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글쓰기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과정”
2021-12-01 교육
양 캠퍼스 ‘글쓰기 클리닉’ 효율성 강화 위해 글쓰기센터 출범
후마니타스칼리지 글쓰기 프로그램 확장, 학생의 글쓰기 능력 함양 도와
온라인 서점 검색창에 ‘글쓰기’를 검색하면, 5천 권이 넘는 책이 나온다. 유력 언론사 편집장, 정치인, 마케팅 전문가, 인문학자 등 저자도 다채롭다. ‘글을 쓴다’라는 행위에 대한 다양한 관심이 투영된 결과다. 경희는 일찍부터 글쓰기 교육을 중시해왔다. 2003년 <글쓰기>를 공통교양과정으로 지정해 재학생의 전문적이고 비판적인 글쓰기 능력을 함양했다. 2011년 후마니타스칼리지 출범은 또 다른 전기가 됐다. <글쓰기1·2>로 시작했던 글쓰기 강의는 <성찰과 표현>(1학년), <주제연구>(2학년)라는 두 가지 필수강좌로 개편되며 학생의 글쓰기 능력 발전을 이끌었다. 올해는 글쓰기센터를 설립했다. 글쓰기센터를 찾아 그 역할과 성과, 특징 등을 들었다. 후마니타스칼리지 박혜영·이성천·진은진 교수를 만났고, 오태호 교수가 서면으로 의견을 전했다. <편집자 주>
글쓰기센터는 양 캠퍼스가 개별로 운영하던 글쓰기 클리닉을 통합 운영해 효율성을 강화하고, 글쓰기 강좌만으로 부족한 학생의 글쓰기 능력 향상을 돕기 위해 출범했다. 올해 초 홈페이지를 공개했고 △글쓰기 관련 교육 프로그램·교육 자료 구축 및 제공 △글쓰기센터 추진 사업·행사의 효율적 전달 △글쓰기 클리닉 프로그램 홍보 관련 서비스 시스템 구축 △글쓰기센터 업무의 온라인 확대 등을 목표로 정했다. 글쓰기센터는 글쓰기 교강사의 워크숍과 ‘글쓰기의 날 백일장’, 학생 문집 <팡세의 숲> 출간 등의 활동을 해왔다.
대표 프로그램 ‘글쓰기 클리닉’, 매 학기 양 캠퍼스 약 150명 학생 참여
글쓰기를 강조하는 경희의 교풍은 글쓰기센터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경희대 재학생은 후마니타스칼리지 <성찰과 표현>, <주제연구> 두 강좌를 수강해야 한다. 글쓰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필수강좌인 <인간의 가치 탐색>과 <세계 시민 교육>에서도 글쓰기는 필수 요소다. 이성천 교수는 “경희대는 글쓰기의 중요성을 일찍 인식한 대학이다. 글쓰기는 자기 생각을 쓰는 행위다. 학생은 <성찰과 표현>에서 생각을 확립한 후 학문 분야의 글쓰기인 <주제연구>로 넘어간다”면서 “<인간의 가치 탐색>과 <세계 시민 교육>은 학생의 사고와 시야를 넓히고 글쓰기 강좌들과 융합되며 사유의 지평을 넓힌다”라고 설명했다.
