의 Peace BAR Festival 2020(이하 PBF)을 개최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PBF는 ‘긴급성의 시대, 정치 규범의 새 지평’의 주제로 진행됐다.

인류 문명이 급박한 위기상황을 맞이했지만,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당장 눈앞에 절실하게 와닿는 문제가 없어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미래 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 철학계와 세계시민사회가 연대해 딜레마를 풀어야 한다.

Q. 인문사회분야 연구를 꿈꾸는 후학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흔히 인문사회과학은 특수성을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주제가 특수하더라도 연구 방법론이나, 인식론은 보편적일 수 있다, 인문사회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세계적인 안목을 갖춰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연구 분야가 지역적이라도 그 대상을 세계적 안목으로 봐야 한다.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방향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면 안된다. 우리 것만 지키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의 지적 역량이 세계 학계의 주류가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최근 발표된 THE 세계대학 평가에서 알 수 있듯이 경희대학교는 국제화 지표 국내 1위를 차지할 만큼 일찍부터 세계화 흐름에 선도적으로 대응해왔다. 또한 ‘다양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학문의 탁월성을 실현’한다는 학교 비전으로,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하기 좋은 토대를 마련했다. 이를 디딤돌로 삼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상을 받는 후배들이 나오길 희망한다.

글 김율립 yulrip@khu.ac.kr
사진 정병성 pr@khu.ac.kr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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