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세계 문명의 ‘창조적 대화’ 가능한가

2012-06-26 교육

'2012년 봄 후마니타스 콜로키움' 개최
프레드 달마이어 교수, '유교와 세계문명' 주제로 특강

지난 6월 4일 '2012년 봄 후마니타스 콜로키움'이 서울캠퍼스 본관 대회의실에서 개최됐다. 미국 노트르담대학교 프레드 달마이어 교수(정치학·철학)가 '유교와 세계문명'을 주제로 강연했다. 프레드 달마이어 교수는 세계 문명들의 관계에 주목한 뒤, '문명 간 대화' 가능성과 의미, 그리고 그 관계망 속에서 동양의 유교가 어떤 역할을 해낼 수 있는지를 천착했다.

문명 간의 대화는 세계화 시대의 의무
달마이어 교수는 "문화들 간의 관계가 항상 우호적인 것은 아니며, 고립주의(isolationism)나 일방주의(unilater-alism)와 같은 비관계(non-relation) 혹은 불완전한 관계도 있다"고 말했다.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고 문화전통을 지키려는 '고립주의'에 대해, 달마이어 교수는 "신생 사회 또는 허약한 사회의 경우, 외부 문명의 파괴적인 영향력을 배제할 수 있는 반면, 문화적 정체 혹은 화석화에 의해 문화 개혁의 추진력이 질식당할 위험성이 있다"고 말했다. 어떤 문화가 다른 문화를 지배하는 '일방주의'에 대해서는 지정학적 세력 확장과 광대한 영토 및 자원 획득이라는 이점에도 불구, 타자로부터 배울 수 있는 능력이 쇠퇴해 자폐적 자기고립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달마이어 교수는 "문화적 고립주의나 일방주의를 통해서는 문화의 총체성을 발견할 수 없다"면서 "문화 혹은 문명들 간의 만남에서 가장 유망하고 유익한 방식은 그들 간의 대화"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대화의 방식 안에서 문화들은 서로 경멸하거나 회피하지 않으며, 한 가지 삶의 방식을 다른 문화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화와 질문을 통한 상호 검증과 건설적인 비판에 의해 배움이 촉진되고. 그 과정에서 총체성이 확립된다. 달마이어 교수는 이를 "상상력이 넘치는 창조적 재생을 통해 이루어지는 문화들 간의 역동적 향연"이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창조적 만남의 예로, 달마이어 교수는 기원 후 몇 세기 동안 기독교 신학자들과 그리스·로마의 문화적 전통 사이에서 진행된 배움의 과정, 약 2,000년 전 극동에서 불교·도교·유교적 전통 간의 유익하고 문화적인 교류가 이루어진 사실 등을 언급했다. 그는 "급속한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오늘날, 문화 혹은 문명 간의 '대화적 연대'는 단순한 가능성을 넘어 거의 강제적인 의무에 가깝다"고 말했다.

유교의 재해석과 세계 문명의 대화
달마이어 교수는 자신이 생각하는 문화적 만남의 이상적 형태를 20세기 선각자들의 '유교 재해석'에서 찾았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1958년 발표된 '중국학의 재평가와 중국문화 재건을 위한 성명서(Manifesto for a Reappraisal of Sinology and Reconstruction)'다.

달마이어 교수는 "공산혁명 이후 현대 중국에서 몇몇 사상가들에 의해 '정치화된 유교'는 중국의 정치적 혁신을 위한 수단이자 사악한 서구의 영향력에 맞서는 사상적 수단으로 여겨졌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정치화된 유교를 종교와 결합시켜 공적 혹은 시민적 종교의 역할로까지 승격시켰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달마이어 교수는는 함의를 띄게 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대부분의 유학자들이 이런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仁)의 실천은 인류 보편가치의 나눔"
이와 달리, 1958년 동아시아의 선도적 유학자 탕주니(唐君毅), 장준메이, 모우종산(牟宗三), 쑤푸구안(徐復觀)이 서명한 '1958년 성명서'는 "중국 고유의 전통과 서구에서 불어오는 변화(개방)의 바람을 결합, 보다 균형 잡히고 변증법적인 접근을 시도했다"고 평가했다.

달마이어 교수는 "이 성명서의 저자들은 중국 전통을 얕잡아보는 서구의 '합리적' 학자들의 오만한 태도를 비판하는 동시에, 동양 유학자들에게는 서구 문명을 수용해 전통적 가르침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재건할 것을 촉구했다"고 설명했다.

달마이어 교수는 "이 성명서가 전 세계 학자들과 철학자들에게 모든 문화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숙고하고 가장 좋은 것을 계속 지키고 유지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1958년 성명서가 세계화 시대에 유교사상과 실천이 나아가야 할 실현 가능하고 전도유망한 길을 제시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달마이어 교수는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 등 오륜(五倫)으로 요약되는 유교사상에서 관계의 중심이 되는 것은 '경험적·사회적 배열'이 아니라, 의무와 책임을 내포한 '윤리적 유대'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교사상의 오륜이 다른 시대, 다른 사회에서 발견되는 유사한 유대 관계와 뚜렷이 구별된다"면서 "유교사상의 윤리적 유대는 추상적 규범으로 상하 관계를 명시하지 않으며, 구체적인 전후 관계의 만남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오륜에서 언급되는 관계들이 가족의 맥락에만 묶여 있지 않고 왕과 신하, 친구 간의 관계로 확장되며 공적인 성격을 띤다"고 덧붙였다.

달마이어 교수는 이와 함께 명심해야 할 유교의 가르침으로, 인(仁), 예(禮), 의(義), 지(智)에 이르는 일련의 윤리적 덕목을 언급했다. 그는 유교 철학자 뚜웨이밍(杜維明)을 인용, 도덕적이고 올바른 인간적 삶의 방식을 위한 은유라는 뜻에서, 인은 '살아 있는 은유(living metaphor)'이며, 인의 실천은 "공동으로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상징적인 교환의 과정"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인의 덕목이 뜻하는 바는 타인에 마음을 활짝 개방한다는 것으로, 자기고립이나 편협한 자기 정체성의 찬양과는 상반되는 것"이라며, "세계화가 진행되는 우리 시대에 이런 개방은 전 세계를 아우르는 방향으로 확장돼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수용력과 환대의 범위를 세계의 지평으로까지 확대하는 동시에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욕망을 없애고자 노력해야만 한다"면서 <논어>의 첫 구절을 인용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배우고 때때로 다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프레드 달마이어 교수는 독일 철학자 한스-게오르크 가다머의 현상학·해석학 전통을 물려받은 현존하는 최고의 정치철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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