‘글쓰기 클리닉’은 글쓰기센터의 대표적 프로그램이다. 학생이 글을 올리고 이를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첨삭하는 프로그램이다. 학기별로 양 캠퍼스 약 300명의 학생이 참여하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과제나 자기소개서와 같은 글이 많지만, 그중에는 소설이나 에세이 같은 문학적 결과물도 있다. 박혜영 교수는 소설을 제출한 학생을 떠올렸다. 박 교수는 “소설을 썼는데, 감상을 들을 기회가 없다고 하더라. 문학적 재능을 펼치고 싶은데 막연하다고도 했다. 문학에 관심 있는 학생이 적다고 느껴왔는데, 문학 소년·소녀를 꿈꾸는 후배가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이성천 교수는 글쓰기 클리닉의 존재 이유를 설명했다. 글쓰기 클리닉은 단순히 글을 수정하는 수동적 역할만 하지 않는다. 학부생들이 대학원 진학 전에 논문 작성법을 제대로 지도받을 경험이 적어 대학원에서 학술적 글쓰기를 접하면서 혼란을 겪기도 한다. 글쓰기 클리닉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원하는 글을 전문가에게 검수받는 경험은 이런 혼란을 줄일 수 있다. 학술적 글쓰기에 대한 학생들의 요구를 확인한 글쓰기센터는 이와 관련된 프로그램도 구상 중이다. 이 교수는 “대학의 대자는 ‘크다(大)’는 의미인데, 오히려 세부 전공에 갇히는 모양새다. 교양 차원의 넓은 학문, 우주, 인간, 인류라는 넓은 대상을 포괄하고 초월하는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교육이 글쓰기 교과와 글쓰기센터의 역할이다”라고 말했다.
진은진 교수는 이공계열과 외국인 학생이 많은 국제캠퍼스의 사례를 설명했다. 진 교수는 “이공계열 학생들은 글쓰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가 있더라. 교수님의 권유로 글쓰기 클리닉을 찾는 사례가 종종 있다. 머뭇거림에 비해서 실제로 글을 쓰면 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외국인 학생들에게도 글쓰기 클리닉은 효율적이었다. 한국에서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한국어 소통은 필수이기 때문이다. 진 교수는 “한 외국인 학생은 여러 차례 글쓰기 클리닉에 참여하다가, 글쓰기센터의 조교가 됐다”라고 말했다. 국제캠퍼스 글쓰기센터는 이공계 학생과 외국인 학생을 위한 비교과 프로그램도 기획 중이다.
홈페이지에 글쓰기 가이드 공개, 영상과 설명으로 글쓰기 능력 함양 도와
글쓰기센터 홈페이지(khwriting.khu.ac.kr)를 방문하면, ‘글쓰기 가이드’를 볼 수 있다. △글쓰기 특강(후마니타스 글쓰기, 성찰과 표현, 주제연구) △학술 에세이 쓰기 △글쓰기의 기본 △글쓰기의 전략 △실용 글쓰기 등으로 나눠 영상과 글쓰기 팁이 공개돼 있다. 문장을 쉽게, 잘 쓰는 법으로는 ‘짧은 문장이 좋다’, ‘뜻이 분명한 문장이 좋다’, ‘하나의 뜻이 담긴 문장이 좋다’ 등의 내용을 간략하게 게시했다. 인터뷰 참여 교수에게 글쓰기 꿀조언을 물었다. 교수들의 공통된 의견은 ‘스스로 글을 쓰고’, ‘진심을 담는다’는 점이었다.
