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석학 초청 특강 '21세기에 다시 보는 해방후사 ④'

2011-12-01 교육

6.25 전쟁의 승자는 누구인가 
“한국전쟁이 정치 발전과 경제 성장에 기여했다”

매주 한 차례씩 총 4회에 걸쳐 진행된 ‘2011 석학 초청 특강’이 지난 11월 29일 막을 내렸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이정식 명예교수는 ‘21세기에 다시 보는 해방후사’를 주제로 4주 동안 열정적인 강연을 들려줬으며, 매회 300명 이상의 청중들이 강연장을 가득 메웠다. 
 
경희대학교가 기획한 ‘석학 초청 특강’은 개최 전부터 사회적 관심이 높았다. 중앙일보는 지난 11월 9일 이정식 명예교수와 인터뷰를 갖고 1면과 4~5면에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특히 2회 강연의 주제 ‘중국의 내전은 한반도 분단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학계에 처음 보고되는 내용이었다. 
 
이번 특강에서 이정식 명예교수는 50년 동안 탐색해온 학문적 성과를 발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체험담을 곁들이며 후학들에게 학문하는 방법과 탐구 과정에서 맛보게 되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자상하게 들려줬다. 석학 초청 특강은 경희대학교 웹캐스트를 통해 중계돼 대학의 학술적 자산을 사회와 공유하는 실천에도 앞장섰다.

마지막 강연은 ‘6.25의 전화위복 : 대한민국의 발전’을 주제로 서울캠퍼스 오비스홀 111호에서 열렸다. 강연이 끝난 뒤에는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이주영 건국대 명예교수, 김학준 단국대 이사장, 도정일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장, 허동현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패널로 참가하는 라운드테이블이 진행됐다.  
 
발상의 전환 가져온 한 권의 책
6.25 전쟁의 승자는 누구인가? 이정식 명예교수는 강연을 시작하면서 청중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3년간의 전쟁을 치르느라 폐허가 된 남한과 북한은 승자가 될 수 없다. 후진국과의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휴전협정에 서명한 미국도, 본격화된 냉전체제 아래서 미국과 군비 경쟁을 벌이다 스스로 주저앉은 소련도, 공산혁명 성공 직후 6.25에 참전했으나 대약진운동·문화대혁명 등의 시대착오적 정책으로 경제가 피폐해진 중국도 승자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6.25 전쟁의 승자는 어부지리를 얻은 일본이라고 최근까지 생각했다”고 이정식 명예교수는 말했다. 실제로 패전국 일본은 한국전쟁 기간에 3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자본 투입 덕분에 경제 부흥에 성공했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이 이정식 명예교수의 생각을 180도 바꾸게 만들었다. 데이비드 가필드(David Godfield)의 저서 《불타는 미국: 남북전쟁은 어떻게 나라를 만들었는가》는 그의 의표를 찔렀다. 잔인하고 참혹했던 남북전쟁이 “인종간의 평등을 추구하는 하나의 공동체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불가결한 전주곡이었다(necessary prelude to the process of securing black equality)”는 이 책의 역사 해석에서 영감을 얻어 “6.25의 승자는 대한민국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이정식 명예교수는 말했다. 한국 현대사 분야에서 이미 큰 성취를 이룬 학자가 80세에 이른 지금까지도 유연한 사고와 창의적인 발상으로 학문에 정진하는 모습을 후학들에게 몸소 보여줬다.
 

한국군의 성장은 경제 성장의 동력
이정식 명예교수는 정치체제, 경제, 한·미관계 등 세 가지 측면에서 ‘한국의 승리’라는 결론에 접근했다. 1948년 단독정부 수립과 함께 들어선 이승만 정권은 정치적 기반이 허약했으며 당시 한국 사회는 좌우익 갈등으로 인해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6.25 전쟁을 계기로 사회주의 세력이 축출되고 남한 사회에서 일정한 이념 통합이 진행됐다는 것이 이정식 명예교수의 분석이다. 다만 반공주의의 어두운 측면에 대해서는 따로 지적할 문제라고 단서를 달았다.  
 
경제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통념을 뒤집는 발상을 전환을 보여줬다. 한국군의 급팽창이 압축 성장의 토대가 됐다는 해석이다. 1949년 미군이 철수한 뒤의 한국군 규모는 육군 9만 6000명, 해군 7715명, 공군 1900명 등 10만 5000명에 불과했으나 전쟁 기간인 1952년 46만 3000명, 1953년 75만 명으로 급속히 증가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군인의 수가 아니라 군대의 교육적 효과다. “수백만의 청년이 서구의 기계문명과 효율적 경영·관리 시스템을 경험했다”고 이정식 교수는 설명했다. 이들은 전쟁 후 사회에 진출해 군대식 조직문화로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 군사문화의 폐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당시 한국 사회에서 가장 선진적인 조직은 군대였으며, 전쟁 경험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습득한 서구문명이 경제 발전의 동력이 됐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 미관계 변화와 한국의 자주성 확립
끝으로, 6.25를 계기로 변화한 한·미관계가 대한민국의 자주성 확립에 기여했다고 이정식 명예교수는 말했다. 한 예로 당시 미국은 한국을 야만 후진국처럼 멸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군사합동작전을 펼치는 동안 인식이 달라졌다는 점을 들었다. 이정식 명예교수는 백선엽 장군 회고록의 한 대목을 인용했다. 1952년 한국군 포병장교 16명에 대한 단기훈련을 요청했을 때 미8군 맥스 테일러 사령관은 한국군이 곡사포나 고사포 같은 현대식 무기를 사용할 수 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테스트 결과는 포병 장교 출신인 테일러 장군조차 놀라게 만들었다.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주한미군의 존재와 한국의 종속성 여부와 관련해 이정식 명예교수는 자신의 체험담을 들려줬다. 1970년대 후반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 주한미군 철수가 문제됐을 때 그는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한미군 주둔이 자선을 베풀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질문하겠다. 그것은 미국의 이익 때문이 아닌가. 만약 당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당장 떠나야 할 것 아닌가. 한국 정부도 미군 주둔을 원하고 있다. 그 역시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 아닌가.” 이정식 명예교수는 “국제관계는 궁극적으로 상호착취, 혹은 상호의존 관계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6 ·25 이후 체결된 한·미 방위조약은 이처럼 냉정한 국제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전쟁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국민이 재탄생하는 계기가 됐으며, 그런 뜻에서 최종 승리자는 미국도, 소련도, 중국도, 일본도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것이다.
 


석학의 지혜 얻고 학문의 즐거움 깨달은 계기
4주 동안의 강연에서 이정식 명예교수는 한반도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 국제관계를 두루 살피는 넓은 시야로 분단 원인을 규명하고, 역사의 긴 안목에서 참혹했던 6·25전쟁의 현재적 의미를 재해석했다. 두 번째 강연을 통해 ‘중국 내전이 분단을 고착화했다’는 새 학설을 제시할 때는 “50년 동안 한국 해방후사를 연구해왔는데도 ‘머리가 나빠서’ 뒤늦게 이번 강연을 준비하면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며 학문의 길에 끝이 없음을 강조했다. 강연 중간 중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탐정처럼 해답을 찾아온 탐색 과정을 소개하면서 학문하는 방법을 후학들에게 일깨웠다. 
‘2011 석학 초청 특강’ 사회를 맡아온 후마니타스칼리지 허동현 교수는 “과거의 역사는 오늘의 뿌리이며 미래 전망의 기준이 된다”면서 “이번 강연이 석학의 지혜를 얻고 학문의 즐거움을 깨닫는 불쏘시개가 되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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