진은진 교수는 “처음에는 가이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후에는 스스로 글을 많이 쓰고, 타인의 글을 많이 읽으면서 배우고 참고해야 한다”면서 “그렇지만 글쓰기에 왕도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사람이 쓴 것처럼 나도 써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오태호 교수는 “무엇보다 독자에게 진심으로 진솔하게 자기 생각과 감정을 구체적으로 전달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성천 교수는 ‘생각하기 문제에 집중’할 것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언어 문법이나 표현 미학은 글쓰기의 초보 단계이다. 글쓰기는 시작과 끝도 생각의 문제이다”라며 “글쓰기는 획일화, 고정화된 사유에 자극을 주는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글을 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도 물었다. 박혜영 교수는 “쉽게 생각하면 읽고 싶은 글, 쓰고 싶은 글을 쓰려고 한다. 진심이 중요하다. 쓰는 사람이 진심을 이야기하면 읽는 사람도 흥미를 느껴서 읽게 되는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면서 “동어 반복이나 한 이야기를 또 하면 지루하거나 산만해지기 쉽다. 리듬감이 생기게 노력하고, 제목을 통해 강조하려고 한다. 재밌고 소통할 수 있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성천 교수는 사유의 문제를 재차 강조했다. 이 교수는 “학생들에게 줄곧 ‘자기 개념이 없으면 글을 쓸 수 없다’라고 이야기했다. 올곧게 주장하려면 자신의 개념이 필요하다”면서 “글을 쓸 때는 마지막 고쳐쓰기 단계에서 같은 단어가 중복됐는지 살핀다. 독서의 목적은 추체험(追體驗)이 아니라, 개념의 확장이다. 어휘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적절한 위치에 단어가 위치했는지 등을 주로 살핀다”라고 이야기했다. 진은진 교수는 글쓰기의 본질에 집중했다. 의사소통이라는 본질에 집중해 글의 내용과 형식을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야 한다. 진 교수에게도 쉽진 않지만, 중요한 지점이다. 진 교수는 “신기하게 글을 보면 글쓴이가 어떤 사람인지 보인다. 글쓰기는 나를 내보이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 행위는 글쓴이와 소통하는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중요한 점은 사유의 문제, 글은 타인과의 소통”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글쓰기가 무엇인지’라는 다소 철학적 질문을 던졌다. 오태호 교수는 “자신 및 타인의 세계를 읽어내는 가성비 좋고 효과적인 도구이다. 사유의 힘을 강화하고 내적 견고성을 함양해 더 나은 인생을 모색하게 만드는 최적의 성찰 도구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성천 교수는 “글은 읽고 쓰면서 의미가 발생한다. 생각을 쓰고, 타인이 읽으며 다른 생각으로 연결된다”면서 “의견이 공유되며 사회에 울림도 줄 수 있다. 글쓰기를 정의하기 어렵다. 쉽다면 쉽지만, 어렵기 시작하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진은진 교수는 글쓰기를 “철학보다 노동이고 삶이다. 형이상학적 차원의 활동이 아니라 구체적 삶에서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조별 과제에 참여하지 않는 친구에게 보낼 문자, 결석 시에 교수에게 보낼 양해 메일, 보고서나 논문 모든 것이 글인데 이는 현실의 문제다. 진 교수는 개인적 고민도 털어놨다. 글쓰기 관련 정보는 넘치는데,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의 의미에 관한 생각이었다. 진 교수는 “‘글쓰기는 삶’이라고 결론 내렸다. 우리는 보통 글쓰기 결과물을 중요시한다. 하지만 글쓰기에서는 결과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완벽한 글은 없기 때문이다”라며 “삶도 마찬가지다. 외적으로 성공해 보이는 삶도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글쓰기 클리닉은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글은 정답이 없기에 교수의 의견이 절대적이지 않다. 의견을 듣고 글쓴이가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다. 진은진 교수는 인터뷰의 말미에 이에 대한 의견도 제시했다. 진 교수는 “글에 대해 다양한 피드백을 받는다. 이들이 상충하는 곤란한 경우도 있다.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피드백을 받으며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결국 글의 주인은 ‘나’이다”라면서 “내 글의 수정 여부는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글에 대한 책임도 본인의 몫이다. 삶도 같다. 많은 조언을 참고하되, 그 조언에 흔들리면 안 된다. 내 삶의 주인은 ‘나’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글을 쓴다’라는 행위는 개인의 삶을 투영하는 작업이다. 독자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소통하는 일이다. 전공, 교양 지식을 습득하며 확장하며 확립된 자신의 사고를 타인과 공유하며 자기 세계의 틀을 다져나간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한 지난한 작업을 계속한다. 글쓰기센터는 이런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삶의 주인이 되는 작업에 조언자로 학생을 도울 계획이다.
글 정민재 ddubi17@khu.ac.kr
사진 이춘한 choons@khu.ac.kr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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